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비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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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비교하기
  • 최원영
  • 승인 2018.08.06 0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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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횡적비교와 종적비교

 

풍경 #89. 횡적비교와 종적비교
 
성경이든 불경이든 남과 비교하는 순간부터 불행해진다고 쓰여 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 명이 있는데 누군가가 저에게 초콜릿 하나를 주면 무척 고맙게 여기지만, 잠시 후 옆 사람에게는 한 개가 아니라 한 박스 주는 것을 보면 금방 속이 뒤틀립니다. 저를 무시한 것처럼 여깁니다. 자존심이 상해버리는 겁니다. 그저 하나만 주어도 고맙게 여기면 될 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게 도무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가난한 부부에게 산신령이 찾아와 느닷없이 말합니다.
“원하는 소원을 세 가지만 말해보아라. 그러면 하루에 한 가지씩 이루어질 거다. 단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네가 소원을 말할 때마다 이웃집은 두 배를 갖는다는 점이다.”
 
부부는 고민 끝에 낡아빠진 집 대신에 대궐 같은 집을 원했습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정말 대궐 같은 집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이웃집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집보다 두 배나 넓고 멋진 집이었습니다. 질투심이 치솟았습니다.
두 번째 소원은 텅 빈 창고를 보물로 가득 채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역시 이웃집 돌쇠네 창고는 자신들보다 두 배나 많은 보물로 채워졌습니다. 돌쇠는 부부네 집보다 훨씬 더 가난해서 곧잘 쌀을 얻어가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길에서 만나도 인사조차 하지 않고 거드름을 피워대곤 합니다. 그리고 정작 돌쇠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들보다 두 배나 가졌으니 돌쇠를 얼마나 미워했을지 가늠이 됩니다.
이제 세 번째 소원만이 남았습니다.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결국 이런 소망을 말했습니다.
“저의 한쪽 눈을 가져가세요.”
 
이제 부부는 애꾸눈이 되었을 겁니다. 물론 돌쇠는 장님이 되었을 거고요. 장님이 된 돌쇠를 보면서 애꾸눈 부부가 행복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잠시 동안은 통쾌한 마음이 들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얼마나 후회했을까요.
비교는 이렇게 자신을 망치고 남까지도 망치는 흉측한 태도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남과 비교하는 것을 ‘횡적비교’라고 부릅니다. 횡적비교는 인격을 파괴시키는 주범입니다.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유명인사가 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건물의 조각상을 공모했는데, 다빈치의 설계도가 채택되지 않고 무명조각가인 미켈란젤로의 것이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저 녀석 때문에 내 명예와 명성이 물거품이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한 다빈치는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횡적비교는 이렇게 한 사람을 불행의 늪으로 빠뜨리고 맙니다. 비교하는 마음은 본능적이어서 누구에게나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비교를 남과 하는 습성만큼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종적비교’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을 더 성장하게 만드는 비교입니다. 횡적비교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라면, 종적비교는 나의 과거와 현재나 미래를 비교하는 겁니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비교해보면, 또는 지금의 나와 내년의 나를 비교하면,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가늠해볼 수가 있고,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는 계기가 되겠지요. 이것이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줍니다.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라는 책에 ‘성공학’을 창시한 나폴레옹 힐 교수가 이 부분에 대해 말한 것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심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남의 정원이 더 푸르다고 부러워하면 진정 자신의 정원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한다. 지금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구석구석을 살펴라. 행복이 바로 곁에 있음을 깨닫는다면 타인이나 외부환경과 상관없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습니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맞추려고 사는 것보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만족하며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정원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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