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지나쳤던 장봉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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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지나쳤던 장봉도의 여름
  • 문미정, 송석영
  • 승인 2019.08.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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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더위와 습기로 가득했던 여름 탈출기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 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 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직장에서는 중요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던 여름이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지나치게 힘들었던 여름이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해도 갈 곳이 없는 장봉도는 아이들이 모여 마당에서 노는 것이 전부다. 엄마, 아빠의 쉬는 시간과 물때가 맞지 않아 아이들은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물놀이를 즐기지 못했다. 튜브를 마당에 깔고 우산을 펴서 그늘을 만들고는 손 선풍기를 틀어본다.





하지만 여전히 덥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몇일 쏟아진다. 마당에 쳐두었던 천막이 물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드디어 찢어지며 쓰려졌다. 타는 엄마 속도 모르고 아이들은 쓰러진 천막에 고인 물을 수영장 삼아 첨벙거리며 물놀이를 한다.
 
그렇게 쏟아지던 비도 잠시... 다시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됐다. 에어컨 없이 비와 폭염이 계속 되는 섬은 습기와 열기로 말 그대로 찜통 같았다. 몇일을 버티며 견뎌보다가 육지로 내보내기로 했다. 너무 덥다보니 자꾸만 서로에게 짜증을 내게 되고 아이들도 부모들도 못할 짓이다 싶었다. 남편의 일정을 조율하여 모두 섬 밖으로 나갔다. 그야말로 섬 탈출이었다.





도시에서는 시원한 쇼핑몰도 갈 수 있고, 아이들 관련 시설이나 도서관, 서점도 방문할 수 있고, 시원한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의 식사도 저렴하게 사먹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장봉도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은 학교와 유치원이 전부이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그 전부를 잃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워낙에 시원했던 곳이라 숙소엔 에어컨이 없고, 관광지이기 때문에 아이들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고 비싸기까지 하다.
 
그래서 2주 정도 아이들은 섬 밖에서 생활했다. 그 덕에 나는 직장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지만 2주나 밤을 세워 일만 했던 2주간 이었다. 그 와중에 키우던 염소마저 개에 물려 두 마리나 잃었다. 몸도 마음도 무척 힘들었던 시기였다.

직장에서의 큰 일을 무사히 마치고 모처럼 휴가를 보냈지만 휴가의 3분의 1은 집에서 잠만 잔 듯하다. 아쉽게 휴가를 그렇게 잠으로 다 써버렸다.
 
다행히 아이들이 불만이 적어 고맙기 그지없다. 아이들은 장봉에 있든 인천에 있든 늘 즐겁다. 불만이 많은 것은 언제나 어른들이지 아이들이 아니다. 장봉에서 살기로 결심한 것을 가장 많이 다시 생각하게 된 여름이었다. 장봉으로 떠나자고 주장했던 것도 나이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장봉도의 여름은 하얗게 지우고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덥고, 지나치게 비가 많이 오고, 지나치게 일이 많았고, 지나치게 서글펐고 잠은 부족했다.





그러다가 문득 하늘을 보니 벌써 가을이다. 고개들어 바라본 하늘은 저 멀리 높아지고 새파래지고 있었다. 그리고 햇살은 여름보다 더 따가웠다.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모든게 지나쳤지만 여름답게 여름을 온몸으로 느꼈기에 올 겨울엔 감기 하나 없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생긴다. 그렇게 우리는 또 다시 한 계절을 보내고 다음 계절을 맞이한다. 장봉에 온지 벌써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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