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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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 최원영
  • 승인 2018.05.2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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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가뭄 속 빨간우산



풍경 #82. 빨간 우산과 소녀
 
미국의 어느 작은 농촌마을에 커다란 위기가 찾아들었습니다. 근 한 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무척 심했던 겁니다. 사람들은 이젠 일기예보를 듣는 것조차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뒷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예배당에 가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날도 사람들은 예배당에 많이 모였습니다. 모두들 비를 달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의 제일 앞자리에 금발의 소녀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소녀가 앉은 자리 옆에는 빨간 우산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어른들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감돌고 있었지만, 소녀의 얼굴에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치 소풍을 떠나기 전에 설레는 마음처럼 소녀의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습니다. 마치 비가 곧 내릴 것처럼 말입니다.
소녀는 그제도, 어제도 예배당에 왔고 오늘도 왔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또 올 겁니다. 빨간 우산을 들고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도할 겁니다.
어른들은 일기예보를 통해 그날도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래서 우산이 필요 없었겠지요. 그럼에도 어른들은 ‘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우산’을 가져왔을 겁니다.
어른들은 절망하면서 기도했지만 소녀는 기쁨으로 기도했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그때를 떠올리며 빨간 우산을 항상 들고 다니는 천사 같은 소녀의 아름다운 마음이 드러나는 참 고운 예화입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어른들처럼 ‘절망’하면서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빨간 우산 소녀처럼 ‘희망’으로 그 시간을 채울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어른들은 고통스럽게 그 시간을 보냈겠지만 소녀는 기쁨으로 보냈을 겁니다. 행복의 발견은 이 소녀의 마음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풍경 #83. 아버지의 기다림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 날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합격자 발표를 학교 게시판이나 담장에 붙여놓았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버스 정류장에 내려 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날따라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쯤이었나 봅니다.
저 멀리 정문 옆에 눈 덮인 중절모를 쓰고 두터운 외투를 입은 채 서 있는 초로의 아저씨가 보였습니다. 희미하게나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낯익은 모습이었어요. 가까이 가보니 저희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른 아침에 서울로 올라오셔서 제가 불합격된 것을 아시고는 한 시간 이상이나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다. 저를 본 아버지는 이렇게 운을 떼시더군요.
“얘야, 어디 가서 차 한 잔 할까?”
차를 마시면서 아버지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아들이 불합격 소식을 알고는 혹시 절망할까봐 그러셨을 겁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빨간 우산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그때로부터 불과 6년 후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셔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길을 나섰을 아버지! 아들의 수험번호가 벽보에 붙어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번호가 없었습니다. 그때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를 아버지가 된 지금에서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합격한 아들의 마음을 도닥거려주는 것을 자신의 실망보다 먼저 챙기는 아버지! 자신의 아픔까지도 가슴에 묻은 채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시던 그 마음에서 ‘기다림’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기다림! 얼마나 안타깝고 애탈까요.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러나 빨간 우산 소녀와 제 아버지의 기다림처럼 고통의 시간을 오히려 ‘희망’으로 채우고, ‘격려’의 시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행복의 발견은 고통스런 기다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기다림의 시간들을 어떻게 해석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지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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