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롯불에 눌러붙은 도시락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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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롯불에 눌러붙은 도시락 먹고 싶다
  • 유동현
  • 승인 2019.01.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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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점심시간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의 발자국을 남긴 모교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 사진사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1959년도 박문여고 앨범. 중간에 책을 보는 친구들과 뒤에 서서 밥을 먹는 친구들.


'점심시간’ 없는 학창 시절을 생각할 수 있을까. 요즘 학생들은 단체 급식을 하다 보니 ‘도시락’이란 추억 자체가 없다. 보통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수업시간이고 바로 점심시간이다. 보통 1시간 이내다.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교실(간혹 학교 식당)에서 각자가 싸온 도시락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 학교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아마 점심시간이었을 것이다.
 


1961년도 제물포고 앨범. 비록 ‘1식 1찬’이지만 꿀맛이었다.

 
정해져 있지만 모두 다 도시락을 점심시간에만 먹지 않았다. 일부 학생들은 2교시 혹은 3교시가 끝나자마자 10분 휴식 시간에 해치워버리곤 했다. 후다닥 자신의 도시락을 폭풍 흡입한 뒤 숟가락 하나 들고 친구들의 밥을 뺏어 먹던 친구들도 있었다.
다음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코를 쥐어틀고 교실 창문을 활짝 열 것을 지시했다. 냄새가 빠지기 전까지 교실은 한겨울 냉골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60년도 인천여상 앨범. 당시 콩장, 어묵은 특별한 반찬에 속한다.


겨울이 되면 난로 위에 양은 도시락을 층층이 쌓아 올렸다. 그날 주번은 틈틈이 위 아래 도시락을 바꿔줘야 했다. 미숙한 주번의 손놀림으로 피라밋 도시락이 무너져 한바탕 소통이 벌어지곤 했다. 도시락에서 흘러나오던 구수한 내음이 교실 안에 진동했다. 가끔 떡가래와 인절미 갖고 와서 구워 먹던 친구도 있었다.

 

 1970년도 송도고 앨범. 돌을 갖다 줘도 씹을 나이였다.


가끔 도시락 도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도시락 안의 내용물이 없어지는 일이었다. 체육시간이나 교련시간 등 운동장애서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누군가 몰래 교실에 들어와 남의 밥을 슬쩍했다. 주로 부잣집 아이의 도시락이 표적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도시락 습격 사건이 ‘장난’인지 정말 ‘결식’인지 알 수는 없다.



 1976년도 인일여고 앨범. 주번은 국물 대용이었던 수돗물을 챙겨야 했다.


당시 미제 맥스웰 커피 빈병은 요긴한 반찬 용기였다. 특히 도시락 김치병으로 인기가 좋아 시장에는 맥스웰 커피 빈병만 파는 가게도 있었다.
뚜껑을 단단히 닫았어도 이것이 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만원 버스 안이 시큼한 김치 냄새로 진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김치 국물 시뻘겋게 물든 교과서가 낯설지 않았던 시절이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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