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함 속에 숨겨진 속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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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함 속에 숨겨진 속도감
  • 유광식
  • 승인 2019.05.31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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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문학동 / 유광식


인천SK 행복드림구장, 2019ⓒ유광식
 


인천 시민들은 문학동을 얘기하면 머릿속에 문학경기장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문학동이 발길이 쉽게 닿는 곳은 아니다. 요즘 학생들은 인천도호부 청사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와 경기장 나들이로 한 번쯤 가봤을 테지만 어떤 특별한 목적이 아니고서야 쉽게 찾는 곳은 사실 아니다.

기회는 늘 우연으로 맞이하는 것 같다. 휴일 오후를 보낼 카페를 찾다가 어떤 분께서 탁 트인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전통적인 풍경과 함께 쾌적함으로는 단연 으뜸인 작업실이라고 했던 도호부 청사 앞 커다란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각나 방문하게 되었다. 입구에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커다란 파트라슈 강아지가 있어 의아했지만,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엔 분명 안성맞춤이었다.

카페는 주차장이 있는 단일 건물로, 3층 옥상 외부까지 테이블이 있는 곳이었다. 1층에는 꼭 한 번은 들러봐야 할 매장이라고 회사에서 붙여둔 홍보 리플릿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 아래쪽에 인천 시정 소식지 ‘굿모닝 인천' 5월호가 눈에 띄었다. 카페 2층은 지나가는 개미도 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할 만큼 조용한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영역이었다.

 

카페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파트라슈, 2019ⓒ유광식
 

문학동은 남쪽에는 문학산, 북쪽으로는 승학산이 낮게 자리하고 있다. 문학동은 흡사 그사이에 낀 형국이다. 동서로 뻗은 제2경인고속도로, 매소홀로, 소성로가 도로의 세 축이다. 물리 시간에 배운 베르누이의 법칙이 순간 떠올랐다. 산 사이의 문학동을 지날 때는 기분인지 법칙 때문인지 쌩~하고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야구에서도 투수가 변화구(curve)를 던질 적에 이 법칙을 아니 모르니 하다 보면 근처에 인천 SK구장이 있다는 사실을 자동으로 깨닫게 된다. 또한 인천출신 박태환 선수의 이름을 딴 ‘문학 박태환수영장’이 지하철역 2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생각만 해도 전부 속도감이 거세다.

문학동에서는 조선 시대 인천의 행정 관아인 인천도호부 청사가 있던 자리와 배치, 형태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 문학초등학교 내에는 관아의 객사와 동헌이 일부 남아 있다. 카페 맞은편에는 시가 복원하여 1호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인천도호부청사가 있다.

자꾸 바라보게 되었던 건 방향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자주 반복되었던 문구가 떠올라서였다. 주변이 고요하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할 때면 매번 “동헌에 올라 활을 쏘았다.”라고 읊던 대목이 많았다. 몇백 년 전 관아의 누군가 또한 이런 마음으로 문학산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호흡을 놓을 뻔했다.

 

문학초교 뒤편에서 내려다본 문학동과 문학산, 2019ⓒ유광식

인천도호부청사의 입구, 2019ⓒ유광식
 


그러면서 이어진 시선은 조그마한 개나리색 원피스를 입은 두 살배기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의 언니로 보이는 아이는 녹색 원피스를 입어 한 눈에 봐도 가족임을 알 수 있었는데, 작은 아이 뒤를 아빠가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이는 파트라슈 인형과도 놀고 의자 사이사이를 전부 돌아보며 즐거워하는데, 아빠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넘어질까 봐 뒤를 밟기 바빴다. 나중에는 역전이 일어났는데 정작 넘어져 울음보를 터트린 아이는 두 살배기 언니인 첫째 아이였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았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져 머리를 찧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뿔싸!

카페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어떤 젊은 부부 중 한 명은 등 번호 23번(조던)이 매겨진 농구조끼를 입고 있었다. 또한 매장 안에는 인천유나이티드FC 축구 경기 일정이 적힌 배너 현수막도 비치되어 있었다. 그때 슈퍼맨 망토를 입은 남자아이가 슈퍼맨 흉내를 내면서 1층을 휩쓸며 달리고 있어서 재미난 광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조선시대와 스포츠의 알 수 없는 모종의 관계가 겹쳐지는 곳이다.

 

주택가 안쪽 여러 형태의 지붕들, 2019ⓒ유광식
 

오묘한 두 분위기의 문학동. 어찌 보면 숨겨진 역사뿐만 아니라 묵직한 현대 흐름의 속도가 있는 것도 같다. 문학동은 7~8년 전 승학산 주안 예비군교육장에서 내려다보며 느꼈던 동네의 공기를 새삼 떠올리게끔 한다. 동헌에 오르진 못하지만, 카페에 앉아 시간을 쏘아 올리며 마음을 단정히 했던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문학동의 절반은 박진감 있는 스포츠 구역이지만 가끔은 잠시 머물면서 단상을 정리하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묵직한 시간이 자리를 잡고 있는 이상, 이름다운 문학동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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