"문화예술인이 활동할 환경부터 갖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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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이 활동할 환경부터 갖춰라"
  • 이병기
  • 승인 2010.08.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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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③ 인천에서 문화·예술 1번지가 되려면?


인천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 권역별 활용계획

취재: 이병기 기자

글 순서

1. '문화의 거리' 운동을 '창조도시론'으로
2. 서울과 성남의 문화창조도시 사례
3. 인천에서 문화·예술 1번지가 되려면?


앞서 사례에서도 살펴봤듯, 최근 들어 문화예술정책을 도시발전의 핵심 전략으로 삼는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문화예술은 예전처럼 단순히 '여가'의 일종이 아닌,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도시 전반에 중요한 일을 한다.

인천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명소. 어디가 좋을까?

"창조도시 면에서 보자면 남구가 적당해 보입니다. 얼마 전 박우섭 남구청장의 경우 공약으로 미디어아트 분야의 '유네스코 창조도시' 등재를 내걸었어요. 인천시에서도 주안 일대를 '문화산업진흥지구'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문화 인프라를 활용해 활성화를 꾀하는 게 유리해 보입니다." - 손동혁 주안미디어영상센터 소장

"관교동 종합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공간 조성이 필요합니다. 문화예술 1번지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인원이 집적되는 여건을 갖춰야 해요. 교통편도 좋고 이미 인프라가 형성된 곳이 1번지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관교동 주변으로 음악과 미술 연습실 등 창작공간이 조성되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거리와 문예회관에서 공연이 열리는 거죠. 문예회관 앞 광장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박상문 지역문화네트워크 대표

"관이 너무 개입하면 안 됩니다. 의도적으로, 무작정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민간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 져야 하며, 관은 보조하는 선에서 그쳐야 합니다. 자본과 전문성이 있는 민간 대형 컬렉터의 투자로 문화예술 중심지가 조성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관에선 업무 담당자도 바뀌고 전문성도 떨어져요. 시민들도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지역 차원의 문화예술 공감대 형성도 필요합니다." - 도지성 인천경실련 문화관광위원장

"요즘에는 아트플랫폼이 있는 중구청 주변이 활성화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이곳은 인천을 대표할 만한 곳이고, 근대 문화유산도 있죠. 더불어 작가들이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하는데, 이미 임대료가 올랐어요. 모일 수 있는 환경은 되는데, 여건이 못 받쳐주는 거죠. 이럴 때 시에서 문화1번지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건물을 매입해 작가들에게 싸게 임대하는 방안도 있어요.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이뤄지면 일대가 명물로 변할 수 있습니다. - 이의재 동양화가

전문가들에게 "인천의 문화·예술 1번지로서 적합한 장소가 어디냐?"고 물으면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그러나 공통적인 개념은 '시민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야 하지만, 일정 부분 행정의 지원이 필요하다'라는 점이다.

관에서 문화예술 중심지를 조성하면 행정의 특성상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데,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짜여진 계획에 맞춰 결과물을 내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손동혁 소장은 "시에서 제도적으로 문화예술 1번지를 만들어 작가들에게 '모여라'라고 한다 해서 그곳이 활성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면서 "문화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계획을 세워놓고 지원하는 방식은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중구 개항장 일대 문화지구 지정


2000년 '관교동 문화의 거리 조성 운동' 이후 10년 만에 다시 문화예술 1번지 조성을 위한 시민사회 활동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인천시와 중구는 지난 2009년 5월 '인천개항장 근대역사문화지구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착수하고 올해 2월 중구 신포동과 북성동, 동인천동 일원(537,114㎡)을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문화지구'란 문화예술자원이 밀집돼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과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더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보호·육성하기 위한 제도로, 2000년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법제화했다.

인천 중구청은 "근대역사문화유산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근대건축물이 노후·훼손되도록 방치하거나 개인에게 매매돼 유흥주점이나 식당 등으로 바뀌어 소실·철거되면서 개항장의 역사성과 장소성이 상실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과거 중구청 일대는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신포시장과 차이나타운의 일부 상업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규모 주택과 근린시설이 입지하고, 차츰 공점포가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특히 지역 내 대부분의 건축물이 1950년 이전 건축돼 상당히 노후화한 상태로, 도시 슬럼화와 유동인구 부족에 따른 공동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중구와 인천시는 개항장 역사문화시설의 보존과 아울러 공점포 내 문화시설과 문화업종, 문화예술인 유치 등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또 조세 감면 및 지원 등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사업 참여를 유도해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지역 협력체계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곳은 1년 이내에 관리계획을 세워야 하며,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사행위업과 단란주점 등 일부 업종이 제한된다. 반면 권장시설에 대한 운영비와 조세를 감면하고 건물소유자에게 권장시설의 신·개축 또는 대수선비 융자, 문화지구 육성기금을 지원한다.

