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우리 보고 뒤로 가서 앉으래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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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우리 보고 뒤로 가서 앉으래자나."
  • 김인자
  • 승인 2018.11.06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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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사랑터 차 앞좌석


 
"아구, 이뻐라. 이것 좀 봐라."
심계옥엄니 사랑터 가시는 날 아침. 우리 심계옥엄니가 예쁘다며 보라고 말씀하시는 빨간 열매, 사철나무 열매다. 초록잎들 사이에 몽실몽실 빨갛게 박혀있는 쪼꼬만 열매가 꽤나 앙증맞다.
"아유, 진짜 이뿌네. 엄니." 하며 내가 빨간 열매 한 알을 따려고 하자 심계옥 엄니가 내 손등을 탁 하고 세게 내려치신다. 내려치시는 심계옥엄니의 손 힘이 얼마나 세던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야, 엄니 아퍼~어. 왜 때리셔여어?"
"이뿌믄 그냥 두고 보지 왜 따려고 하냐?"
"하두 예뻐서 자세히 보려고 그랬지."
"그게 말이냐? 이뿌믄 그냥 보지 왜 따?
쟤네들도 오래 오래 저 자리에 있고 싶을턴데. 지 에비도 있고 지 에미도 있을거고. 니가 똑 하고 하나 따오믄 떨어져 나오는 놈 맴이 어떻컸냐? 머시든 지 자리에 두고 그냥 눈으로만 봐라."
빨간 열매 하나 땄을 뿐인데 아무래도 울엄니 말씀이 길어지실 듯 싶다.
"왜 대답을 안허냐? 니가 따지 않아도 떨어질때 되믄 저절로 떨어지지 않겠냐?그러니 일부로 따고 그러지마라."
 
"어서 오세요, 심계옥 어르신. 따님이랑 무슨 얘기를 그리 재미나게 나누세요?"
"재밌는 얘기요? 에구 선생님 그런 말씀 마셔요. 나무 열매 하나 땄다가 엄니한테 아침부터 댄통 혼나고 있었어요."
"나무 열매요? 왜요? 하하 우리 심계옥 어르신이 화를 다 내실 줄 아세요? 우리 어르신이 아침부터 왜 따님을 혼내셨을까요? 맨날 센터에 오시믄 따님 걱정만 하시는데요."
요양사 선생님이 심계옥엄니를 부축해서 차에 오르시고 의자에 앉으실 때 까지도 심기가 영 불편하신 울엄니.
괜히 빨간 열매는 따가지고 아침부터 엄니 맘을 상하게 해드렸네 하는 마음에 나도 맘이 편치않았다. 분위기도 바꿀겸 차에 첫번째로 타고 오시는 박봉남 할머니에게 과장되게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박봉남 할무니 안녕~~"
 
어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혀짧게 박봉남 할머니에게 인사드리면 봉남 할머니는 주먹을 쥐고 때리는 시늉을 하시는데 오늘은 반응이 없으시다. 오늘 무슨 날인가? 우리 할머니들 단체로 심기가 다들 편치 않으시니. 봉남할머니도 화난 사람처럼 창 밖만 노려보고 앉아 계신다.
"박봉남 할머니 왜 화나셨어요?" 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요양사 선생님에게 여쭤보았다. 고개만 도리도리 하시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 요양사 선생님. 더는 묻지않는게 낫겠다 싶어 이번에는 박봉남 할머니 옆에 앉으신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사랑터에 새로 오신 할머니신가 보다. 처음 뵙는 할머니시다. 그런데 할머니 표정에 변화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할머니 앞에 예쁜 이라는 말을 넣어 인사를 드렸다.
"예쁜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랬더니 그제서야 새로 오신 할머니께서 이빨을 다 드러내고 웃으신다.
"아유, 이뽀라. 할머니 환하게 웃으시니까 영화배우 같으세요. 이뽀요. 할무니."
새로 오신 할머니에게 이뿌다고 말씀드려서일까 화난 사람처럼 창 밖만 바라보시던 봉남 할머니가 "나는 안 예뻐? 왜 저 할마씨한테만 이뿌다그래? 김선생도 내가 우스워?"
"에구, 우리 봉남 할무니가 왜 우스워요? 제가 우리 봉남할머니를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
예뿌신 봉남 할머니 안녕하세요?"
예쁜 봉남할머니 라는 말에 그제서야 봉남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신다.
 
