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영광의 한 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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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영광의 한 해를 보내며!
  • 허회숙
  • 승인 2020.01.0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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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허회숙(테레사 베네딕타) / 전 민주평통 인천부의장, 인천시의원

 

 

고통과 영광은 세트 메뉴가 아니다. 신이 영광을 미리 안배해 놓고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고통 후에 나락으로 떨어질지, 더 높이 치솟을지를 고통 받는자의 결단에 맡긴다는 거다. 그 고통이 걸림돌이 될지, 디딤돌이 될지는 돌을 마주한 자에게 달려 있다.(동아일보 2019.12.07 이정향 컬럼 고통과 영광에서 발췌)

나는 20192월 말부터 보름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 온 후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을 겪었다. 평생을 편온하게 큰 병 없이 살아오다가 느닷없이 노후에 찾아온 정신적인 큰 풍랑에 휩쓸리며 육체적으로도 여러 가지 증세를 겪어야 했다. 석달 정도 약물 치료를 받으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다소 회복됨을 느꼈을 때,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새롭게 출발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와 7남매가 함께 사는 대가족 속에서 성장했다. 일년에 몇 차례씩 제사를 모시고, 가을 추수 후에는 고사를 지냈다. 결혼도 나와 비슷하게 유교적 가정의례를 존중하는 집안의 사람과 했다. 나와 남편은 신앙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성경 속에 나타나는 모순점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독립적 의지가 아닌 하느님에의 순명과 의탁 속에서만 구원이 주어지는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깨달음으로 도()에 이르고 열반의 경지에 이르를 수 있는 참선(參禪)과 불교 이론에 더 공감이 갔다.

그러나 바쁘고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 깨달음을 향한 체험과 수련은 일회성으로 끝나기만 했고, 종교적인 어떠한 절박함도 없었기에, 효도 차원으로 인생의 멘토인 강 장로님을 모시고 건성으로 감리교회에 나가며 수십년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진지한 자세로 성경을 읽거나 감동을 주는 종교 서적을 읽으려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긴 세월이 지나도 전혀 신앙심이 자라지 못했다. 나 자신이 구하고 두드릴 생각은 없이 뜨거운 신앙심이 왜 생겨나지 않는지 안타까워 하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나의 감성에는 카톨릭의 학구적인 분위기와 고요한 제례의식이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해 왔으면서도 똑같은 기독교인데 굳이 멘토이신 강 장로님을 거스르면서 성당으로 갈 필요가 있는가 싶어 주저해 왔는데, 드디어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지는 고통을 겪으면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인생의 종반부에 카톨릭으로 귀의한데에는 어릴적 친구의 영향이 뿌리 깊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가 있다. 집이 가까이 있어 등하교 시간이면 함께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위 단짝 친구가 되었다. 독서를 좋아하고 문예반에 함께 있어 끊임없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교내외 백일장에 함께 나가기도 했다. 교지 편집위원이었던 우리는 며칠씩 학교 양호실에서 합숙을 하며 교지를 발간하기도 하면서 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 갔다. 그 친구와는 무언중에 마음이 통하고 서로 존중하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내가 충동적으로 무슨 일이건 저지르려 들 때면 그 친구가 가만히 나를 진정시켜 주곤 했다. 훗날 생각해 보니 그 때 벌써 그 친구는 아직 어린애 같이 철이 없었던 나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성숙해 있었다.

나와 그 친구는 각기 다른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역사를 전공하던 나와 국문학을 전공한 친구는 상당 기간 함께 자취생활도 하고, 함께 한학자(漢學者)를 찾아 맹자(孟子)수업을 받기도 하는 등 행동 영역을 함께하며 살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그 친구는 남편의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이 신부님이신 독실한 카톨릭 집안의 사람과 했다. 그 친구는 일찍이 교직생활을 마감한 후 세속적인 영광이나 명예보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명의식 속에서 3년간 서강대에서 송봉모 신부님의 강의를 들으며 신학대학 과정도 이수하고, 평생서원을 하고 재속회에서 강의를 하며 속세에 살면서도 수도원에서 사는 수도자 같은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내가 예비신자 반에 등록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친구(헬레나)는 너무도 뜻밖의 소식에 밤잠을 이루지 못 했노라는 편지와 함께 두꺼운 성경과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 10여권을 선물로 부쳐오고는 내 신앙 공부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내가 세례명을 테레사 베네딕타로 정했고 나의 세례식에 대모로써 모시고 싶다고 헬레나에게 말했을 때 친구는 십자가의 테레사 베네딕타, 에디트 슈타인을 말하는 거지?”하면서 자신이 200911월부터 2010년에 2월 까지 십자가의 성녀 베네딕타(에디트 슈타인)의 생애에 대하여 5차례에 걸쳐 재속회에서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 후 친구는 에디트슈타인에 대한 강의록을 다섯 차례에 걸쳐 우편으로 부쳐주며 나의 교리공부를 도와주었다.

세례식 날에는 에디트 슈타인생애를 담은 달력과 사랑과 진리의 불길 에디트 슈타인’(수지와 카오리 저)이라는 저서를 선물하였다.

친구는 세례식 선물로 재속회의 달력을 사러 가보니 2020년 달력이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하느님의 예비하심과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번 놀라웠다고 한다.

위대한 지성인으로서 진리를 추구하던 에디트 슈타인이 결정적인 회심으로 하느님을 영접한 후, 한 없이 낮은 자리로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제 세례를 받음으로써 나는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께로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 드린다.

나에게 고통과 영광을 안겨준 2019년이 지나고 이제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2020년에도 고통은 있겠지만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이 고통을 영광으로 바꾸는 한 해를 가꾸어 가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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