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을 때까정 어디 이사 가믄 안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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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을 때까정 어디 이사 가믄 안디야"
  • 김인자
  • 승인 2017.08.01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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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함박꽃 할머니의 함박웃음

띵동~
비 내리는 아침.
심계옥엄니 사랑터 가시고 차 한 잔 들고 베란다에 앉아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인터폰으로 현관 밖을 확인하니 함박꽃할머시다.
반가운 마음에 급히 문을 여니 함박꽃 할머니가 불쑥 종이 한 장을 내미신다.
"나 요기다가 전화 좀 해줘."
"전화요? 그럴께요, 할머니. 들어오세요."
"아녀, 식전 댓바람 부터 여편네가 넘희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꼬 잠깐만 이리 나와봐봐."
"할머니, 괜찮아요." 하고 말씀드려도 안되야하시며 한사코 내팔을 끌고 현관밖으로 나오시는 함박꽃할머니.
"선상님, 나 요기다가 전화 좀 해줘 봐."
"요기가 어딘데요 할머니?"
"연금공단."
"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이요?"
"응, 요기다 전화 한 통만 해줘."
"네, 할머니 해드리께요. 근데 전화해서 뭐라구 하믄 돼요? 할머니?"
"통장 바꾼다고."
"통장바꾼다고요?"
"응, 새마을금고로 통장 바꾼다고 전화 좀 해줘."
 
할머니가 주시는 번호로 전화를 거니 안내하는 분이 나온다.
"연금 입금 통장을 바꾸려고 하는데요."
"본인이세요?"
"아니요.할머니꺼요."
"본인 확인이 필요한대요."
"예, 할머니 바꿔드리께요."
함박꽃할머니를 바꿔드리니 본인 확인을 하는데만도 시간이 걸린다.
할머니가 틀니를 빼놓으셔서 말씀이 새서 안내하시는 분이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내가 할머니 핸드폰을 도로 받아 상황 설명을 하니 본인 확인은 본인만이 해야한단다.
"할머니 성함이 000 맞으세요?"
"누구요?"
"000요."
"그게 누군디요?"
"000할머니 성함 아니세요?"
전화기에 귀를 바짝 대고 들어보니 안내하시는 분과 할머니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계신다. 할머니에게서 전화기를 받았다.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할머니, 나,그리고 안내하시는 분 이렇게 셋이서 통화를 했다.
"할머니, 성함이 000 맞으세요?"
하고 안내하시는 분이 물으면 내가 다시 큰소리로 한 자 한 자 함박꽃할머니에게 다시 말씀드렸다.
"할머니, 이름이 000예요?"
"응, 내 이름은 000야."
그러면 같이 듣고 있던 안내하시는 분이 아 예 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할머니,지금 사시는 주소 한 번 말씀해보세요."
하면 "뭐 안들려?" 하고 할머니가 말씀하시고 그러면 내가 다시 "할머니, 어디 살아요?"하고 여쭈었다.
"나 인천시 000 000" 하고 줄줄 말씀하신다. 외우신거 같다. 아이처럼 쉬지않고 줄줄줄.
"그럼 할머니 지금 같이 사시는 가족 이름 한 명만 대보세요" 하고 안내하시는 분이 물으면 할머니는 또 못 알아들으시고 나를 쳐다 보신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다시 여쭙는다.
"할머니, 지금 집에 누구랑 살아요?"
"딸이랑 사우랑 손자."
"손자 이름은 뭐예요?"하고 여쭈니 함박꽃할머니 "우리 손자 이름은 000야." 하신다.
내가 안내하시는 분께 "할머니 같이 사시는 가족 손자 이름 말씀드려도 되죠?" 하고 물으니 그래도 된다신다.
"본인 확인 마쳤습니다." 하고 안내하시는 분이 말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또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의 시간.
"할머니,입금 받으실 은행은 어디예요?" 하니 할머니 그건 정확하게 말씀하신다.
"새마을금고요."
"그럼 할머니, 입금 통장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하니 할머니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종이를 펼치신다. 그리고 할머니가 계좌번호를 한 자 한 자 천천히 부르신다. 그런데 안내하시는 분이 못 알아들으신다.몇 번을 되묻는다.목소리에 약간 짜증이 배어있다.
"뭐라고 하시는지 하나도 못알아듣겠어요. 보호자 분이 불러주세요."
이번엔 내가 종이에 적힌 대로 계좌번호를 불렀다. 천천히 또박또박.
그런데도 잘 못알아듣는다. 안내하시는 분이 "전화가 잘 안들리네요." 하면서.할머니 표정이 어두워지신다.
"안된디야?"
"아녜요, 할머니. 제가 해드릴테니까 아무 걱정하지마세요.아라찌 할무니?"하니 그제야 할머니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몇 번을 다시 불러드렸다. 그런데 그런 통장이 없다고 나온단다. 에고 할머니가 종이에 옮겨 적으시면서 숫자를 잘못 적으셨나보다.
"잠시만요 통장 보고 다시 불러드릴께요."하니
"그런데 실례하지만 지금 전화받으시는 분은 누구세요?"하고 안내하시는 분이 묻는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이웃집 사는 사람이요. 하면 할머니 통장 변경 안해줄까봐. 내가 누구라고 해야하지?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내 며느리유, 왜유?" 하신다.
"아 예 며느님이여." 그제서야 안내하시는 분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천천히 통장 보고 말씀해주세요."
할머니를 모시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할머니 집에 와 통장을 확인하니 마지막 숫자가 1아니라 숫자 6이다.
"할머니, 마지막 숫자가 1이 아니라 숫자가 6이네."
"이게 왜 이거야? 요거랑 똑같이 생겼구만." 하신다.
아... 우리 함박꽃할머니 숫자를 모르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쓰신 숫자가 그림이다. 할머니가 통장에 쓰인 숫자를 보고 똑같이 그리셨구나...
 
