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의 말은 증거가 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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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의 말은 증거가 되지 못할까?
  • 박교연
  • 승인 2018.09.2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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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널' 활동가

  2012년, 미국 각주에서 약 40만 여건의 강간 증거물들이 방치된 게 발견됐다. 피해자들은 말했다. 증거도 제출했고, 증언도 했으니 일주일이면 가해자를 잡을 줄 알았다고. 하지만 당시 경찰보고서를 보면, 경찰은 강간 피해자들을 ‘진짜 피해자’와 ‘창녀’로 구분하여 특정 사건만을 수사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피해자상’에 들어맞지 않는 피해자는 믿지 않았고,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사건을 수사하지도 않았다.

  이건 비단 미국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성범죄는 형사사건 중 가장 입증하기 어려운 범죄다. 왜냐하면 많은 수의 가해자가 ‘억울한’, ‘오해에서 비롯된’, ‘한순간의 실수’라는 말로 성폭력 가해 사실을 왜곡·은폐하고, 피해자가 피해자답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걸 빌미삼아 성범죄를 무마하려하기 때문이다. 안희정 성폭행 피해 생존자이자 노동자 김지은은 말했다. “재판 중에 노동자로서 성실히 일했던 내 인생은 모두가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좋은 근거로 사용됐다”고. 도대체 피해자다운 건 뭘까? 그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일관성 있는 여성의 말은 증거가 되지 못하는 걸까?

  이는 9월 6일 보배드림에서 올라온 곰탕집 성추행 판결 논란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남자들은 해당 판결이 “명확한 증거 없이 여성의 증언만으로 실형이 가능한 대한민국 성범죄 판결의 현주소를 알려준 것”이라며 공분했다. 심지어 글이 올라온 지 4일 만에 판결을 재고하고, 판결을 내린 판사를 징계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5만 명을 넘겼다. 이들은 CCTV에 가해사실이 분명하게 담기지 않았기에 가해자를 무죄 추정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건 피해자의 증언을 완전히 무시하는 발상이다.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피해자가 모범적인 시민이라면 재판부는 충분히 유죄의 사유로 피해자 진술을 채택할 수 있다. 그리고 CCTV에 찍히지 않은 모든 범죄가 무죄라면,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들은 물리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무죄일 것이다.

  강도, 폭행, 침입 등 여러 범죄에서 피해자의 일관성 있는 증언은 매우 주요한 증거다. 그렇다면 왜 유독 성범죄에서는 피해자의 말이 증거가 되기에 불충분하다고 여겨지는 걸까? 강간 피해자들은 강간을 입증하려는 과정 속에서 여러 차례 좌절을 겪는다. 2017년 11월 10일 시작된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해시태그 운동은 3일 만에 20만 건도 넘게 리트윗되었는데, 그때 공유된 성범죄에 관한 112건의 증언들을 살펴보면 경찰부터가 얼마나 성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피해자의 증언을 무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일이 자꾸 생기는 건 성범죄에 대한 교육 부족과 피해자의 트라우마 및 행동양식에 대한 무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성범죄가 여성대상범죄이며 여성을 남성보다 불신해서다. 2012년 방치되었던 강간 증거물을 재검사할 때, 사건을 맡았던 담당자들은 주의 재정난과 인력난이 몹시 심각하기에 신빙성 없는 사건들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뒤늦게 검증된 증거물에서 중복되는 DNA가 쏟아져 나왔고, 4만 여건의 강간범죄 중 연쇄강간이 30%가 넘는다는 게 밝혀졌다. 이건 경찰이 피해 여성의 말을 진작 들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범죄가 30%나 된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다.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올바른 피해자상과도 연관이 깊다. 양예원이 5월 15일 스튜디오 출사 성폭행에 대해 고발했을 때, 많은 수의 사람들은 양예원이 피해자로서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얘기하며 그의 고발을 믿지 않았다. 9월 5일 첫 공판 때도 7월 29일에 바다낚시를 갔다는 이유로 양예원은 결코 피해자일 수 없다고 했다. 노동자 김지은이 열심히 일했기에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양예원도 여행을 갔다는 것만으로 피해자일 수 없었다. 이처럼 여성 피해자들은 사소한 이유로 피해자성을 박탈당한다. 치마 길이가 짧아서, 가해자에게 웃어줘서, 밤늦게 다녀서, 사건 이후로 친구랑 만나서 등등.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이유는 너무 사소하고 하찮다. 그리고 그 하찮은 이유로 여성 피해자는 정의를 구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다.

  “내가 그렇게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일까요?” 2012년 방치된 강간증거물 무더기를 발견하게 된 피해자는 물었다. 내가 그렇게 하찮고 중요하지 않냐고. 나의 피해는 별 거 아니라서 그냥 묻어버려도 되는 거냐고. 무시당하고 외면당한 피해자들의 절규는 미국뿐 아니라, 지금 우리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남대 산학협력팀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유죄 판결이 난 성범죄 1,700건의 형량을 집계했고, 1700건 중 절반이 넘는 52.4%(890건)에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는 걸 밝혀냈다. 그리고 무분별한 집행유예 선고만큼이나 별다른 이유 없이 실형률과 형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실형률은 2012년 56.4%에서 2013년 47.7%로, 2014년에는 33.5%로 감소했고, 형량은 2012년에는 평균 46.4개월이었지만 2014년에는 평균 33.1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법무부에서 발행한 2013년 ‘법원별 양형기준 준수율 현황’ 자료를 봐도 성범죄의 경우 양형기준 준수율이 85.7%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14%에 이르는 성범죄자들이 ‘봐주기 판결’이 수해를 입은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든다(2015)」라는 에세이 모음집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무턱대고 가르치려 들면서 여성을 침묵시키는 경향은, 여성에 대한 권리가 남성에게 있다고 믿는 믿음에 기초하며, 바로 여기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함께 유래한다”고 말했다. 이건 안드레아 드워킨이 일찍이 「포르노그래피(1981)」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겪는 성범죄에 대해 증언하려 할 때마다 무시당하고 거부당하며 침묵 당한다”고 지적한 것과 같다. 드워킨은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여성들의 증언을 귀담아듣기 위해서는 먼저 광범위한 남성들이 모두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하기에, 결국 남성들은 여성의 증언을 기각하는 훨씬 더 쉬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걸로 설명했다. 리베카 솔닛도 그의 저서에서 여성들의 일상적 괴로움과 극단적 폭력 사이에는 연속선이 존재하며, 남성들이 “나는 남자로서 이 여자의 말을 가로막고 입을 다물게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너는 여자로서 네 입을 열 권리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게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 말했다.

  결국 여성의 말을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것은 여성을 믿는 게 남성권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여성의 생존과 존엄과 자유가 중요하다면 사회는 좀 더 여성의 말을 들어야한다. 여성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에서만 인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니 더 이상 피해자다운 피해자를 그만 강요하고, 여성이 피해사실을 말하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증거가 된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한다. 피해를 입은 많은 수의 여성은 오늘도 온몸으로 부르짖고 있다. “내가 바로 그 증거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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