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언제 다시 고향땅을 밟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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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언제 다시 고향땅을 밟으려나…"
  • 이병기
  • 승인 2010.11.29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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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주민들의 눈물, 그리고 한(恨)


공익근무요원인 아들을 위해 섬에 남은 한 여성이 남편을 배로 떠나 보내며 눈물을 짓고 있다.

취재: 이병기 기자

"빨리 타요! 빨리 타!"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울려퍼진다.

중년 여성과 소리를 치던 주민 사이는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한 명은 섬에 남고 다른 이들은 뭍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한 주민이 조급함에 큰 소리로 불러보지만 선착장에 남은 중년 여성은 말 대신 붉게 적신 눈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내 손을 저으며 먼저 가라 말한다. 

"왜 안 타는 거야?"

"남편은 배에 있어. 그런데 아들이 섬에서 출퇴근을 해. 공익근무요원이거든. 아들 때문에 못 나오는 거지 뭐."

생이별이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로'가 시작됐다.

이뿐만 아니다. 연평도 주민 전부가 '전쟁'의 공포로 터전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자신의 집이, 혹은 바로 옆에서 불바다를 목격한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말한다.

주민 모두가 정든 고향과 생이별을 하고 있다.
 
맨몸으로 빠져나온 주민들, 생필품 챙기러 고향으로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연평도 마을

연평도 여객선 운항이 재개된 25일. 아침 일찍부터 소식들 듣고 달려온 주민들이 인천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 속속 모여든다. 맨 몸뚱이만 빠져나온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겨울 옷가지. 특히 아이와 함께 섬을 나온 주민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애들이 옷이 없어 떨고 있어요. 위험해서 가족이 다 들어가진 않죠. 남자나 어른들 위주로 가는 편이예요. 나는 애 맡길 데가 없어서 데려가는 거예요. 내 옷도 좀 가져오고. 보세요. 츄리닝 입고 나왔다니까요."

아이를 등에 업은 30대 여성의 말이다.

"기자양반은 폭탄 떨어지는 데서 살고 싶어? 난 죽고 싶지 않아. 이주해야지. 일하다가 그냥 나왔어. 작업복 입고 있잖아. 오늘은 들어가서 급한 것만 챙겨 나올 거야."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치를 떨며 말한다.

여객터미널에서 만난 주민들은 당분간 고향을 떠나 있겠다는 게 대세였다. 그러나 일부 몇몇은 남겠다는 이들도 보인다.

"난 안 나올 거야. 여기선 먹고살 길이 없어. 섬에선 돈을 벌진 않아도 먹고사는 건 문제 없잖아. 여기서 차에 치여 죽나 섬에서 폭탄을 맞아 죽나, 죽는 건 다 똑같아. 요즘 굴철이잖아. 생계 유지는 되겠지." - 윤종균(58)씨

아직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연평도


오후 12시30분에 출발한 여객선은 예정시간보다 약 1시간 늦게 연평도에 도착했다. 예정대로라면 2시30분 도착이었지만, 파도가 너무 높아 항로를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주민들에게 파도는 멀미까지 안겨줬다.

연평도에서 이들을 처음 맞은 것은 검은색 일색의 해양경찰 특공대였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엊그제 공포가 다시 밀려온다.

주민들은 저녁 5시에 마지막 배가 떠난다는 소식에 부지런히 집으로 향한다. 수십 년 동안 사용하던 물건들 중에 어떤 것들을 챙겨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걸어서 10~15분. 1분1초가 아까운 이들은 동네 사람들의 차를 타고 이동한다. 동행한 100여명의 내·외신 취재진들도 함께 차를 얻어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저기 보이는 경찰서 뒷쪽이 포탄 맞은 곳이예요. 다섯 채가 직접 맞았고, 주변에 있던 열일곱 채가 화재를 당했어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한 해양경찰청 관계자가 설명한다.


언제 다시 올지 몰라 우리에 가둬둔 오골계에 시들어버린 배추 한 포기를 넣어주고 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한적한 어촌 마을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주민들과 취재진이 동네로 퍼지기 전까지는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간혹 들리는 헬기 소리는 이곳이 아직도 전시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큰길에서 보이는 집들은 대부분 양호한 편이다. 간간이 포탄 충격으로 유리창이 깨진 집들이 보인다. 이윽고 상황본부가 마련된 면사무소에서 내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포격을 맞은 집이 나타났다. 외벽이 흰색으로 칠해진 주택에 완전 연소돼 검게 그을린 내부는 이질감을 증폭시킨다.

조금 더 들어가자 이미 엿가락처럼 늘어진 집 앞에서 외신 기자들이 취재 중이다. 집 주변엔 유리창을 비롯한 갖가지 파편들이 늘어져 있다.

이윽고 작은 공터가 나오고 바닥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보인다. 흔적 뒤로는 자동차와 전봇대, 담벼락 등에 파편자국이 있다. 파편 흔적은 거의 160도 범위로 넓게 퍼져 있으며 2층 높이까지 선명하다.

여객선을 타고 들어온 건물 주인은 한바퀴 둘러보지만, 양 손은 여전히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다. 건질 것은 없었다.

건물 뒷쪽엔 오골계 우리와 그들을 지키는 개 한마리가 묶여져 있다.

