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쉬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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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쉬어가며
  • 최원영
  • 승인 2017.11.1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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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해거리, 나무들의 재충전


 

풍경 #63. “풀레!”


탄자니아에서 킬리만자로 정상을 등반할 때, 급하게 오르면 고산병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등반을 포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 아마추어 등반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성취지향적인 성향이 강해서는 아닐까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깊게 몸에 밴 우리들이라서 산의 정상을 오르기 위해 마치 전투를 치르듯 비장한 각오로 산을 오르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어릴 때부터 정해진 목표 이외에는 관심을 두면 안 된다고 배워왔고, 그래서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다람쥐의 노니는 모습, 나뭇잎들의 아름다운 출렁임, 하얀 구름의 소리 없는 놀이, 개울물의 소박한 노랫소리, 이 모든 것들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믿게 되고, 그래서 결국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모두를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은 아닐까요.
 

킬리만자로를 등정하려면, 반드시 셰르파의 도움을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셰르파들은 한국 등반객들만 보면 “풀레! 풀레!”라고 외친다고 해요. 이 말은 ‘천천히!’라는 의미입니다. 목표 지점 만을 향해 마치 전투를 하듯 비장한 모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걷다 보면 중간에 등정을 포기해야만 하니까요. 그리고 자연이 주는 온갖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기 때문일 테니까요.

 

 

풍경 #64. 쉼표와 성악가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유명한 성악가가 있었는데요. 그는 새로운 곡을 연습도 한 번 하지 않고도 악보만 보고 잘 불렀다고 합니다. 천재적인 성악가였나 봅니다.
 

어느 공연 날입니다. 늘 해왔던 대로 악보를 손에 쥔 채 무대에 올라간 성악가는 노래를 끝까지 멋지게 불렀습니다.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대 인사를 하려던 그가 쓰러지는 게 아닌가요? 그러고는 곧 죽었습니다.

 

이유가 무척 교훈적입니다. 악보에 작곡가가 깜빡 잊고 ‘쉼표’를 그려 넣지 않았던 겁니다. 악보에 적힌 대로 잘 따라 부른 그가 노래를 부르던 중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불렀기에 그만 죽고 말았던 거예요.

 

나무도 때가 되면 한 해 동안 열매 맺기를 포기한다고 해요. 이를 ‘해거리’라고 합니다. 해거리를 하는 동안 재충전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 년의 휴식을 마친 다음 해에는 어김없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 또한 ‘풀레’라고 외치는 셰르파의 가르침과 똑같은 지혜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이 주는 온갖 선물들, 자연이 주는 온갖 축복을 우리들 것으로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휴식이란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시인 허영자님의 ‘완행열차’라는 시가 그래서 마음에 깊이 들어옵니다.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흠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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