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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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 최원영
  • 승인 2018.12.23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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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가난함 속에 들어 있는 사랑


 
 풍경 #100. 틀니도 하나요, 마음도 하나요!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어릴 때는 거리 곳곳에서 캐롤송을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아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이유는 예수의 탄생을 기리며, 그분이 전한 ‘사랑’을 되새겨보고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일 겁니다.

지인이 보내준 글에서 잔잔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진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잡지인 지에 실린 사진이었습니다. 눈에 띈 것은 공항 대합실에서 아주 가난하게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 비스킷을 먹는 장면입니다.

가난했기에 비싼 음식을 주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비스킷과 차를 하나씩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비스킷을 반으로 잘라 할아버지가 먼저 먹습니다. 그리고 틀니를 빼낸 뒤 깨끗이 닦아서 할머니에게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그 틀니를 끼고 나머지 반쪽을 먹는 장면의 사진입니다. 너무도 가난해서 틀니를 하지도 못하고, 하나를 가지고 교대로 사용하는 겁니다.

이 사진과 함께 적힌 글에서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비스킷도 하나요, 차도 한 잔이요. 틀니도 한 개요, 몸도 하나요, 생각도 하나요. 그리고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이 글을 접하면서 저는 가난함 속에 들어 있는 사랑이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은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귀한 사람에게 더 주고 싶은 데도 더 줄 수가 없어 너무도 미안해하는 마음이 꿈틀거리기 때문입니다. 넉넉한 살림살이면 틀니를 각자가 하나씩 가질 수 있지만 가난해서 틀니를 해주지 못하는 마음, 비스킷을 넉넉히 살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 너무도 안타까운 이런 마음이 바로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풍요로움 속에서는 도저히 발견하기 어려운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풍요로움은 더 많은 풍요로움을 욕망하게 하고, 주는 사람은 ‘이 정도로 줄 수 있을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라는 교만에 빠지기 쉽고, 받는 사람 역시 ‘이 정도 받을 만큼 난 대단해.’라거나 ‘저렇게 잘 살면서도 고작 이거야?’라는 교만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만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까지 있나 봅니다.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전쟁으로 온 세상이 궁핍한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의 원조로 배급품인 누런 밀가루로 만든 팥 없는 찐빵 두 개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가끔 김치에 보리밥이 나오는 날이면 참으로 기뻤습니다. 이런 시절에도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이웃집 어르신들에게 달걀 한 꾸러미씩을 가져다드리는 심부름을 하곤 했습니다.

한편 지금 이렇게 잘 살게 된 우리는 이웃집 사람들과 어떤 교류가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잘 살수록 나눔은 사라지고, 높이 오를수록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잊고 사는 것은 어쩌면 부(富)가 부른 교만이 부른 비극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산타할아버지로 상징되던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그 기적은 꿈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적의 불씨를 살리는 일만큼은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 기적의 주인공은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내’가 산타할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탄절의 의미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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