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과 우리 삶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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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과 우리 삶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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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2.1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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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를 창시하였다는 제레미 벤담은 174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또한 파놉티콘(모두 본다라는 뜻)이라는 거대한 감옥건설을 주장하였다고 알고 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와 감옥건설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책세상문고에서 나온 파놉티콘은 벤담의 파놉티콘 원문과 더불어 해제의 상세함과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읽기가 수월하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부터 찾아나가 보자. 또한 파놉티콘과 우리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자.


파놉티콘의 내용

먼저 본문 내용을 요약해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원래 파놉티콘은 설계도면과 함께 실행방법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양이었으나 이 계획의 실현이 영국에서는 원활하지 않아 당시 혁명 이후인 프랑스의회에 원글의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이 우리에게 읽혀지는 것이다.

"이 모델을 가지고 감옥을 건설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저를(벤담) 간수로 임명해 주십시오. 이 논문을 읽으면 이 간수가 급여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국가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파놉티콘은 일종의 사업계획서로 만들어진 프로젝트이다.

"만일 다수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쌀 수 있는 수단은 유용하고 효력 있는, 이를테면 교육은 학생을 둘러싼 전체 환경의 결과물이고 그의 행동 전부를 관찰할 수 있다면, 그들이 어떤 사물들에 둘러싸이게 하는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서 우리가 원하는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그를 놓는 것이라고 한다면 유용하고 효력 있는 수단은 사람을 우리가 원하는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까지 감옥은 쾌쾌하고 끔찍한 거주지이자 온갖 범죄의 학교이며 비참한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입니다.

감옥을 완전하게 개혁한다는 것은 죄수들이 바른 행동을 하도록 교화를 보장하고, 지금까지 신체적 정신적 타락으로오염된 건강과 청결, 질서와 근면을 확고하게 하며, 비용을 감소시키면서도 공공의 안전을 견고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단한 건축아이디어로 이 모든 것을 이루려는 것이 바로 이 논문의 목적입니다.

새로운 감시방식은 감각보다는 상상을 자극하며, 그 감시 테두리 안에서 항상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는 단 한사람에게 수백명의 사람을 맡깁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관은 마치 유령처럼 군림합니다.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가 수행해야 하는 목적은 고통의 본보기를 통해 범죄 모방 불식, 수감기간 수감자의 무례한 예방, 수감자 사이의 예의 유지, 수감자의 거주지 청결과 건강 관리, 탈옥 예방, 필요한 교육, 올바른 습관 형성, 부당한 대우에서 보호, 처벌의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복지 제공, 무엇보다 이러한 모든 것은 경제적인 방식으로, 성과지향적인 행정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위 목적을 위한 관리방식은 고통완화의 원칙, 엄격함의 원칙, 경제성의 원칙으로 운영되어야 하는데, 모든 대상 중에서 경제성의 원칙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합니다. 공공비용을 지출해서는 안 되며 어떤 목적을 위해 가혹함이나 관대함을 이용해서도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운영은 사적관리를 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권력에 대한 애정은 잠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으나 금전적 관심은 잠을 자지 않습니다. 공적 정신은 새로움이 사라져 버리지만 금전적 이익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치열해지기 때문입니다.

좋음과 나쁨은 비교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용어입니다. 나중에 손에 들어온 이익을 보고 나서야 칭찬할 만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택기준입니다. 결국 계약에 의한 사업자의 관리를 통해서만 이 계획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노동 때문에 감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며, 규율의 엄격함과 굴욕적인 복장, 조잡한 음식과 자유의 박탈에서 두려움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작업은 고통이 아니라 수감자들의 위안과 쾌락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노동, 그것은 부유함의 아버지이며 가장 훌륭한 재산인데도 왜 저주로 묘사하려 하는가?

파놉티콘의 원리는 감시와 경제성을 연결해야 하는 거의 모든 시설에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즉 학교나 병영등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에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 성별격리, 범죄등급과 무리별 격리, 노동에 관하여, 식사조절에 관하여, 의복에 관하여, 징벌에 관하여, 청결함과 건강에 관하여 등 감옥운영에 관한 벤담의 생각이 피력되어 있다.

한마디로 죄를 진 죄인을 효과적인 관리와 통제를 통해 경제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을 개조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전체를 개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파놉티콘의 핵심주제이다.


벤담의 생애와 사상

1748년 런던에서 태어난 벤담은 소송 대리인인 아버지의 법관이 되길 희망한 아버지에 대하여 법 이론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법 이론 연구는 과학적이고 사리에 맞는, 즉 계산된 이익이 구체화되는 법체계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1789년 '사법과 도덕의 원리에 대한 서설'에서 법이 따라야 할 것으로서 과학적이고 계산된 '유용성'을 제시하였다.

유용성이란 어떤 행위가 행복 즉 계산 가능한 이익을 증진시키는 경향을 가질 때 옳은 행위이고 반대의 경우는 그른 행위라는 개념이다. 사회와 개개인의 모든 행위의 기준이 되는 원리로 제시하엿고 이의 구체화는 '고통과 거리 두기', '쾌락의 추구'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모든 입법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주장하였다.

