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길을 걷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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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길을 걷는 한 사람
  • 최종규
  • 승인 2011.01.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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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김영갑, 《마라도》

- 책이름 : 마라도
- 사진 : 김영갑
- 펴낸곳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2010.8.30.)
- 책값 : 45000원

 (1) 사진길

 날마다 새 하루가 열립니다. 어느 사람은 새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지만, 어느 사람은 새 하루에 숨을 거둡니다. 이윽고 숨이 멎을 사람이 있고, 곧 태어날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똑같이 찾아들면서 맞이할 하루인데 사람마다 다 달리 받아들입니다.

 지나온 어제 하루를 돌이킵니다. 어제는 불러들이지 못합니다. 어제 쓴 글을 읽거나 어제 찍은 사진을 더듬는다 해서 어제가 오늘이 되지 않습니다. 어제는 어제로 발자국으로 남고, 오늘은 오늘대로 내 몸을 움직이며 살아갑니다. 어제 하루 밥그릇을 열 비웠다 해서 오늘은 배가 안 고플 수 없습니다. 어제는 쫄쫄 굶었대서 오늘도 배고플 수 없습니다.

 삶은 삶입니다. 책은 책이고 사진은 사진입니다. 책은 어제나 그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책입니다. 삶은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똑같이 삶이듯, 책은 늘 똑같은 책입니다. 삶은 꾸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삶은 일구는 사람 손에 따라 새롭습니다. 마땅히,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렇게 읽으려 하면 이렇게 읽히고, 저렇게 읽으려 하면 저렇게 읽힙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렇게 읽을 뿐이요, 저렇게 살아내는 사람은 저렇게 읽어치웁니다.

 제아무리 훌륭하다 싶도록 쓴 책일지라도, 읽는 쪽에서 훌륭히 읽어 주지 못한다면 책 하나란 부질없습니다. 제아무리 아름다이 찍은 사진일지라도, 보는 쪽에서 아름다이 바라보지 못한다면 사진 하나란 덧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부터 훌륭히 써야겠지요. 그런데 글을 읽는 사람 마음밭에 훌륭한 씨앗이 없으면 어떠한 훌륭한 글이라 하더라도 읽히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부터 아름다이 찍어야겠지요. 그러나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 마음바탕에 아름다운 사랑이 없다면 어떠한 아름다운 사진이라 하더라도 녹아들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을 찍어 나누는 사진이 아니라고 누군가 말합니다. 아름다움만 찍어서는 사진이 아니라고도 누군가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습니다. 아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아름다움을 찍어 나누기에 사진이요, 아름다움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데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결에 아름답다 싶은 이야기가 스치는데 사진으로 안 담을 수 없습니다.

 기쁘면서 아름다운 삶이 있고, 슬프면서 아름다운 삶이 있습니다. 아프며 아름다운 삶이 있고, 웃음지으며 아름다운 삶이 있어요. 괴로우며 아름다운 삶과 홀가분하며 아름다운 삶이 있습니다. 때로는 엉터리인데 아름다운 삶이 있을 테고, 누군가는 바보스레 살아가지만 이 바보스러움이야말로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글이란, 훌륭히 살아가는 넋을 담아 나누는 그릇이라고 느낍니다. 사진이란, 아름다이 살아내는 얼을 빚어 나누는 그릇이라고 느낍니다. 훌륭히 살아가는 넋을 담는 글은,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매무새를 돌보아야 합니다. 아름다이 살아내는 얼을 빚는 사진은, 따스하며 넉넉하고 슬기로운 몸가짐을 추슬러야 합니다.

 훌륭한 글을 이루는 밑틀은 사랑입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이끄는 밑바탕은 믿음입니다. 사랑은 믿음이 되기도 하고, 믿음은 사랑으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착하기에 따스하고, 따스하기에 착합니다. 참답기에 넉넉하며, 넉넉한 터라 참답습니다. 고운 결이니 슬기로운 가운데, 슬기로운 결은 곱습니다.

