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떠넘기기'로 연평도 주민 '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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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떠넘기기'로 연평도 주민 '골병'
  • 이병기
  • 승인 2010.12.0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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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연평도 포격 1주] 정부 지원 없으면 찜질방에서 겨울 나나?


29일 옹진군청에서 열린 연평도 주민과 송영길 인천시장의 간담회에서
주민대책위 관계자가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취재: 이병기 기자

"연평도 주민들의 임시숙소 마련은 중앙정부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임시주택을 마련한다고 해도 임차비나 운영비, 가전제품 구입 등 소요되는 비용이 많아 인천시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방정부가 비용을 대야 합니까? 우리가 국방권이 있습니까? 지방정부가 아닌 국군 통수권자가 해결해야 합니다." - 송영길 인천시장

29일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져야만 했던 연평도 주민들은 중앙정부의 '늑장대응'과 인천시의 '떠넘기기'로 칼바람 속에 내몰리고 있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데 이어 송영길 인천시장도 오후에 연평도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정작 연평도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문을 보면, 골자는 '군을 군대다운 군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내용도 비중 있게 들어갔다. 그러나 1700명이 삶의 터전을 잃은 연평도 주민들에 대해선 '종합대책 수립을 약속한다'는 단 한 줄 뿐이었다.

같은 날 송영길 시장도 옹진군청에서 연평도 주민대책위 관계자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송 시장은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회견 자리에서 "중앙정부의 조속한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성토'했다.


(사진제공: 옹진군청)

송 시장은 "정부는 이번 예산에 서해안 군 전력 증강 예산을 반영할 예정이다"면서 "국민을 위한 예산을 마련해야지 전력증강에만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와 인천시, 옹진군 등 각 기관이 함께 대책본부를 구성한 이후에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연평도 주민들의 근본적인 이주대책은 중앙정부가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인천시의 재정으로는 찜질방과 여관에 묵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을 미입주 주택이나 재개발 주택 등 다른 곳으로 이주시킬 수 없기에,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임시숙소 마련이 어렵다는 얘기다.

누구보다도 주민들의 아픔을 많이 들었을 송 시장이지만, 중앙정부 '탓'만 하며 앉아서 기다리겠다는 꼴이다.

송 시장은 취재진이 "중앙에서 지원이 없으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라고 묻자 "그때는 상황을 다시 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중앙에서 "먼저 주민들에게 임시숙소를 마련해 이주시키고 나중에 청구하라"는 지시가 있으면 조치를 취하겠지만, 인천시가 먼저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1주일간 답답한 찜질방에서 숨막혀 하는 주민들을 위해 중앙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칼바람에 놓인 연평도 피난주민, 언제까지?

연평도의 주민등록인구 1756명 중 실제 거주민은 1361명이다. 이 중 1263명이 포탄을 피해 인천으로 이동한 상태. 원주민 31명을 비롯해 공공기관 관계자 등 283명이 아직 섬에 남아 있다.

이 중 인천에 연고가 없는 300명 이상이 찜질방과 여관 등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찜질방에 모인 이들 중에는 노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이들은 거의 24시간 내내 답답한 찜질방 안에서 생활한다. 낮 시간대 가족을 만나러 온 친지들의 목소리로 장터를 방불케 하는 찜질방 소음은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그렇다고 잠자리가 편한 것은 더욱 아니다. 이불도 부족해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던 주민들은 이틀 전에야 보급품으로 얇은 이불이 지급되면서 그나마 한기를 조금 덜 수 있게 됐다. 또 바닥에 깔고 자는 것도 없어 딱딱한 마루바닥에서 잠을 청했던 이들은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뜬 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연평도 주민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는 송영길 인천시장

29일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연평도 주민들이 심각한 심리적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합동심리상담지원반이 연평도 주민들을 상담한 결과 많은 주민들이 가슴 두근거림이나 어지럼증 등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한 주민은 심리적 공황 때문인지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고, 다른 한 노인은 말을 잃고 헛웃음만 계속 웃는 등 몸과 마음이 곪아가고 있었다.

이날 주민대책위는 송영길 시장과의 간담회에서 현재 머물고 있는 찜질방을 대신할 수 있는 거주지 마련을 요청했다. 주민대책위 자체 조사에 따르면 약 220 세대의 임시숙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칼바람에 놓인 연평도 주민들의 겨울이 더욱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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