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올라오는 이기심, 직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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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올라오는 이기심, 직시하세요
  • 최원영
  • 승인 2017.02.06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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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들키면 숨는다"



풍경 #36. “들키면 숨는다!”

 

긍정심리학의 지평을 개척한 하버드대학교의 윌리엄 제임스교수는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깨달음은,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겪은 곤경에 관한 글을 작성케 하고, 그 곤경을 학생들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았는지를 분석해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을 5년 간격으로 건강상태와 삶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학생들은 중년이 되면서부터 질병에 시달렸지만, ‘긍정적인’ 관점으로 설명한 학생들은 사회생활에서도 무척 활동적이었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온수와 냉수가 각각 따로 나오는 두 개의 수도꼭지처럼 우리의 마음도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이 따로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 2개의 수도꼭지를 다른 말로 ‘이기심’과 ‘이타심’으로 대체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이나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때로는 이기심으로, 때로는 이타심으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이기심과 이타심이라는 우리들의 마음이 냉수와 온수가 나오는 수돗물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수도꼭지와는 달리 두 마음이 동시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기심이 올라올 때 이타심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버리고, 이타심이 올라올 때는 이기심이 숨어버립니다. 그래서 무척 기쁠 때는 슬픈 일을 잠시 잊어버리는 겁니다. 또한 슬프거나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즐거운 기억은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숨어버립니다.


그러나 수도꼭지와 인간의 마음의 공통점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그래서 온수가 필요할 때는 온수 꼭지를 틀면 되고 냉수가 필요할 때는 냉수 꼭지를 틀면 되듯이, 이기심이 올라올 때는 그것이 나오는 꼭지를 잠그면 됩니다. 그때 이기심의 반대편에 있던 이타심이 올라옵니다. 이기심이 빚어내는 부정적 감정들은 ‘들키면 숨는다’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는 분들은 자신의 그런 감정을 ‘인식하라’ 또는 ‘직시하라’라고 가르쳐줍니다.


예를 들면 화가 났을 때 ‘앗!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라고 의도적으로라도 인지하게 되면, 그 순간 화가 다소나마 진정될 겁니다. 짜증이 날 때도 같습니다. ‘내가 지금 짜증을 내고 있네’라고 중얼거리면, 그저 피식 하고 웃어넘기게 될 겁니다.

 

우리 안에 있던 두 가지 마음인 이기심과 이타심이 상황과 대상에 따라 때로는 이기심으로 때로는 이타심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기심이 만들어낸 분노나 증오, 원망과도 같은 감정들이 올라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기심의 결과가 너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믿으면, 그 이기심을 통제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기심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내’가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의 결과는 과연 불행할까요? <시크릿>이라는 책에 소개된 사례가 그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때 루마니아의 독재자였던 니콜라에 차우세스코는 1966년에 세금을 더 걷기 위해 낙태를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임신을 하지 않는 가정에는 특별한 세금항목을 만들어 엄청난 세금을 걷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건에 처해 있던 많은 가정에서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그 아이들은 제대로 된 정상교육을 받지 못한 채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 중에 많은 아이들이 훗날 범죄자들가 되었다는 겁니다.


지난 1989년에 루마니아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항의시위가 열렸는데, 정부가 강경대응을 해서 일부 시위대를 학살함에 따라 수십 만 명의 국민들이 “정권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고, 차우세스코 가족은 모두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맨 처음 시위를 주동한 청년들은 차우세스코가 낙태금지를 명령한 그 시절에 태어난 세대였던 겁니다. 그러니까 악의로 시작한 일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기심으로 ‘너’를 대할 때,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나’ 자신이 된다는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이기심의 끝이 불행으로 이어진다면, 해법은 간단합니다. 이기심이 올라올 때마다 그것을 직시하면 되니까요. ‘내가 이기심으로 너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여길 때, 그 이기심은 슬그머니 숨어버릴 겁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감정들은 ‘들키면’ 숨어버릴 테니까요. 그때 비로소 용서와 관용, 그리고 사랑의 기운이 서서히 올라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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