유용성의 원리에 입각해 모든 처벌은 고통을 수반하는 악이므로 '더 큰 악을 배제할 가능성이 있는 한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공리주의 입장에서 처벌이 합리적일 수 있는 경우는 처벌이 범죄자를 교화하거나 그에게서 사회를 보호함으로써 더 이상의 범죄를 막고 다른 사람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벤담은 신체의 처벌에는 저항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처벌은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기는커녕 분명한 손실이며 국가나 다수의 사람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사형제도를 반대하였다. 사형수는 노동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용성이 있음에도 사형은 그 유용성과 이익을 버리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벤담은 노동과 검소를 삶의 규칙으로 삼았다. 그는 접대와 여행을 싫어했고 칩거 생활과 고독을 높이 평가했으며 엄격하게 절제된 식단을 따랐다.

1832년 84세의 나이로 죽은 벤담은 자신의 주검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기를 원했다. 친구들이 입회한 가운데 그의 시신은 해부되었고,골격을 재구성해 밀랍으로 만든 두상을 덧붙인 후 런던대학에 전시되어 오늘날에도 그를 볼 수 있다.


파놉티콘과 벤담 사상의 해설

그러면 이러한 내용과 벤담의 생과 사상을 훌륭한 해제의 설명을 통해 검토해 보도록 하자.

파놉티콘은 감금시설에 대한 계획인데 벤담은 왜 감금시설을 구상한 것일까? 감금시설과 산업화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사상가와 건축가들은 왜 감옥 건축 계획을 수립했고, 당시 건축가들은 왜 그토록 최상의 감옥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가?

근대 감옥은 과거의 감옥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흐름에서 발명된 것이다. 감금자체가 처벌인 오늘날과 달리 근대 이전의 감옥은 재판과 형벌을 받기 위한 대기실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질서에서는 생산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이나 처벌로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였다. 형벌의 완화는 구금형으로 인해 감옥에 사람이 넘쳐났고 감옥은 모든 악의 소굴이자 질병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다.

근대 감옥은 재사회화와 교화를 목적으로 하게 되엇고 이에 따라 많은 감옥이 필요하게 되었지만 국가는 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이 원리는 다행스럽게도 학교나 병영, 즉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70쪽)

즉 벤담에게 파놉티콘은 사회의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할 모델이고 이것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교정하고 생산이익과 완벽하게 결합하게 하는 당시의 사고가 집약된 건축물이다.

다시 벤담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만일 다수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쌀 수 있는, 그들의 행동과 인적관계, 생활환경 전체를 확인하고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감시에서 벗어나거나 의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것은 국가가 여러 주요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유용하고 효력있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결국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을 다루려는 기획에서 등장한 가장 극명한 건축 장치가 바로 파놉티콘 계획이다. 오늘날에도 파놉티콘의 다양한 변종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학교와 병영이고 공장이다. 이세가지는 근대국가의 대표적인 집단으로 우리가 알고 있다.

결국 우리는 파놉티콘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 아닐까?

파놉티콘은 감옥 건축 계획이지만 벤담이 일생동안 연구하고 생각해 온 것, 즉 법률이나 구호제도, 경찰체계, 특히 교육과 노동, 경제제도를 현실에서 구체화 할 수 있는 표준모델이고 벤담은 파놉티콘을 통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당대 사회를 완벽한 합리성, 즉 이익 또는 이윤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세계로 재배열하여 마치 만유인력으로 우주를 재구성한 뉴톤처럼 자신의 신념에 따른 새로운 우주를 꿈꾸었던 유토피아 모델중 하나였다.

벤담의 사상은 공리주의로 통칭하는 바 인간의 행복이 산술적으로 계산 가능하다고 본 점이고 결국 인간이 모든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또한 공리주의는 유용성에 매우 큰 가치를 부여하고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하기에 과정을 무시하게 된다.

결국 벰담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노동과 이익을 위한 유용성이 중심이 되는 '완벽한 통제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GNP로 늘상 표현되는 우리 삶의 질에 대한 1968년3월 18일 캔사스 대학에서 로버트 케네디의 연설문중 일부를 인용해 보자

우리가 늘 경제성장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GNP를 말하는데 지금부터 42년전에 대통령후보가 GNP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하고 있다.

"우리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 광고, 시체가 즐비한 고속도로를 치우는 구급차도 포함됩니다.우리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미국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탄도 포함되고, 핵탄두와 도시 폭동 제압용 무장 경찰차량도 포함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총샌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의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런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어떠신가?

우리는 결국 벤담이 주장한 파놉티콘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우리의 열정과 정의,올바름과 삶의 가치가 돈이 되지 않거나 유용하지 않으면 의미없다고 하는 세상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닐까?

벤담의 공리주의는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지배하고 있다. 파놉티콘의 감옥에서. 

파놉티콘/제리미 벤담/책세상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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