.. “아씨 진짜로 정체가 뭐꽈?” “마라도를 들락거린지 몇 년이나 됨수꽝?” “아주방 간첩인 거 담수다, 수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우당.” “이 양반 또 와수강, 코딱지만 한 섬에 죙이새끼 고팡 드나듯이 잘도 드나드는 이유가 무슨 거꽝?” 섬사람들은 신기해 한다.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점들이 많다 ..  (눈빛 판/127쪽)

 깊은 밤에 마당에 나와 쉬를 하니 날씨가 차지만 그렇게까지 춥지 않습니다. 바람이 고요히 잠드니 날은 차더라도 몸은 덜 춥다고 느낍니다. 날이 오늘보다 덜 차더라도 바람이 모질면 몸은 훨씬 춥다고 느낍니다. 바람 하나로 날씨는 사뭇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햇살이 드리울 때하고 햇볕을 쬘 수 없을 때하고 날씨를 몹시 다르게 느낍니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입니다. 내가 선 자리와 내가 사는 곳에 따라 겨울을 달리 받아들일 테지만, 겨울은 겨울입니다. 겨울은 겨울로 맞아들이면서 내 삶을 돌아봅니다. 겨우내 내가 어찌 지내고, 겨우살이 어떻게 꾸리며, 겨울눈을 치우느라 얼마나 고단한가를 헤아립니다.

 겨울이기에 겨울을 느끼며 찍는 ‘겨울 사진’은 아름답습니다. 차가움과 추움과 시림과 쓸쓸함과 매서움과 모짐을 느끼는 그대로 사진으로 담으면서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면 봄에는 봄결을 고스란히 살려서 사진으로 담겠지요. 내가 좋아하며 사랑하는 삶을 보듬으면서 봄빛을 사진빛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이끌 테지요.

 그러니까 사진을 하는 길이란 삶을 꾸리는 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길이란 삶을 좋아하는 길입니다. 사진을 나누는 길이란 삶을 나누는 길입니다.

 삶을 꾸리듯이 사진을 꾸릴 뿐입니다. 삶을 보듯이 사진을 볼 뿐입니다. 삶을 어루만지듯이 사진을 어루만집니다. 삶을 마주하듯이 사진을 마주합니다.

 내 삶이 온통 돈벌이투성이라면 내 사진은 똑같이 온통 돈벌이투성이입니다. 내 삶이 온통 한길로 미쳤다면 내 사진도 온통 한길로 미칩니다. 내 삶이 온통 내 살붙이를 사랑하는 보금자리라면, 내 사진이란 시나브로 이 결을 아끼며 흐릅니다. 내 사진 또한 온통 내 살붙이를 사랑하는 보금자리로 흘러요.

 다만, 이렇게 사진을 찍든 저렇게 사진을 찍든 내 사진입니다. 내 삶을 담아 보여주는 내 사진입니다. 아직 어리숙한 풋내기라 한다면 어리숙한 풋내기 그대로 좋은 내 삶이요 내 사진입니다. 오래도록 갈고닦아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사진쟁이라 한다면 오래도록 갈고닦아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그대로 반가운 내 삶이면서 내 사진이에요. 더 거룩한 삶이 없고, 더 거룩한 사진이 없습니다. 더 모자란 삶이 없으며, 더 모자란 사진이 없어요.

 김영갑 님이 마라도를 찍든 말든 김영갑 님 삶입니다. 김영갑 님이 골목길을 찍든 말든 김영갑 님 삶입니다.

 사진으로 찍힌 모습과 터전과 사람을 바라보면서 김영갑 님 삶을 만납니다. 김영갑 님 삶을 만난 사람은 김영갑 님이 찍은 사진에서 숱한 사람과 삶터와 보금자리와 자연을 함께 만납니다. 둘은 그대로 좋은 이웃이고, 둘은 둘대로 반가운 동무입니다. 좋은 사진쟁이는 좋은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만나고, 좋은 사람은 좋은 사진쟁이를 만나서 스스럼없이 웃거나 울며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사진길은 사람길이면서 사랑길이고 삶길입니다.

