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노래하는 진달래 음표들, 가현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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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노래하는 진달래 음표들, 가현산에서
  • 유광식
  • 승인 2022.04.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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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78) 서구 가현산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4월 초의 가현산 헬기장(정상), 2022ⓒ유광식
4월 초의 가현산 헬기장(정상), 2022ⓒ유광식
대곡동 마을에 핀 개나리, 2022ⓒ유광식
대곡동 마을에 핀 개나리, 2022ⓒ유광식
대곡동 어느 집 앞의 목련꽃, 2022ⓒ유광식
대곡동 어느 집 앞의 목련꽃, 2022ⓒ유광식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었다. 억눌린 감정이 조금이나마 열리는 것도 같다. 내외 정세는 통곡할 만한 일들이 많지만 말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살기도 힘든, 정말 빠르고 복잡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잠시 눈을 돌리니 꽃구경 갈 시즌이다. 재빨리 인근 가현산(215m)을 찾아 가게 된 건 그런 연유에서다. 매화, 목련, 진달래, 개나리, 찔레꽃 등이 조각보처럼 산을 살포시 덮어 주는 봄이다. 아무리 좋은 구경이라도 먹고 나설 일이라 식사 때를 이용해 잔치국수 한 그릇부터 해치웠다. 오늘은 또 어떤 풍광이 기억에 담길까? 

 

임도를 따라 생활 뒤돌아보며 걷기, 2022ⓒ유광식
임도를 따라 생활 뒤돌아보며 걷기, 2022ⓒ유광식
비석 지점에서 가현산 안내도 익히기, 2022ⓒ김주혜
비석 지점에서 가현산 안내도 익히기, 2022ⓒ김주혜
가현산 정상 표지석과 개화한 진달래꽃, 2022ⓒ유광식
가현산 정상 표지석과 개화한 진달래꽃, 2022ⓒ유광식

 

가현산은 인천시 서구와 경기도 김포시로 경계가 나뉜 산이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보면 한남정맥 김포 지역에 전부 속한 산이었다. 지금은 서구와 김포가 번갈아 가며 언급되곤 한다. 식당에서 옆 테이블 한 부녀의 대화가 솔솔 들려왔다. 아버지는 가현산이 이전에 김포였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딸이 지금은 서구란 이야기로 되레 타이르듯 설명한다. 이제는 경계가 생겼고 애매하다지만, 김포든 서구든 산의 경계를 딱 잘라 나누기에는 오르는 길목마다 겹치는 지점이 많다. 가현아~ 가현아~ 노래를 부르면 될 일이다. 산의 형세가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하고 칡이 많아 갈현산(葛峴山)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가현산은 현재 인천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높지 않은 산이라 아이 손잡고 가족 단위로 오르는 사람도 많고 반려견의 동행도 많다. 중턱 소나무에 빨간 자전거를 매어 두고 간 분도 있다.   

 

헬기장에 모여 일상 여유 구출하기, 2022ⓒ유광식
헬기장에 모여 일상 여유 구출하기, 2022ⓒ유광식
하나하나 쌓아진 돌탑(김포 지분도 있을 듯), 2022ⓒ유광식
하나하나 쌓아진 돌탑(김포 지분도 있을 듯), 2022ⓒ유광식
진달래 동산에서 가족사진 찍기(필수), 2022ⓒ김주혜
진달래 동산에서 가족사진 찍기(필수), 2022ⓒ김주혜

 

