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으로 내몰리는 주민들 … 책임은?
상태바
길바닥으로 내몰리는 주민들 … 책임은?
  • 이병기
  • 승인 2010.09.10 11:0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 남구 도화 도시개발사업지구 판자촌


황덕희(왼) 할머니 집에 찾아온 이점순(오른) 할머니가
최미경 삶의 자리 도화지구 대표에게
"누구든 힘을 써서 할머니를 도왔으면 좋겠다"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취재: 이병기 기자

"보상가가 5700만원 나왔는데 인천대에서는 4700만원을 내래. 1천만원 들고 나가라는 거야. 다 늙어서 어떻게 살아. 얼마 전까지는 공공근로를 했는데 이젠 허리가 아파서 하지도 못해. 집에 불이 났는데도 보상은커녕 수리도 못하고. 남편도 장애등급은 없는데 뇌를 다쳐서 쉬고 있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 한영모(60)씨.

남구 도화 도시개발사업지구 옛 인천대 부지에 사는 판자촌 주민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주민들은 인천도개공에서 보상금을 지급받아도 인천대가 부과한 토지점유료 지불하면 방 한 칸 얻기 어려운 실정이다.

주민들은 당장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릴 형편에 놓여 있지만 인천시와 인천대, 인천도개공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주민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미루고 있다. 태풍과 큰 비로 집에 물이 새거나 천장이 무너지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주민들은 '하늘'과 '사람' 모두에게 버림을 받고 있다.

"누구라도 힘을 써서 도와야…"


판자촌의 한 집 모습

지난 주말 찾아간 옛 인천대 부지 도화동 판자촌은 고요했다. 뒤로 보이는 인천대 고층 건물의 '위용' 아래 다닥다닥 붙어있는 단층 판자집들은 더욱 초라해 보인다. 마치 '그동안 내 땅에서 살았으니 이제 돈을 내고 나가라'라는 인천대의 행태를 비추는 듯 하다.

도화 도시개발사업으로 진행중인 이곳 판자촌 주민들은 요즘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괴롭다.

한영모씨는 1984년 이곳 판자촌에 방 하나, 부엌 하나를 얻어 들어왔다.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은 초라한 집이었지만, 조금씩 돈을 모아 방을 늘렸다. 그러나 지난 7월3일 화재가 발생했다. 집 내부는 모조리 타고 잠들어 있던 남편이 다쳐 한 달 간 병원 신세를 졌다.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방서에서는 화재 원인을 알려주지 않았다.


세간살이가 모두 타버린 한영모씨 집 내부

다행히 전기를 이어놓지 않았던 방에는 불이 옮겨붙지 않았다. 세간살이가 모두 불에 타버졌지만, 이웃들이 도와줘 이불, 냉장고 등 몇가지 생활용품을 마련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때부터인가, 돈을 내라고 날라왔어. 이자가 모두 1억이었는데 인천대에서는 4700만원을 내라고 하더라고. 사람이 살게끔 해줘야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동네에서 나간 집들 청소해주고, 그 집에 있는 고철을 팔아서 먹고 살아. 생계가 막막하지. 탕감만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한탄하는 한씨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황덕희(81) 할머니 집에는 마침 옆집에 사는 이점순(74) 할머니와 다른 이웃이 말동무를 위해 찾아와 있었다. 말을 잘 못하는 황덕희 할머니를 대신해 이점순 할머니가 넋두리를 대신한다.


황덕희 할머니댁 입구

"손주가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살았으니까 한 20년 살았을 거야. 보상금이 2100만원 정도 나왔다는 거 같은데 임대료 내면 1천만원도 안 되나봐. 노인네를 길바닥에 나앉으라면 되겠어? 가난하니까 여기에 있지 부자면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면서 살겠냐고. 딸이 있긴 한데 지들은 겨우 살아도 어머니 돌볼 형편은 안 되거든. 그 딸이 가끔 임대료도 내고 했나봐."

이점순 할머니는 10년 넘게 황덕희 할머니를 알고 지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집도 근처에 있지만 토지 소유주가 인천대가 아닌 개인이기 때문에 올 11월께 보상을 받아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까지는 거동이 불편한 황 할머니를 자신이 돌봐줬는데, 이사를 가게 되면 홀로 남을 황 할머니가 걱정이다.