"할머니, 이 집에 누구랑 살아요?"
"나? 딸하고 손자."
"그러면 할머니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딸이나 손자한테 해달라고 하시지,"
"일나갔어."
"아..네."
순간 이 통장은 딸이나 손자가 몰라야하는 함박꽃 할머니만의 비밀 통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년 전 3만원 주고 함박꽃 사다 아파트화단에 심으시고 나보고 꽃보고 가요 하셨던 함박꽃 할머니 집에 처음 들어와 보네.
깨끗하게 정돈되진 않았지만 구석구석 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살림살이가 보인다.
할머니가 살림을 사시는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정겨운 것들.
 
"할머니~"
"응 왜?"
"이집 할머니가 살림사시구나?"
"어,어트게 알았어?"
"하하 저는 척 보믄 알아요."
"그랴? 나도 이쁜 선상님 집 어딘지 유심히 봤더랬어."
그러고 보니 함박꽃할머니가 나 몇호에 사는지 어떻게 아시고 정확하게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셨을까?
"할머니, 저 몇 호에 사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이쁜 선상님이 어디 사는지 내가 으트게 알았냐구?"
"네,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말씀 안드린거 같은데."
"선상님이 말 안하믄 내가 모르나? 내가 젤로다 좋아하는 우리 선상님이 어디 사는 지 내가 모를까봐서? 물어봤지.내가 경비들헌테."
"아 그르셨구나..."
"내가 요즘에 자꾸만 뭘 까먹어. 정신머리가 읍어가지고.그래서 내가 뭐 물어보구 싶은게 생기믄 우리 이쁜 선상님을 찾아가야 되겄다 하고 내가 늘 내 맘속에 새기고 있었지."
"아 그르셨구나. 잘하셨어요,할머니."
"그르다가 통장 바꾸래서 옳다 잘 되었다하구 울선상님헌테 물어볼라구 간거야. 왜 갑자기 멀쩡한 은행은 없어져가지구 사람을 성가시게 하구 그른댜?"
"아 할머니 00은행 거래하셨구나아?"
"그랬지.고마와. 울 선상님이 아니었으믄 내가 비싼 택시값을 치룰 뻔했네. 연금공단 까정 내가 택시를 타고 가야되나? 우트카나 그러고 있었거덩"
"아 그르셨구나 잘하셨어요 할머니. 또 궁금한거나 부탁할거 있으심 언제든지 벨을 눌러주세요."
하니 함박꽃할머니 함박꽃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에구 고마와. 노인네 식전 댓바람부터 찾아와서 우리 이쁜 선상님 성가스럽게 했는데 인상 안쓰고 잘 해결 해줘서 고마와. 이걸 으트케 해야되나? 멧날 메칠 내가 고민했는데 걱정 한 개가 없어졌다. 증말 고마와."
할머니가 틀니없는 입으로 오믈오물 웃으신다.
그런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나왔다.
"이구 정많은 우리 선상님 나 죽을때까정 어디 이사 가믄 안디야. 여기서 살어야돼. 아라찌." 함박꽃할머니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내려올때까지 입을 오물거리며 손을 흔들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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