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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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 최원영
  • 승인 2017.07.24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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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다람쥐 쳇바퀴의 진실

 

풍경 #52. 다람쥐 쳇바퀴의 진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편했던 날보다는 힘들었던 날들의 기억이 더 생생합니다. 그런 고통의 경험들이 축적이 되어, 그것이 어느새 지혜라는 보물이 되어 우리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실연의 아픔과 청각신경 마비라는 고통을 통해 베토벤은 주옥같은 곡을 만들어냈고, 간질병과 사형수라는 고통의 경험이 도스토옙스키라는 대문호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 마당의 한쪽 편에 놓인 새장 속에 다람쥐를 넣어둔 적이 있었습니다. 새장 안에서 다람쥐가 쉬지도 않고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쟤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쳇바퀴를 왜 마냥 돌리고만 있을까? 바보인가 봐!’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책을 보니까,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이유를 이렇게 멋지게 묘사했습니다.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산과 들을 맘껏 달리고,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도록 달리는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닌지!’라고 말입니다.


아, 그때는 몰랐습니다. 다람쥐가 바보이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를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것이 새장 안에 갇힌 다람쥐에게는 삶의 희망이었고 존재의 이유였을 겁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늘 배가 고팠고, 그리고 못생겨서 친구들에게서 늘 따돌림을 받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자주 다락방에 올라가서는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우리 집이 잘 살아서 온 가족이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풍요로운 식탁 위에서 맛있는 밥을 함께 먹는 상상입니다. 자신도 남들처럼 잘 생겨서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그런 아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말입니다.

그러나 ‘가난’과 ‘못생김’이라는 고통은 이 소년을 훗날 유명한 동화작가 안데르센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가난을 경험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쓰게 했고, 못생겼기에 ‘미운 오리새끼’를 쓰게 한 것이지요.
 

이런 생각도 문득 듭니다.

‘왜 고통은 누군가에게는 줄 끊긴 연처럼 추락하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바람개비처럼 도약하게 만드는 걸까?’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그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버리는 결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바로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즉 ‘해석’의 차이가 절망과 희망으로, 불행과 행복으로 갈라놓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고통의 순간, 마치 새장 속에 갇힌 다람쥐가 쳇바퀴를 열심히 돌리면서 언젠가 맞이하게 될 자유의 순간을 기다리며 자신의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배고픔과 따돌림이라는 고통의 경험을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하면서 결국 명작을 남긴 안데르센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느닷없이 다가온 고통을 그들처럼 멋지게 해석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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