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찬바람이 불어오는, 임학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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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찬바람이 불어오는, 임학동에서
  • 유광식
  • 승인 2021.10.26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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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66) 임학동(병방시장)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아파트 외벽에 노란 알림판, 2021ⓒ유광식
아파트 외벽에 노란 알림판, 2021ⓒ유광식

 

상강 霜降이 지났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건지 바지 안으로 찬바람이 느껴진다. 여전히 반소매 티셔츠에 미련이 많지만, 아침 일기예보를 살피며 옷차림은 조금씩 두터워진다. 그중에는 마스크도 있는데 방역과 방한에 좋은 것 같단 생각이다. 마스크로 상징되는 2년여의 방역 노력이 이제 ‘위드 코로나’ 생활로 환승을 앞두고 있다. 추워지는 시기, 편의점에서 발견하는 따끈따끈 호빵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빌라 숲에서 자라는 은행나무, 2021ⓒ유광식
빌라 숲에서 자라는 은행나무, 2021ⓒ유광식
계산동 계산고등학교 정문, 2021ⓒ김주혜
계산동 계산고등학교 정문, 2021ⓒ김주혜

 

계양산의 좌측, 동쪽 면에는 임학동이 있다. 고성산(123m) 아래 자리한 임학동은 솔송에 앉은 백로의 모습이 장관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연 그런 상상을 하니 멋진 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장수할 것만 같은 생각이다. 사실 임학역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칠 공간이기도 했다. 옆에 병방시장이 있다. ‘계양산전통시장’으로 언제인가부터 바뀌어 불리고 있다. 병방시장은 큰이모네와 연결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계양산성 아랫마을 임학동에는 더는 백로가 살지는 않지만 고귀한 생명의 시민들 안식처로 백로 시대를 대신한다. 

 

임학공원 옆 임학경로당, 2021ⓒ김주혜
임학공원 옆 임학경로당, 2021ⓒ김주혜
어느 빌라맨션 다동, 2021ⓒ유광식
어느 빌라맨션 다동, 2021ⓒ유광식

 

경사면을 따라 지그재그 걷는다. 여느 거주지와 다르지 않은 저층 주택과 상가, 골목이 경사면을 따라 자리한다.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 임학역이고 계산역이고 그렇다. 임학동 최초의 아파트 인우아파트(80세대)가 중앙 공간에 위치하고 나머지 건물이 방사형으로 드리운다. 언뜻 아침이슬 머금은 거미줄 같다. 또한, 오래되고 낡은 옛날 감성 뿜는 상가명을 맞닥뜨리면 반갑기 그지없다. 진달래, 청춘, 칠성, 조흥, 풍년, OB, 훼밀리 등에서 시대가 겹치는 반가움과 편안함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계양산로에 위치한 주류창고, 2021ⓒ김주혜
계양산로에 위치한 주류창고, 2021ⓒ김주혜
청춘이발관, 2021ⓒ유광식
청춘이발관, 2021ⓒ유광식
칠성아파트, 2021ⓒ유광식
칠성아파트, 2021ⓒ유광식

 

5층 아파트들은 재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다.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외벽에 대형 현수막으로 중간보고를 하고 있다. 경축이라고는 하는데 전체의 축하보다는 일부의 자축에 가까운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날 몹시도 차가운 바람이 나타났다. 길을 잘못 들어선 바람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손가락 마디가 얼어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임학동이 계양산의 동쪽이니 해지는 저녁이면 기온이 뚝 내려간다. 한편 오래전 병방시장 거리는 오픈 천장이었는데 천장 아케이드 시설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깔끔하다. 시장에서는 누구나가 왼쪽 오른쪽 상품을 스캔하는 눈길이 바쁘고 예리할 따름이다. 

 

병방시장(계양산전통시장) 모습, 2021ⓒ유광식
병방시장(계양산전통시장) 모습, 2021ⓒ유광식
병방시장로에 위치한 어느 방앗간, 2021ⓒ유광식
병방시장로에 위치한 어느 방앗간, 2021ⓒ유광식

 

한참을 걷다 보면 ‘조흥’ 빌라가 눈에 많이 띈다. 한두 곳이 아니다. 임학동이 조흥과 무슨 유착이라도 되어 있는가 싶을 정도로 많았다. 또한 산과 맞닿은 생활도로에는 흠잡을 데 없이 빼곡히 주차된 차량으로 도로가 마을 울타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노랗게 타오르는 은행잎과 노란빛의 단감, 노란 바탕의 개발 현수막까지 임학 둥지가 겨울을 채비하고 있다. 

 

블록마다 보이던 조흥빌라, 2021ⓒ유광식
블록마다 보이던 조흥빌라, 2021ⓒ유광식
화산로와 장미빌라, 2021ⓒ유광식
화산로와 장미빌라, 2021ⓒ유광식

 

그 많던 소나무 자리는 현대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한 집 한 집 삶을 지피고 있다. 변방의 느낌도 없지 않아서 산기슭의 칡잎을 들추고 호랑이가 내려올 분위기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병방시장에서 단감 7개를 5,000원에 샀다. 단감 먹고 호랑이 같은 겨울 추위에 맞설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어느 ‘한쪽’이라는 공간에서 못생겼어도 삶을 단단히 꾸리며 온기를 더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본다. 변방이 아닌 병방의 아래, 옹기종기 단란한 공간을 걷게 된 임학의 오늘이 좋았던 이유다.

 

칡잎이 무성한 계양산 기슭과 골목, 2021ⓒ김주혜
칡잎이 무성한 계양산 기슭과 골목, 2021ⓒ김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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