 (2) 다시 태어난 사진책 《마라도》

 2010년 11월 바람 몹시 불던 날, 제주섬 마실을 했습니다. 집식구 모두 함께 제주마실을 했습니다. 자가용 없고 자가용 몰 줄 모르는 우리들은 고마운 분이 태워 주는 차를 얻어타고 두모악 김영갑갤러리도 찾아갑니다. 여러 차례 보았던 사진이고, 아이는 차에서 까무룩 잠든 바람에 헐레벌떡 슥 돌고는 부랴부랴 밖으로 나옵니다. 나오는 길에, 까만 천옷을 입고 새로 나온 《마라도》를 봅니다. 1995년에 처음 나온 《마라도》가 떠오릅니다. 예전 사진책에 실린 사진을 고스란히 다시 실었을까? 예전 사진에는 못 실었던 사진도 실었으려나?

 충주 멧골집으로 돌아와서야 사진책 《마라도》 비닐을 뜯어서 넘깁니다. 펼친 두 쪽에 사진 한 장만 넣는 판짜임입니다. 모든 사진은 똑같은 크기로 싣습니다. 이리하여, 1995년판에는 실린 사진이 2010년 8월 30일에 ‘시중 책방에는 없고 두모악갤러리에서만 파는’ 이 새 사진책 《마라도》에는 안 실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1995년판 《마라도》에 실려 내 마음을 설레게 하던 살가운 사진은 알뜰살뜰 제자리를 찾습니다. 1995년판은 판짜임이 엉성할 뿐 아니라 펼침새(두 쪽에 걸쳐 나오는 사진을 제대로 보려고 책을 펼치는 매무새)가 형편없습니다. 1995년판 《마라도》는 사진이 가운데에 씹힐 뿐 아니라 책이 쉬 망가집니다. 크기가 골고루라 할 수 있습니다만, 사진 엮음새는 뒤죽박죽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1995년판 《마라도》에는 김영갑 님 목소리가 글로 나타나 곳곳에 드러납니다. 2010년판 《마라도》에는 김영갑 님 목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꽤 많이 실린 김영갑 님 1995년 글이 2010년판에는 많이 잘립니다.

 1995년판과 2010년판은 똑같은 사진을 써서 엮은 사진책이지만, 두 책은 서로 다른 책이 됩니다. 1995년판은 사진을 더 많이 실어 주었으나 사진에 서린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기에는 모자랍니다. 2010년판은 사진을 덜 실었으나 사진에 깃든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기기에 좋습니다. 1995년판은 사진과 글을 함께 돌아보면서 마라도 사람들과 삶터와 자연을 살피기에 좋습니다. 2010년판은 마라도를 머나먼 옛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살피도록 합니다. 2010년판 《마라도》가 조금 더 김영갑 님 사진결을 보듬었더라면 한쪽(오른쪽)에만 사진을 싣는 틀이 아니라 두 쪽 모두 사진을 실으면서 이야기를 빛냈을 테고(딱 한 번 두 쪽에 사진 두 장을 실었습니다), 또는 왼쪽에는 김영갑 님 글을 실어 주면서 이야기를 꽃피도록 했겠다 싶습니다.

 사진책은 멋스럽거나 예쁘장하다고 해서 사진책이 아닙니다. 사진책은 사진과 이야기가 실린 책이라서 사진책입니다. 사진책은 사진으로 삶을 이야기하기에 사진책입니다.

.. 섬사람들은 바람을 두려워한다. 섬사람들이 오랜 세월 바람과 싸우며 흘린 눈물이 섬의 역사이며, 바람의 역사이다 … 눈을 뜨면 하늘이요, 바다다. 눈을 감아도 하늘이요, 바다다. 앉으나 서나 하늘·바다. 동서남북 어디에 있든 하늘·바다. 섬은 온통 하늘과 바다뿐이다 … 섬사람들에게 바다는 생명이다. 사랑도 미움도 행복도 불행도 시작은 바다. 웃음도 울음도 바다에 있고, 슬픔도 기쁨도 바다에 있다 ..  (눈빛 판/18∼19, 33쪽)

 헌책방마실을 바지런히 하더라도 1995년판 《마라도》를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제주마실을 해야 비로소 2010년판 《마라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래도 만만하지 않고 저래도 꽤 벅찹니다. 인터넷으로 우지끈 똑딱 하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오늘날인데, 김영갑 님 《마라도》는 이런 책으로든 저런 책으로든 여느 사람들이 쉽게 만질 수 없습니다.

