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았죠. 내가 열려야 상대도 마음이 열린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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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죠. 내가 열려야 상대도 마음이 열린다는걸"
  • 김인자
  • 승인 2018.03.0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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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심계옥엄니선생님 가정방문오다②


"제가 겉으로 확 내지르는 성격이 아니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속에서는 시비시비 부글 부글 폭발할거 같은데 겉으론 내색도 못하고 근데 그걸 내가 엄마한테는 하더라구요. 유일하게 푼게 엄마였던 거지요. 미쳐가지고 그땐 미쳐서 미친여자가 되서 내질르는 거예요.그래놓고는 그걸 또 못견뎌하고."

"아,얼마나 힘드셨으면. 저도 그래요, 선생님."
"그쵸, 함께 모시고 사는 사람 아니믄 절대 이 고통 모르죠."
"예, 맞아요 선생님."
"그렇다고 뭐 큰 거로 난리치는 것도 아니죠."
"예 ..."

"엄마, 힘드니까 닦지마. 했는데 닦죠. 그러면 닦지말랬는데 왜 닦았냐고 그 사소한 거로 미치는 거예요. 절대 미칠 상황이 아닌데. 미쳤어요... 미쳐서 지랄발광을 하는거죠. 그럼 엄마는 아뭇소리도 안하고 푹 꺾여요. 밟았는데 꿈틀도 안하니까 그걸 보고 또 미쳐서 발광을 하죠. 그리고 그걸 또 못견뎌하고. 내가 엄마랑 똑같더라구요. 제 성격이 누가 뭐라고 쎄게 말하면 팍 꺾여요.
제가 센터에서 가족모임 업무를 맡게 되면서 저 또한 치매가족이니까 치매보호자분들께 제대로된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이전에도 저희 센터에서 가족모임을 했는데 오시는 분만 오시고 모임이 제대로 잘 안됐다고 하더라구요. 제대로 운영하면 진짜 좋은건데.. 그래서 치매 어르신들 환경이 어떤지 직접 사시는걸 보고 싶었어요.
물론 가정방문이란 것이 부담되시는 분도 계실 거고 좋아하시는 분도 계실 거예요. 물론 싫어하시는 분도 계실 거구요.
제가 시어머니, 친정 어머니때문에 치매를 초기부터 말기까지 알게 되었고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또 그 시간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일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고마운 생각이 들어요. 제가 신앙이 있긴 하지만 정말 너무 힘들었거든요. 죽음이 소망이었으니까요. 치매 어머니들 덕분에 그 모진 시련 다 겪게하시더니 하느님이 결국 제게 이일(치매일)을 또 하게 하시네요.
제 친정아버님은 담배를 안 피우세요. 근데 저는 초등학교 2학년때 담배를 처음 피워봤어요. 아버지 손님이 집에 오셔서 담배를 피우시고 가셨는데 처음 맡아본 담배 냄새가 그렇게 좋더라구요. 그래서 맛은 어떨까 호기심에 손님이 남겨두고간 담배를 피워봤지요. 그런데 어후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고 아주 혼났어요. 울 아들 둘이 어려운 환경에서 참 잘 커줘서 고마웠는데 항시 궁금하더라고요. 이 녀석들은 담배를 피우나? 안피우나? 그래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연거죠. 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때 처음 담배를 피워봤다하고요. 그랬더니 엄마가 그랬다고? 우리보다 더 쎄네? 하면서 자연스레 자기들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때 알았죠. 내가 열려야 상대도 마음이 열린다는걸.
가정방문 부담스러워들 하신다는거 알아요. 저 이제 반절 했는데 제가 참 좋아요. 제 얘기를 하면서 말로 스트레스도 풀고 힐링도 되고. 또 보호자님들은 제 얘길 들으시면서 위로가 되시나봐요."

"예,맞아요,선생님. 큰 위로가 됐어요.선생님도 나랑 같구나. 많이 힘드셨고 지금도 힘들게 사시는구나 생각하니 선생님 말씀이 공감이 되요. 고맙습니다."
"예, 제가 가정방문을 나온 이유가 바로 그 두 가지 목적때문이에요.
하나는 보호자분들이 엄청나게 받고 계시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되시는지 검사를 해드리고, 또 하나는 센터에서 가족모임을 하니까 많이 참석해주세요 하는 부탁을 드리려구요."
"예,고맙습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예, 꼭 나오셔요. 3월 말 부터 시작해서 매주 1회 8회차 모임을 하려고 해요.구체적인 계획은 세워봐야 알겠지만 3번은 텃밭을 함께 가꿔보고 3번은 영화를 함께 보면 어떨까 생각중이에요."
"예, 선생님. 무얼하든 같은 상황인 분들이 모여 얼굴보는 것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죠."
"예, 저희는 밥상을 차려드릴테니 와서 맛있게들 드세요."
"예,선생님.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거 어때요?"
"우와, 예뻐요 선생님."
치매센터 방문 선생님이 목에 두른 보드라운 털 목도리를 쓰다듬으며 소녀처럼 물으신다.
"이뿌죠? 이거 제가 저한테 선물한 목도리에요. 미술로 심리치료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인데 보호자님도 한번 해보세요."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예, 그동안 수고한 자기 자신한테 선물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선물을 주면서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라고 하시더군요.
이건 나한테 주는 선물이야. 그동안 고생많았어.하고요.
이거 만 원 주고 샀어요. 제가 털을 좋아하거든요. 이걸 사가지고 집에 왔는데 너무 좋은거예요. 사고 나서는 바로 말을 못하고 집에 와서 미술치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풀러놓은 목도리를 다시 목에 두르고 큰소리로 말했죠.
이건 나한테 주는 선물이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하고요. 그랬더니 목도리를 둘렀을 때도 좋았는데 말을 하니까 더 좋은거 있죠. 너무 좋아서 집에서도 풀르지 않고 목에 두르고 있었어요. 두 시간 동안이나요."

풀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쁘다고 했던가.
가정방문오신 심계옥엄니 치매센터 선생님.
센터에서 뵐 때는 어렵고 말 붙이기 힘든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정방문오셔서 먼저 마음을 열고 당신 이야기를 해주시니 선생님은 참으로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식사도 마다시고 서둘러 돌아가시는 선생님에게 내가 쓴 사진 에세이집 <꽃보다 할매 할배>를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아픈 나에게 선물로 와주신 심계옥엄니 선생님에게 진심을 다해 깊숙히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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