작업복을 입고 있던 한 주민은 집에서 가지고 나온 과자를 한 손에 들고 개 밥그릇에 먹이를 확인하더니 앞쪽 배추를 심은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얘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2~3평 크기에 심은 수십 포기의 배추 중 그나마 덜 시든 놈을 한 통 들더니 오골계 우리 안으로 던져 넣는다. 

그는 다시 근처 집으로 들어가 챙겨 갈 물건을 둘러본다.

뭘 가져가야 하나…


포탄이 직접 떨어진 골목길의 한 주택은 형채가 없어졌다. 양쪽 집들과 벽을 맞대고 지어져 있었던 듯, 남아 있는 건물 한쪽 벽에는 페인트가 칠해지지 않은 벽돌이 집 모양으로 드러나 있다.

그 맞은편에는 할머니 한 분과 손자가 슈퍼에서 짐을 꺼내고 있다. 가게 한쪽은 포탄의 충격으로 유리가 전부 깨져 있고 주황색 박스 테이프로 엉성하게 막아놨다.

할머니는 슈퍼 안 물건은 꺼낼 생각이 없는지, 바다에서 따온 굴부터 손자에게 챙기라고 시킨다. 자신도 플라스틱에 담아놓은 굴을 인천으로 가져갈 가방 옆에 내려놓는다.

바로 옆에선 한 남자가 깨진 유리창 위로 철판을 대고 있다. 한때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서 '동네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문이 돈 뒤로 마음이 편치 않았나 보다. 근처 공사장에서 구해온 철판을 창문 틈에 끼워보려 하지만,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집중적으로 4~5채가 검게 그을린 골목에서는 아직도 탄 냄새가 진동한다.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여기에요."

골목에 차를 댄 청년이 길을 안내한다. 부부와 조손으로 이뤄진 4가족이 각자 짐을 챙겨 차로 다가간다. 집을 두고 떠나는 그들의 얼굴은 근심 자체다.


뱃시간이 다가워 오자 급히 트럭을 타고 선착장으로 향하려던 한 여성.

"뭣 좀 챙기셨어요?"

"아니요. 우리 집은 완전히 불에 타버려서 아무것도 가져갈 게 없어요. 건질 게 있을까 해서 왔는데…. 남의 짐 들어주는 거예요."

그 옆에 있던 남자는 "컵라면 2박스 싣고 나가는 것밖에 없어!"라며 흥분한다.

마지막으로 면사무소에 들르려고 걸어가던 중 앵무새에게 모이를 주던 한 주민을 만났다. 남편과 아이들은 들어오지 않고 혼자 들어왔다는 그는 촉박한 마음에 신발을 신은 채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찾아보지만, 더이상 가져갈 것은 없었다.  

배낭 가방 한 개와 사과박스 정도의 상자 하나가 짐의 전부였다.

"기자님도 배 시간 맞추려면 어서 나가세요. 나도 지금 나가야 해요." 그는 기자가 면사무소에 다녀온 후로도 집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면사무소에서 상황을 파악하던 장흥화 연평면 부면장은 "오늘 주민들이 나가게 된 것은 우리가 강제로 한 일이 아니고 그들 스스로 결정해서 이뤄진 일"이라며 "남겨진 사람들은 저녁에 불 켜진 걸 보고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공포심에 고향을 떠나는 것처럼 나도 똑같은 심정이다"면서 "사적인 신분이었다면 그랬겠지만, 사명감을 갖고 이곳을 지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이주하고 싶다" 


'뭘 가져가야 하나'. 한 주민이 고민하고 있다.

마지막 배가 떠날 시간인 5시가 가까워졌다.

오전에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서 확인했을 당시 여객선 관계자는 "26일 오전 11시에도 배가 운행될 예정"이라고 했으나, 이날 파도가 높고 풍랑주의보가 내릴 가능성이 있어 자칫하면 며칠동안 섬에서 나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던 상황.

28일 한국과 미국의 군사훈련이 예정돼 있어 25일 마지막 배를 타지 못할 경우 며칠 전 발생한 '지옥' 같은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게 주민들 반응이다.

주민과 일부 취재진들은 여객선 2척에 나눠 연평도에서의 짧은 시간을 마무리했다. 올 때와는 달리 파도가 그리 높지 않아 제 시간에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연평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유명복(74)씨는 "너무 불안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서 "마을이 안정된 다음에 들어오고 싶은데, 당장 28일에 합동훈련도 있다 하니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왼쪽 하단 폭탄이 떨어진 흔적 앞쪽으로 전봇대와 담장, 차량 등에 흔적이 남아 있다. 

유씨는 "마음만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다"면서 "그동안 작은 상황들은 감수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라고 토로했다.

장혜신(64)씨는 "우리가 떠나면 연평도가 북녁땅이 될 수도 있기에 고향을 지켜야 하는 마음도 있다"면서 "그러나 생명을 담보로 고향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고, 애들이나 노약자를 첨병으로 위험한 곳에 놔두는 건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고향을 지켜야 하지만, 한 두명의 힘으로 가능할 것 같으냐"라며 "뉴스에서 보니까 무기도 고장났다고 하는데, 정부에서 방어태세를 확실히 갖춰야지만 다시 돌아갈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이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저녁 7시 반께 인천에 도착한 주민들은 옹진군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신흥동 찜질방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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