 참 힘들구나 싶지만, 힘든 그대로 좋은 사진책이 《마라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김영갑 님 사진을 ‘김영갑 사진’으로 받아들이는 매무새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 환경이 식물에게뿐만 아니라 살아숨쉬는 모든 것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바람을 이해하고 나면 마라도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하나 무심히 스쳐 지날 것이 없다. 바람과의 싸움 속에서 생명은 이어가는 식물이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양새를 관심을 가지고 살피노라면 마라도가 소중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자그마한 섬에 세상살이에 필요한 지혜들이 무궁무진하게 숨어 있는 보배로운 섬이다. 마라도가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섬은 아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여행의 목적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섬이다 ..  (두모악갤러리 판/106쪽)

 김영갑 님 사진을 ‘김영갑 사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 사진을 ‘내 사진’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김영갑 님 사진을 ‘김영갑 사진’으로 받아들이자면 김영갑 님 삶을 ‘김영갑 삶’으로 읽어야 할 뿐 아니라, 김영갑 님 사진에 담긴 마라도 사람들 삶을 ‘마라도 삶’으로 읽어야 합니다.

 내 사진을 ‘내 사진’으로 맞아들이자면 ‘내 삶’을 먼저 옳고 바르며 참답고 착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을 제대로 모르면서 내 사진을 알 수 없습니다. 내 삶과 내 사진을 모르는데, 김영갑 님 삶과 사진을 알 길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도 참으로 많이 압니다. 신문을 알고 방송을 알며 인터넷을 압니다. 주식을 알고 스포츠를 알며 학력을 압니다. 서울을 알고 부산을 아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도시를 알고 돈을 아는 오늘날 사람들이에요.

 그렇지만, 우유는 알지만 소젖은 모르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소한테서 얻어 만드는 우유인 줄 모르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소한테서 얻어 만드는 우유가 되기까지, 소가 무엇을 먹고 소가 어떠한 우리에서 몇 해를 살아가는지 모르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마트에 잔뜩 놓인 우유만 아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마트마다 우유값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기만 하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삶을 참다이 모르기에 사진을 참다이 모릅니다. 모른대서 바보나 멍청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모르니까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삶을 모르고 사진을 모르기에 김영갑이나 김영갑 사진을 알 턱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영갑이나 김영갑 사진을 알 턱이 없으니, 《마라도》 1995년판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서 넘기든, 《마라도》 2010년판을 45000원 온돈을 치르며 제주섬 두모악갤러리에서 장만하여 펼치든, 이 사진책이 어떠한 결과 무늬와 내음과 빛깔이 고루 섞이어 살점과 뼈를 이루는가를 톺아볼 수 없습니다.

.. 수없이 몰려오는 관광객을 지켜보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도회지 사람들이 조용한 섬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 부럽다 이야기하면, 열이면 열 모두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와서 한번 살아 보라고. 작은 섬, 마라도를 해상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87년 남제주군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개발을 진행시키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유람선이 왔다 가고 자리덕·살레덕에 대합실이 생겼다. 쓰레기 소각장, 간이 화장실, 태양열 발전소, 복지관 등 새로운 건물들이 들쑥날쑥 들어서고 있다. 최남단이요, 외딴 섬이기에 대통령·장관·국회의원·도지사·교육감 등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래서인지 다른 섬에 비해 정부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살기 좋은 섬으로 변해 가지만 토박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학생이 둘뿐인 마라분교에는 컴퓨터·피아노·비디오·풍부한 학습교재·실험 도구 등 부족한 것이 없다. 최남단 외딴 섬이기에 명선이와 영신이는 수없이 나들이를 했다. 그들은 청와대까지 구경했다. 마라도를 다녀간 이들은 외딴 섬의 어린 새싹들을 위해 학용품도 보내 주고, 학습교재도 보내 주는 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보내 준다. 최남단 섬에 산다고 명선이와 영신이는 컴퓨터 광고 모델도 했고, 매스컴도 탔다. 그런데도 이 섬에는 아이들이 없다 ..  (눈빛 판/102쪽)

 제주섬을 찍었기에 대단하게 손꼽을 김영갑 님이 아닙니다. 제주섬 오름을 사람들한테 널리 알렸기에 훌륭하다 추켜세울 김영갑 님이 아닙니다. 두모악갤러리를 알차게 일구었으니 멋스럽다 자랑할 김영갑 님이 아닙니다.

