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 "이제는 좀 사랑하며 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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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 "이제는 좀 사랑하며 살아도 좋다"
  • 강영희
  • 승인 2011.07.0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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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소극장 '다락'의 <챕터 투>를 보고


비가 쏟아붓는 새벽을 지나 다행히 비가 그쳤습니다.

바쁜 금요일(7월 1일). 오전에 신포동 작은 공방에서 헌옷 되살림 수업을 했는데, 함께 해야 할 정리도 못하고 먼저 배다리 '다행多行' 공방으로 돌아왔습니다. 11시부터 열어야 할 <한점갤러리>가 닫혀 있었거든요. 문을 열고, 조명을 켜고, 옛날식 파란 선풍기를 돌리고, 컴퓨터를 켜서 음악을 틀고 나니 좀 여유가 생깁니다. 막 구입한 베트남식 커피드리퍼 사용법을 익혀 진한 커피를 내고, 집에서 구워온 감자를 두어개 까먹으며 쉬고 있으니, 전에 알던 분이 <한점갤러리> 세 번째 기획전인 박상흠씨 사진전_<그녀이야기>를 보러 오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작가는 돌아가고 홀로 남은 나는 신포동에 생긴 소극장의 오프닝 공연을 함께 보러갈 사람들을 물색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은 생각보다 많이 바쁜 시간이기도 합니다. 회의, 가족끼리 식사, 회사 회식에….  혼자 보러 가기가 좀 그랬지만 참 행복해 하던 재이님이 생각나서 안 갈 수 없었습니다.

참 오랜 만에 연극을 보러가는 길, 현란한 영화로 일상의 문화생활을 시작한 필자로서는 2000년 처음 보러 다녔던 공연이 크게 감흥이 없어 흥미를 금세 잃었던 기억이 있기도 했지만,  서민들 일상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먹고 마시는 일 외에는 별로 없는 문화를 생각하니, 그 작은 공연장이 너무 허허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적지 않았습니다.

초대장이 있었지만 첫 공연에 아무래도 티켓은 구입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오랜 만에 티켓도 구입하구요, 함께 마련된 갤러리에 전시된 이인아씨 작품도 감상하고, 재이님의 특별 배려로 분장실도 엿보구요. 공연이 가까워 오자 작은 로비는 금세 사람들로 채워집니다.

공간을 준비하느라 연극에는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앞으로 열심히 만들어 가겠다는 극장 대표의 솔직하고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암전. 희미한 조명 속에 두 개의 방이 보이고 음악이 흐릅니다. 저 작은 두 개의 방에서 어떻게 사랑이야기가 펼쳐질까? 영화의 자유로운 공간 활용에 익숙한 저로서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걱정스러웠답니다. 그렇게 작은 무대 위에서 연극은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대 뉴욕 맨해튼. 두 남자, 두 여자 중년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네 명의 배우가 인사를 합니다. 두 시간 가량의 공연이 참 짧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연극이나 공연에 대해 마땅히 식견이 없는 생짜 관객으로서 오랜 만에 보고 나니 "어?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네. 다른 사람들도 함께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배우들의 표정과 사소한 실수, 능숙한 순발력까지 영화의 클로즈업과는 다른 묘미가 있었습니다. 영화와는 다른 묘미, 현실이 아니면서도 현실 같은 느낌은 작은 극장의 작은 무대가 선사하는 '연극'이 주는 새로움-저에게는 즐거웠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로비에 있는데, 배우들이 아쉬워하며 많이 미흡했다며 속상한 얼굴로 다시 보러 와달라고 하더군요. 한때 좋아했던 연극배우에 관한 만화 <유리가면>에서 연극을 볼 때마다 연극도 관객도 매 번 다른 무엇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도 두 번 보는 걸 참 힘들어하는 사람인데, 시간이 날 때마다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대표의 걱정스러움과 배우의 아쉬움이 어떤 건지 좀 알겠지만, 공연을 보는 데는 크게 무리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연극을 생각하며 조금 더 든 생각은 40여 년 전 미국 뉴욕의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와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양과 서양, 문화적 사회적 전통이나 관습이 다른 사회가 겹쳐지는 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TV 드라마에서는 사랑이 모든 것인양 이야기하지만 현실의 일상에서는 그 사랑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낭만이나 로맨스를 미디어를 통해 소비하고 있지만, 정작 먹고사는 일에 치여 있는 배부른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극은 인생의 2막을 이야기합니다. 꽤 현실감 있게 느껴집니다. 요즘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이 '중년'이라 하기엔 좀 어색한 시절이란 생각이 좀 들기는 하지만, 이 중년의 사랑이 꽤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2011년 한국 정서에서도 그것이 이제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조차 로맨스를 즐기기 어렵다고 하는 시대, 인생의 한 고비를 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좀 사랑하며 살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연극이었습니다. 청년의 사랑과는 좀 다른 성숙함과 배려와 헤아림, 여전한 열정들이 삶을 좀 살아본 중년들의 사랑에 깊이 감을 주고 있더군요. 우리, 좀 사랑하며 살아가도 좋지 않을까? 오랜 만에 '사랑'이란 단어를 많이 써보네요. 

'지금, 사랑해도 좋습니다!'. 뭐 이런 제목으로 떼아뜨르 <다락>에서 10주년 기념작을 지금 한국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여 쓰인 <인생, 제 2막>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무대의 생생한 감동을 한 번 느껴보시지 않겠습니까?

      떼아뜨르 다락 2011 정기공연 '챕터 투(Chapter Two)' 

 

기간 : 2011.7.1. ~ 10. 평일 7:30 주말 5:00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다락소극장 (신포시장 내 신한은행 건너편)

공연문의 : 032) 777-1959 http:// cafe.daum.net/theatre-dal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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