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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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고
  • 최원영
  • 승인 2021.09.1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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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17화

 

《종합병원 24시》(왕위지아)에 착한 의사가 어떻게 나쁜 의사가 되는지에 대한 일화가 나옵니다.

이젠 노인이 된 의사가 중병에 걸렸다. 그날 밤에도 웬 부부가 병원문을 두드렸지만 노 의사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부부는 문 앞에 서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해댔다. 이 소리를 들은 의사는 자신의 병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질러대는 욕 때문에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삼사십 년 동안 늦은 밤도 마다하지 않고 돌봐주었건만, 정작 내가 병이 나자 돌아오는 건 욕뿐이라니. 그들은 어째서 내게 욕하는 거지? 단 한 번도 밤에 환자를 돌봐준 적이 없는 의사에게는 욕을 안 하고, 왜 내게 와서 욕을 하냔 말이야.’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부의 말만 들었다면 노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돌보지 않는 나쁜 의사라고 여겼을 겁니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면 판단이 달라질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속사정을 알 때까지는 자신의 판단을 옳다고 믿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본인도 전혀 모르는 본인의 가공된 이야기를 듣기도 할 겁니다.

이렇게 세상은 한 사람을 놓고 두 얼굴의 모습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척 힘겹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차라리 산에나 들어갈까, 라는 생각도 들 겁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사건이나 사고에 노출되곤 합니다.

사전적으로 보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이고,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사건이나 사고라는 용어 모두가 부정적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한 철학자는 ‘사건’과 ‘사고’를 아주 독특하게 해석했습니다. 흥미로웠습니다. ‘아, 이렇게도 해석할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을 위한 철학수업》(이진경)에 ‘사건’과 ‘사고’라는 용어를 새롭게 정의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무척 신선한 글이었습니다.

일생일대의 사건, 그것은 뜻밖의 순간에 닥쳐와 누군가의 인생을 그 이전과 이후가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으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이는 거대하고 거창한 사건으로만 오는 건 아니다. 가령 하나의 노래가 인생을 확 바꾸어놓을 때도 있다.

삶은 사건을 통해 크게 구부러지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인생에서 사건이란 그런 것이다. 이전에 바라고 예상한 목적지와는 다른 곳을 향해 가도록 한다.

누구나 많은 사건을 겪는다.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고, 누군가 태어나고 죽는다. 학교에 들어가고 친구를 만나고 시험에 떨어지고 연인을 만나고 취직하고 애 낳고 빚내어 집을 사는 사건들, 밥 먹다 가족과 언쟁한 것, 친구와 여행 간 것 등등, 소소한 게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 모두가 다 사건은 아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하나의 사건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 없는 어떤 구부러짐을 만드는 경우로 국한된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겪은 가슴 아픈 ‘사건’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건’이 되려면 그 사건으로 인해 내 삶의 방향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을 때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꿀 수 있는 열쇠는 오직 한 사람만 갖고 있습니다.

바로 ‘나’입니다.

저자의 견해를 조금 더 들어보겠습니다.

우린 많은 ‘사건’을 겪지만 그것을 모두 사건으로 겪지는 않는다. 당시엔 놀라운 것으로 경험한 일이지만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게 되는 것도 있고, 남이 보기엔 대단히 요란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지나가고 마는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도 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살아온 시간 속에서 사건이 그토록 적다는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맞습니다. 어제 술자리에서 그토록 화를 낸 일이 자고 나면 ‘내가 별것도 아닌 것을 갖고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경험이 저도 많습니다. 당시에는 그토록 중요한 것처럼 여겼을 텐데 말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인생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고, 자기가 목표로 하는 곳에 애써 도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교란하며 끼어드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쳐내려 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축소하려 하며, 그것에 방해받지 않고 애초에 바라고 예상한 길을 가려고 한다. 즉 사건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거세해서 사건이 되지 않도록 저지하는 것이다.

이런 방어기제 덕에 우리는 그토록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별다른 사건 없이 평탄하고 안정된 삶을 산다. 사건이나 곡절이 많은 인생이란 불행한 인생이고, 그게 없는 인생이야말로 편안하고 행복한 인생이라고들 믿고 사는 건 아닐까?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기억하기조차 싫은 어떤 일이라고 해도 그 경험으로 인해 삶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면 ‘사건’이지만, 삶이 전혀 바뀌지 않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태가 된다면 그 경험은 ‘사고’라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이별을 통고했을 때 만약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려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스토킹을 한다면 두 사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말 겁니다. 이때의 이별은 ‘사건’이 아니라 ‘사고’입니다.

이와 달리 이별의 아픔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이때의 이별은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을 잇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란, 그것이 실제 나를 애초에 바라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밀고 가더라도, ‘없었으면 좋았을’ 어떤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한 두 지점 간 간극의 폭은 그가 느끼는 불행의 크기를 뜻한다. 사고라는 말에 부정적 색채가 담긴 이유다.”

“반면 그것이 사건이 되는 것은 그로 인한 변화를 나의 새로운 삶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함으로써다. 그것을 ‘받아들인다’ 함은, 피할 수 없이 이미 내게 밀고 들어온 그것이 내 삶 안에 자리 잡았음을 받아들임이며, 그것을 ‘긍정한다’ 함은 그것으로 인한 변화를 새로운 삶의 기회로, 또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긍정함이다.”

멋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을 겁니다.

잊을 수 없는 불행한 사고가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게 아니라 그 사고를 바라보는 나의 그릇된 판단이 과거의 태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그것이 나를 불행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힘겨웠던 일이라도 그것을 우리가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기만 하면 ‘사건’이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삶은 항상 두 얼굴로 나타납니다.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 기쁜 얼굴과 슬픈 얼굴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괜찮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사고’를 얼마든지 ‘사건’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를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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