 사진 한길을 즐거이 걸었기에 반가운 김영갑 님입니다. 사진 한길을 제주사람이랑 마라도사람이랑 손을 맞잡고 걸었기에 달가운 김영갑 님입니다. 사진으로 살아가는 길을 호젓하게 보듬으면서 사랑했기에 좋은 김영갑 님입니다.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대로 좋습니다. 내 옆지기네 어머님과 아버님은 내 옆지기네 어머님과 아버님대로 좋습니다. 내 어버이는 내 어버이대로 좋습니다. 내 이웃은 내 이웃대로 좋습니다.

 내 옆지기가 나와 같아야 좋을 수 없습니다. 내 옆지기는 나와 같지 않고 내 옆지기라서 좋습니다. 내 어버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닮기에 좋지 않습니다. 내 어버이는 나와 달리 내 어버이 삶이라서 좋습니다.

 김영갑 님은 바로 김영갑 님 삶을 일구면서 김영갑 사진을 했습니다. 김영갑이 마라도에서 마라도사람이랑 함께 살아가며 사진기를 들었기에 김영갑 사진이요, 사진책 《마라도》입니다. 1995년 눈빛판 사진책하고 2010년판 두모악갤러리 사진책은 아직 이 대목을 옳게 짚지 못합니다.

.. 옛날 섬사람들은 양식만 있으면 살았다. 바다에 나가면 반찬거리는 널브러져 있다. 생활수준도 비슷했다. 민박집이 생기면서 생활수준의 차이가 커졌다. 남편은 민박집을, 아내는 물질을 하기에 여유가 생겨 기름보일러를 놓고, 가스레인지를 사용한다. 여유가 없는 가정도 옛날보다 씀씀이는 늘어났다. 문명의 편리함을 알았기에 전기·전화요금·가스비·연탄값 등 지출이 많다. 양식이나 채소도 모두 사다 먹는다 ..  (두모악갤러리 판/107쪽)

 사진 하나가 있기에 살아온 김영갑 님은, 꼭 김영갑 님 목숨값에 알맞게 일하고 사랑하며 눈물짓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진 하나를 찍으며 살아온 김영갑 님은, 더도 덜도 아닌 김영갑 님 사랑씨앗에 걸맞게 놀고 잠자며 웃음짓다가 바람이 됩니다. 사진 하나를 얼싸안으며 살아온 김영갑 님은, 무지개와 같이 몸뚱이를 움직여 사람과 사진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았습니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무지개 징검다리이고, 폴짝 뛰어 건널 수 없는 무지개 징검다리입니다. 가까이 다가선다고 보거나 만지지 못하는 무지개 징검다리이지만, 너무 멀리 떨어지면 거짓말같이 보이다가 금세 사라지는 무지개 징검다리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참 바보라서, 두모악갤러리에 찾아가든 용눈이오름에 찾아가든 제주섬이나 마라도에 찾아가든, ‘김영갑이 보고 찍은 모습’에 눈이 먼 채, ‘김영갑이 숨쉬며 살았던 터전’은 부둥켜안지 못합니다. ‘내가 숨쉬며 살아갈 터전’은 느끼거나 찾거나 바라보지 못합니다.

 2010년판 《마라도》가 여느 새책방 책꽂이에도 꽂히면 참 좋겠지요. 그렇지만, 부러 제주마실을 해서 제주버스를 타고 돌아돌아 찾아가서 퍽 만만하지 않으나 그리 비싸지 않은 값을 치르며 사야만 볼 수 있도록 내놓은 모양새도 참 좋습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듯 사진책을 장만해야 합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는 매무새가 사진책을 장만하는 매무새이고, 사진을 찍는 매무새가 사진을 읽는 매무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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