판자촌 내 한 집이 큰 비로 천장이 무너졌다."이 집은 전기도 안 들어와. 아들한테 말해서 우리 집 전기 나눠쓰고 있는데 내가 이사가면 전기도 못 쓰는 거야. 3년 전 중풍이 온 할머니는 화장실만 겨우 다닐 정도야. 도와주는 사람이 오기도 하는데 그 사람들도 노인들이라 도움도 안 돼. 내가 떠나기 전에 할머니가 좀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누구라도 힘을 써서 할머니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옆에 있던 이웃이 할머니에게 주려고 사 온 1.8L 사이다 페트병을 내온다. 음료수컵에 사이다를 따르니 이날 따라 페트병에 남아 있는 양이 확 줄어드는 기분에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깨끗하니 드세요"란 이웃의 말과 "더운데 어여 먹어"라고 재촉하는 황 할머니 말에 무안함과 따뜻함이 섞여 한 번에 잔을 비우고 다음 집으로 길을 나선다. 

이상임(74) 할머니를 찾아간 곳은 판자촌이 아닌 옛 인천전문대 정문 건너편 빌라였다. 큰아들을 스물 일곱에 하늘로 보내고 장애를 가진 작은아들과 둘이 산다는 이상임 할머니. 이 할머니의 판자촌 집은 현재 검게 그을린 잔해만 남아 있다.

이상임 할머니는 작년 11월 화재로 집을 잃었다. 무허가 건축물이라도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지장물 조사를 해야 하는데 이 할머니는 통지를 받지 못해 지장물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도개공에서는 보상을 해주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 할머니에게는 불에 탄 집 잔해와 운 좋게 건진 재산세 등 공과금 납부 영수증이 보상을 받기 위한 유일한 증거다. 

이 할머니는 판자촌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한순간의 화재로 집을 잃어버리고 보상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천대에 토지점유료만 내야 하는 처지다. 동에서 나오는 45만원의 수급비로 생활하는 이상임 할머니는 앞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집에 불이 나고 한 네 달은 교회에서 마련해 준 방에서 살았지.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말해줘서 80만원 주고 여기 들어왔어. 주인이 당장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거야. 매일 불안해 죽겠어. 집 문제가 잘 돼서 돈이라도 주면 시골이라도 가서 살텐데. 걱정이 쌓이고 쌓여."

인천시-인천대-도개공 서로 책임만 떠넘기나?


하소연하는 이상임 할머니

인천대에서 판자촌 100여가구에 대해 토지점유료로 부과한 금액은 약 30억원. 가구별로 면적에 따라 금액 차이가 있지만, 한 가구당 평균 3천만원을 인천대에 납부해야 하는 실정이다.

판자촌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고령이면서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이다. 1천만원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새로운 삶의 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 중 20여가구는 보상금보다 토지점유료가 더 많이 나와 돈을 내고 나가야 하는 처지다. 또 방을 얻어 나가더라도 다달이 들어가는 월세나 관리비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이들도 많다. 

인천대와 인천도개공의 상급 기관이면서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인천시나 토지주인 인천대,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는 도개공 모두는 이런 어려운 주민들을 외면하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인천시청 도시계획국 도시재생2과 박승양 도화구역 담당은 "키(Key)는 인천대가 갖고 있다"면서 "인천대에서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법에서도 토지점유료를 탕감해 줄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시에서 해줄 상황도 아니다"면서 "인천시에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천대에서 검토해야 한다"라고 인천대에 책임을 물었다.

박 담당은 또 "이주대책은 도개공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세입자 등에 대해 임대주택 1600여세대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무상으로 줄 수는 없고, 더 낮은 분양가로 주민들이 융자를 받아 들어가게끔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화재로 잔해만 남아 있는 이상임 할머니 집

장영란 인천대학교 회계과 공유재산 관리 담당은 "토지점유료가 부과된 주민들은 공유재산법에 의하면 감면조정에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주민들이 토지점유료는 납부하고)도개공에서 실질적인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도개공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는 "벌써부터 토지점유료를 낸 사람들이 찾아와 다시 돌려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등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고, 법과 원칙이 다 깨질 수 있기 때문에 부과된 금액을 탕감할 수는 없다"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도개공의 경우 개발이익으로 주민들의 이주 대책마련이 감당되기 때문에 그쪽에서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개공 역시 "회계법상 맞지 않다"는 이유로 맨손으로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주민들의 이주대책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

박우섭 남구청장은 "결국 인천시가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문제"라면서 "나중에는 상당한 사회적 문제가 될 위험도 있기 때문에 시 차원에서 현명하게 풀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모든 걸 법대로만 해서는 잘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다"면서 "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그림나라 2010-09-06 00:23:54
심층적 취재보도입니다. 인천 지역에 쪽방촌은 많지만 도화지구에서의 상황은 정말처절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