권장시설(예시)로 1종은 박물관과 미술관, 전문도서관, 공연장, 조각공원, 전시시설 등이며 2종은 공방, 골동품점, 고서점, 화랑, 서예점, 도자기점, 문화예술관련 단체/업무시설 등, 3종은 중·일식당, 전통찻집, 공예품점, 카페, 레스토랑 등 1·2종을 제외한 기타 문화관련 시설이다.

문화인력 및 단체 지원 계획으로는 예술가와 작가, 건축가, 화가, 문인 등 인력과 각국 문화원, 대학 관련학과, 문화관련 재단, 문화예술 단체 등의 기관/단체가 있다. 중구는 물류박물관, 커피박물관, 초콜릿박물관, 라면박물관 등의 민간박물관, 건축·공예·인쇄출판·연극·음악·미술·서예·무용·사진 등 협회/동호회 등을 유치하려고 한다.

지원 방법도 다양하다. 주거와 창작, 교육, 실험공간에 대해 건축물 무료 임대나 공간 임대료를 지원하고 공공 프로젝트 참여·문화창작활동·문화이벤트 개최시 인건비 및 행사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또 문화인력(개인, 단체)에게는 취득세와 등록세도 감면한다.

지역민의 인센티브를 위해서는 문화시설 인력 채용시 가점을 부여하고 문화시설 임대 우선고려, 권장업종 우수사업자 지원, 사업경영 컨설팅 등을 지원해 경제활동 여건을 개선하게 된다.

중구청 일대는 근대건축물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예술 1번지'로 조성하는 데 이점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시설로는 근대건축물 창고를 리모델링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 공간으로 사용하는 인천아트플랫폼과 중국문물전시실, 중국문화체험코너 등이 있는 한중문화관, 청국영사관 회의청 내 조성된 화교박물관, 홍예문 인근에 조성된 인주미술관이 있다.

또한 민간이 운영하는 혜명단청 박물관과 작업실과 전시공간으로 함께 사용되는 쉬필라움 갤러리, 중구청 가로역사관, 중국어마을 문화체험관 등이 위치해 있다.

시민참여 필요 … 예산확보 고민


그러나 앞서 문화예술인들의 우려와 같이 관에 의해서만 문화지구 계획이 진행될 경우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확보도 큰 과제다.

홍의재 인천시 문화재과 담당은 "아직까지는 문화지구의 큰 틀을 짜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시민참여 대신 인천발전연구원에서만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면서 "9월 중 예정된 중간보고 이후부터 주민과 문화예술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공명 중구청 문화재정책팀 관계자도 "문화지구로 지정된 2월 경에는 선거법상 홍보 활동이 금지돼 있었다"면서 "주민들과 함께 논의과정을 거쳐 세부 계획을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단 문화지구를 추진하는 행정 실무자들이 일방적인 관 주도보다는 시민과 함께 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긍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홍재의 담당은 "개인적으로는 문화예술의 풀뿌리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작가들의 창작예술 활동에 관이 개입할 경우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관은 공간 내에서 토대를 마련하고,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중구 관계자는 "관이 주도할 경우 민간에서 따라 오리라는 보장도 없고 예산상으로도 한계가 있다"면서 "행정 특성상 인푸트가 있으면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장기적으로 봐야 할 사업을 단기적으로 평가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 말고도 문화예술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의 공간 임대를 위해서는 건물을 매입하기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천시의 재정 여건 상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시와 중구청은 순차적으로 계획을 세워 진행하다는 방침이다.

윤공명 담당은 "개항장 문화지구의 경우 서울 인사동이나 대학로, 경기도 파주 헤이리처럼 확실한 방향성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든 점이 있다"면서 "한편으로는 근대 건축물 자원 이외에 고정된 것이 없기에 자유롭게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장점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손동혁 소장은 "문화예술 공간 조성에서 특히 예술인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인천에서 '이곳'이 대표라고 규정짓는 것 자체가 다양성의 관점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소장은 "또 예술인들이 반드시 허름한 공간에서만 살아야 하는 법도 없고 1960~70년대 낭만의 공간이 매력일 수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면서 "먼저 문화예술인들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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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춘 2010-08-23 09:24:59
취재를 편협하게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네요.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없었는지.
지금 문화의 거리로 지정했던 거리에 과연 문화가 있기는 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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