"근데 할무니 조금 전에 인사드렸을 때는 왜 인사도 안 받으시고 창 밖만 내다보고 계셨어요? 뭐 집에서 화나는 일 있으셨어요?"
"내가 집에서 화날 일이 뭐가 있어? 선생님이 우리 보고 뒤로 가서 앉으래자나."
아 그러고보니 늘 앞에 앉아계시던 박봉남 할머니가 봉고차 맨 뒤에 앉아계셨다.
"아유, 어르신 제가 말씀드렸지요? 이봉상 어르신이 덩치도 크시고 나중에 타시면서 왜 맨날 맨뒤에 가서 앉으래냐고 역정을 내셔서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타시는 순서대로 어르신들 뒤로 가서 앉으시라고 한거예요. 그러니 마음 좋으신 박봉남 어르신이 맘 푸시고 이해 좀 해 주세요.
"일찍 타믄 맨 뒤로 가야 되남? 맨 먼저 탔으믄 내릴때는 맨 첨으로 내려야지? 안 그래 김선생?"
박봉남 할머니께서 계속 불만스런 얼굴로 툴툴거리시자 요양사 선생님이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신다.
"이봉상 어르신이 늦게 타시는데 어르신들이 앞에 앉아계시면 뒤로 가시기가 불편하셔서 그런거니 마음 착하신 어르신이 이해를 좀 해주세요."
"나만 이해하믄 되나? 할무니는 어때요? 뒤에 앉는게 좋아요?"
박봉남 할머니가 옆에 앉으신 새로 오신 신입생 할무니에게 물으신다.
 
그러자 신입생 할머니는 좋다 나쁘다 말씀 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하신다.
"이거봐봐. 이 할무니도 뒤에 앉기 싫어서 울잖아."
"그게 아니고 이 어르신은 집에 혼자 두고 온 할아버지가 걱정되셔서 그러시는거예요." 신입생 할머니 대신 요양사 선생님이 대신 답을 하신다.
"집에 계신 할아버지요?"
"예, 할머니가 집에 혼자 두고 오신 할아버지 걱정 때문에 그러신대요."
"이그 그르시구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같이 모시고 오지 그르셨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집 밖에 나오시는걸 안 좋아해요."
그날 하루 치매센터에 나오신 할머니는 그 다음날엔 나오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집에 혼자 계신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셨나보다.

 
사랑터 차가 왔다. 오늘은 신입생 할머니도 타고 계셨다.
오늘은 맨 뒤에 앉아계셨던 봉남 할머니랑 신입생 할머니가 한 칸 앞으로 나와 앉아계셨다. 봉남 할머니 오늘은 기분이 조금 좋으신가보다.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신다.
"할머니들이 오늘은 기분이 좋으시네요. 한 칸 앞으로 나와 앉으셔서 그릉가?"
"예, 오늘은 이봉상 할아버지가 안오시거든요."
"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차에 타시면 모두 다 앞에 앉고 싶어하실까요?"
"몸이 다들 불편하시니까요. 몸들이 편찮으시니 뒤에 가서 앉고 싶지 않으시지요."
 
맨 뒷줄에 앉으셨다가 한 줄 앞으로 나와 앉으신 박봉남 할머니는 기분이 좋으셔서 손을 흔드시는데 새로오신 할머니는 오늘도 기분이 안 좋으시다.
"예쁜 할머니 안녕하세요~~~예쁜 할머니 더 예뻐지시게 활짝 웃으셔요~~"하고 인사를 드리니 신입생 할머니가 "그려요." 하며 활짝 웃으신다.
"아유, 이뿌다. 거봐요 할머니. 웃으시니까 엄청 이뻐요."
"예, 우리 할아부지가 많이 웃고 밥도 잘 먹고 잘 놀다오믄 담달부터 나랑 같이 나 댕기는데 같이 댕긴댔어요."
"아, 정말요? 정말 잘 됐어요.할머니."
할아버지 혼자 집에 두고 와서 할아버지 혼자 밥먹는게 맘이 아파서 센터에서 식사도 잘 하시지 않는다는 할머니.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지나면 새로 오신 할머니도 할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센터생활을 적응하실까?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약속하신 것처럼 정말 한 달 후엔 할머니랑 치매센터에 같이 다니실까?
한 자리에서 개미처럼 오랫동안 일만 하고 사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게 몹시도 서툴고 더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 모두 힘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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