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8가지 고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본질적인 고통인 ‘생로병사’의 고통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네 가지 고통, 즉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볼 수 없는 ‘애별리고’라는 고통,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하는 ‘원증회고’라는 고통, 원하는 것을 내 손에 쥘 수 없는 ‘구불득고’라는 고통,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봐야 하고 들어야 하며 느껴야 하는 ‘오음성고’라는 고통 등이었습니다.
오늘 방송부터는 이렇게 8가지 고통이 살아 있는 동안 어차피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혜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안도현)에서 저자는 ‘반얀나무’를 회상했습니다.
“반얀나무는 인도를 대표하는 수목 중 하나다. 이 나무는 지표층이 얕은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이 있어서, 황무지 같은 땅인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거대한 숲을 이룬 아름드리 반얀나무 군락이 있는가 하면,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진 볼품없는 것도 있다.
뿌리가 약한 반얀나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제 팔뚝에서 다시 땅으로 뿌리를 내리는 습성이 있다. 수백, 수천 갈래의 뿌리들이 가지에서 땅으로 내려와 흙을 움켜쥐어야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는 거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나는 낡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사나운 바람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울고 있는 반얀나무들을 봤다. 아직 땅에 닿지 못한 실뿌리들을 치렁치렁 가지에 매달고 있는 그들이 문득 이 지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슬픈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가, 내게 슬쩍 물어본다.”
가만히 여러분이 ‘반얀나무’라고 상상해보세요. 그것도 매연가스로 가득 찬 도로 옆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가로수라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깨끗한 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물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얼마나 어려웠으면 공중에 떠 있는 줄기에서도 뿌리를 내려 땅으로 향하게 했을까요. 생존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느껴지지요?
그래서 시인은 ‘이 지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슬픈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을 겁니
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지나온 삶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냈고, 사사건건 남을 탓하며 얼굴을 붉힌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왜 그런 일들이 그리도 많은지요? 물을 구할 수 없었던 반얀나무가 하늘을 보고 신을 탓하며 화를 내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줄기에서 뿌리를 내리는 지혜가 저에겐 없었던 겁니다.
‘반얀나무가 그랬듯이 나는 생존에의 강한 열망이 있는가?’
이렇게 다시 자문해봅니다.
‘기대’한 것과 ‘현실’이 다를 때 고통을 느낍니다. 그런데 고통을 깊이 살펴보면 예상하지 못한 점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아파하지만, 사실은 이루지 못한 ‘현실’ 때문이 아니라 그 현실에 대한 나의 판단과 해석 때문에 아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내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해석’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생각을 달리해보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반얀나무가 겪고 있는 아픔과 그래서 흘리는 눈물이 오히려 반얀나무를 살게 하는 역동적인 힘이 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