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새 둥지 준비하는 항운·연안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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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새 둥지 준비하는 항운·연안아파트
  • 유광식
  • 승인 2022.04.04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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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77) 항운·연안아파트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항운아파트, 2018ⓒ유광식
항운아파트, 2018ⓒ유광식

 

4월이다. 달력 한 장을 뜯는다. 뜯겨 나가는 한 장도 그렇고 살아갈 한 장을 보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누그러지는 기온 탓은 아닐 진데 사회적 거리두기는 상당히 완화되었다. 주변에서는 확진 소식을 안부 묻듯 나누는 분위기인데, 확진 소식에 두려워하던 몇 달 전을 돌이켜보면 현 상황을 어찌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곧 실외에서 마스크도 벗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지만, 스스로 면역을 키우려는 자세는 쉽게 벗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19xx 원대로 찍히는 기름값을 살피면서 돌연 지난 20세기 시절과 사람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나와 상관하듯 안 하듯 했던 1900년대로 대표되는 일련의 장면들이 주유소의 기름 값 숫자를 볼 때마다 폴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그 길 따라 인천의 대문 격인 항동 일대의 항운·연안아파트에 도착했다. 

 

연안아파트 외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 2022ⓒ유광식
연안아파트 외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 2022ⓒ유광식
인천종합어시장(후면), 2021ⓒ김주혜
인천종합어시장(후면), 2021ⓒ김주혜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의 인천-김포 구간 끄트머리에 있는 항운·연안아파트는 도로를 낀 100m 거리에서 서로를 위하고 있다. 폭넓은 도로가 펼쳐지는 항동 일대는 덤프, 컨테이너 트레일러의 주 무대이다. 창고와 공장, 선착장, 어시장 등이 몰려 있어 인천의 대표적인 항만산업 집합소이기도 하다. 눈 부릅뜨고 찾아가는 여정이 녹록지 않다. 그곳에는 차가운 바닥 위의 온점처럼 두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인근 라이프비취맨션 아파트가 대단지 규모로 인천종합어시장과 더불어 빛나지만, 1980년대 초 준공되어 오늘에 이른 세 아파트는 좋든 싫든 동료나 다름없다. 

 

항운아파트, 2022ⓒ유광식
항운아파트, 2022ⓒ유광식
연안아파트, 2022ⓒ유광식
연안아파트, 2022ⓒ유광식
라이프비취맨션 아파트, 2021ⓒ유광식
라이프비취맨션 아파트, 2021ⓒ유광식

 

항운・연안아파트는 각 5층 15동 규모다. 항만의 특수성으로 인해 주거지로는 다소 거친 환경이다. 아파트의 겉모습이 꼭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디는 부모님의 어깨처럼 느껴진다. 오래전부터 이주를 호소했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송도 이전이 확정되었다. 옛 롯데마트 건물이 아파트들의 중간에 있고 지금은 고속도로 고가가 생겨 두 아파트 사이를 좀 더 두텁게 막고 있다. 바다와 인천으로 표현되는 삶이 외관만 보아도 진하게 묻어난다. 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위해 인근으로 이전하게 된 건 다행스럽지만, 앞으로의 숱한 소음도 무시 못 할 변수이기는 하겠다. 높게 자란 나무 꼭대기에 아직도 나뭇가지를 물어다 멋지게 궁전을 짓는 까치가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랄 일만 남았다. 

 

나뭇가지 입에 물고 집수리 가는 까치, 2022ⓒ유광식
나뭇가지 입에 물고 집수리 가는 까치, 2022ⓒ유광식
각 호를 상징하는 섬네일(thumbnail) 우편함, 2022ⓒ유광식
각 호를 상징하는 섬네일(thumbnail) 우편함, 2022ⓒ유광식

 

두 아파트의 주소가 조금 다르다. 연안아파트는 항동, 항운아파트는 신흥동이다. 갈라선 듯 함께 해 온 40여 년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비슷하다. 현재 영업은 하지 않지만 남아 있는 단지 내·외부 간판이나 글씨체 등을 건지면서 지나간 20세기, 8, 90년대를 상상하게 된다. 무수히 오갔을 항만 노동자들의 자취가 가득했을 공간이 동면에 접어든 것처럼 미동이 없다. 상가동이 간혹 영화 촬영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는데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파트가 이전된 후 남겨진 부지가 어떻게 활용될지 궁금하다. 항운아파트 옆에는 당장이라도 무엇이든 빨아들여 쥐어 삼킬만한 대형 물류센터가 건설 중이다.  

 

한산한 연안아파트, 2022ⓒ김주혜
한산한 연안아파트, 2022ⓒ김주혜
대형 물류센터 건설로 위축되는 항운아파트, 2022ⓒ유광식
대형 물류센터 건설로 위축되는 항운아파트, 2022ⓒ유광식

 

인적은 드물고 간혹 배달 오토바이가 오갈 뿐 황량한 분위기다. 두 아파트는 라이프비취맨션과 너무도 대비된다. 연안아파트 상가 내 상점에 잠시 들러 보았다. 시골 슈퍼에 들어온 것처럼 오래된 상표와 물건들이 한 아름 진열되어 있었다. 달콤함이라는 이름으로 장소를 되새겨 볼 요량으로 산 초콜릿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뻥튀기도 하나 샀다. 나이 드신 아저씨는 배불뚝이 작은 컬러 브라운관 TV를 시청하고 계셨다. 분명 상점이지만 순간 박물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싶은 공간이다.  

 

오랜 세월의 풍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벽, 2022ⓒ유광식
오랜 세월의 풍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벽, 2022ⓒ유광식
상가 내부의 가라앉은 분위기, 2022ⓒ유광식
상가 내부의 가라앉은 분위기, 2022ⓒ유광식

 

여러 가지 이유로 시대가 변했다고 한다. 시대가 변해도 우리가 향하는 기쁨은 앞쪽이 아닌 지나간 자리에 꽂힌다. 사라졌대도 마음으로 가보는 송도해수욕장이 그렇고, 중학교 때 다닌 속셈학원이 그렇고, 남아 있으면 주문하고 싶은 치킨집이 그럴 것이다. 비록 규모는 라이프비치맨션에 비교가 되지 않지만, 항만 노동과 생활이 소금기에 떨궈져 나가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1,000세대가 넘는 사람들이 새 둥지로 이사하니 큰 짐이다. 부디 마음의 짐은 내려놓고 갈 일이다. 

 

도날드 덕과 미키 마우스 그리고 송도이주, 2022ⓒ유광식
도날드 덕과 미키 마우스 그리고 송도이주,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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