오르는 길은 임도를 따라 지그재그 오르면 되었다. 비석 기점이라는 정상 바로 아래까지는 잘 정비된 콘크리트 길이지만 사실상 군부대 진입로서의 목적이 강해 보였다. 어찌 된 일인지 몇몇은 산 최상부까지 굳이 차를 운전하여 올라오기도 했다. 대략 10여대를 본 것 같은데, 송전탑 옆 작은 비포장 공터에 차를 주차한 뒤 간이의자에 앉아 식음료를 즐기는 커플도 있었다. 산의 참모습에 취해보기도 전에 비석 기점 옆에서는 쩌렁쩌렁한 스피커 소리의 색소폰 연주가 펼쳐지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가현산(歌絃山)이라 노래가 빠질 수 없었겠지만, 데시벨로 보자면 귀를 열기보단 닫게 된다. 가현산 정상에는 군부대 시설과 송전탑이 자리한다. 부근 헬기장이 정상 노릇을 하고 있는데, 주변이 온통 진달래 군락지다. 진달래 동산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환한 얼굴로 서쪽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땀을 식히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꿀벌보다 몸집이 큰 호박벌이 놀라 날뛰고 먼 하늘에서 여객기가 에어쇼를 펼친다. 평소 한 달 치 인천 시민(뿐만 아닌 다수)을 다 본 듯 오르막길과 정상 부근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갈림길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길 안내판, 2022ⓒ유광식
갈림길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길 안내판, 2022ⓒ유광식
오솔길 양쪽으로 진달래가 활짝(마치 내 앞길이 넓어지는 듯), 2022ⓒ유광식
오솔길 양쪽으로 진달래가 활짝(마치 내 앞길이 넓어지는 듯), 2022ⓒ유광식
가현산은 군사 요충지(훈련 교장과 참호가 있다), 2022ⓒ유광식
가현산은 군사 요충지(훈련 교장과 참호가 있다), 2022ⓒ유광식

 

진달래 동산이 있는 헬기장에 다다르기도 전에 다소 부산스러운 산중 분위기에 마음이 부석거렸으나, 진달래를 만나고는 순식간에 개운해졌다. 강화도 고려산의 진달래 축제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각자가 인근 산등성이의 진달래를 보며 작은 축제를 즐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어렸을 적 등굣길에 산을 바라보면 연분홍색 여린 꽃잎들이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새로웠다. 지금은 활짝 핀 모습을 한 번에 종합해서 보니 그때만큼의 설렘은 아니더라도, 만 명의 만개 꽃 웃음을 되찾아 준 듯 가슴이 벅차다. 정상 부근에서는 서구 검단동과 김포 양촌읍을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종대교, 영종도, 세어도, 강화도, 한강 등까지 드넓은 구역을 살필 수 있다. ‘가현산사랑회’가 꾸민 여러 시설물이 많았고 등산객들의 소망으로 쌓았을 법한 견고하고 커다란 돌탑이 3개나 있다. 가현산은 경기둘레길(김포 59코스), 서로이음길(8코스), 서해랑길(98코스)이 지나는 길목 중의 길목이다.  

 

대곡동 두밀마을의 500년 넘은 은행나무(맞은편에 반남 박씨 종중 묘역), 2022ⓒ유광식
대곡동 두밀마을의 500년 넘은 은행나무(맞은편에 반남 박씨 종중 묘역), 2022ⓒ유광식
대곡동 황곡노인정과 튼튼한 다리가 되어 주는 마을버스, 2022ⓒ유광식
대곡동 황곡노인정과 튼튼한 다리가 되어 주는 마을버스, 2022ⓒ유광식

 

능선을 걷다 보면 서구니 김포니 하는 지역의 경계는 따뜻한 봄의 기운으로 금세 사라진다. 가현산 주변은 선사·청동기 시대의 유물, 유적이 많다. 또한 오랜 수령의 나무도 많다. 생생한 풍경을 읊으며 하산했다. 비포장 산길을 걷는 건 무척 신나는 일이다. 옷차림과 마스크 탓인지 다소 덥다는 생각이었지만 한달음에 다녀올 수 있어서 개운했다. 내려와 대곡동 지석묘군과 땅의 정기를 머금은 도라지골산 아래 두밀마을 은행나무를 대면하고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그날처럼 탁 트인 세상이 간절하다. 논둑을 태우며 나는 구수한 연기처럼 평화의 농사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으면 좋겠다.   

 

대곡동 지석묘군(던져둔 것처럼 안쓰럽다), 2022ⓒ유광식
대곡동 지석묘군(던져둔 것처럼 안쓰럽다), 2022ⓒ유광식
논둑을 태우며 나는 구수한 연기와 마을 농부(올해 논농사 예열하기), 2022ⓒ김주혜
논둑을 태우며 나는 구수한 연기와 마을 농부(올해 논농사 예열하기), 2022ⓒ김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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