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고 희망을 품게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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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고 희망을 품게하는 말
  • 최원영
  • 승인 2018.06.25 0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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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거친 말과 부드러운 말



풍경 #85. 거친 말과 부드러운 말
 
4.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비중 있는 정치인들의 적절하지 못한 말 때문에 무척 떠들썩했습니다. 물론 선거가 끝난 후에도 그 말들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자성론도 있었습니다. 거친 말은 문제의 원인을 ‘네 탓’이라고 여길 때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유명인의 말은 수많은 대중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신중히 생각한 후에 말을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감정의 95%는 그 순간 마음을 스쳐가는 말 때문에 생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극히 사소한 일에 ‘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듣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불쾌한 기분으로 직장에 가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고 맙니다. 이렇듯 ‘내’가 던지는 거친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회생활 전반으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7년 전 일간지에 ‘언어사용의 실태 조사 결과’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전국 초중고생 8천7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까 73%의 학생들이 매일 입에 욕을 달고 살고 있고, 5.4%만이 욕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린 학생들의 이런 거친 말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바로 우리 어른들의 일상생활이 혹시 그렇지는 않을까요.

거친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이 필요한 시대가 된 듯 싶습니다. 부드러운 말이 오갈 때 서로의 가슴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김영아는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의 책에서 잘못을 저지른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너, 정말 힘들었구나. 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그렇지? 처음에는 들어주기를 갈망하다가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제는 지쳐서 화가 난 거구나. 그러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사실 잘못한 자녀에게 작가의 가르침을 따르기는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거친 말을 쏟아내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아무리 화를 내며 꾸짖는다고 해도 자녀의 태도는 쉽게 고쳐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변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한번쯤은 우리도 ‘너, 정말 힘들었구나.’라고 마음의 문을 열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영아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는 잘못을 저지르면서 배우고, 부모는 그것을 용서하면서 배운다’라고요.
 
 
풍경 #86. 언어는 희망을 이야기할 때 빛이 난다 

말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제자에게 묵자는 이렇게 답을 해주었습니다.
“파리와 모기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소리를 내지요. 하지만 그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던가요? 오히려 사람들을 괴롭힐 뿐입니다. 하지만 수탉이 아무 때나 울던가요? 새벽을 알리는 그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지 않나요?”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곧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파리와 모기처럼 하루 종일 떠들어댄다고 해도 그 말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차라리 침묵하고 있으라는 묵자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의 목적 중 하나는 나의 말을 통해 상대가 용기를 내고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겁니다.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잠시 후 있을 주일 미사를 위한 준비로 한창 바쁩니다. 신부님을 돕는 복사소년은 신부님 곁에서 미사 때 쓸 성찬용 포도주 잔을 꺼내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너무도 놀라고 죄송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깨진 잔을 본 신부님은 화를 몹시 내며 “다시는 재단 앞에 나타나지 마라”며 소리쳤습니다. 울면서 성당 밖으로 뛰쳐나간 소년은 다시는 성당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훗날 유고의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성당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곳 신부님은 달랐습니다. 울고 있는 소년의 어깨 위에 신부님은 자신의 손을 가만히 얹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신부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울지 말거라, 얘야. 내가 너에게 고백할 게 하나 있단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 너처럼 포도주 잔을 깨뜨렸었어. 그때 신부님이 나더러 ‘너는 커서 신부가 될 사람이야’라고 말씀해주셨어. 그래서 이렇게 신부가 되었잖니. 이제 나도 너에게 말해 줄 수 있겠구나. 너도 커서 신부가 될 사람이야, 라고 말이야.”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소년은 훗날 대주교가 되었으니까요.
 
우리가 던지는 언어가 이렇게 듣는 사람에게 희망이 되어줄 때 비로소 빛이 납니다. 그리고 그 빛은 곳곳에 드리운 어둠을 밝게 비춰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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