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시간이 주단처럼 펼쳐진 곳, 경인종합상가 일대
상태바
비옥한 시간이 주단처럼 펼쳐진 곳, 경인종합상가 일대
  • 유광식
  • 승인 2022.08.16 0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유람 일기]
(85) 주안4동 경인종합상가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주안이 활짝 피었습니다!, 2022ⓒ유광식
주안이 활짝 피었습니다!, 2022ⓒ유광식

 

8월 첫 주말의 비 피해가 매우 컸다. 무더위에 가족과 휴식을 취하기도 바쁜데 전국적으로 수해가 커서 모두가 놀랐다. 부디 빠른 피해복구와 안정이 내려앉기를 바란다. 지난 석 달간 귓속에서 맴돌던 개구리 소리가 그친 줄도 모르다가 바통을 이어받은 매미 소리에 문득 시간을 깨닫게 된다. 철 따라 배달되는 소리에 여러 가지 생각을 담고 있으면 괜스레 쌓이는 시간만 탓하며 지난 추억을 되짚게 된다. 분명 자신만의 시대가 있었고, 이를 보증하는 것들이 오래도록 남아 주는 데에 이의를 던지는 이는 없다. 우리는 현대라는 역사를 하나 세우는 중이니 말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제작 중이다. 

 

아직도 좁은 골목을 누비는 동네 주유소, 2022ⓒ유광식
아직도 좁은 골목을 누비는 동네 주유소, 2022ⓒ유광식
여름 뙤약볕에 마음껏 기지개를 펴는 나무, 2022ⓒ김주혜
여름 뙤약볕에 마음껏 기지개를 펴는 나무, 2022ⓒ김주혜

 

주안동의 포인트가 되는 시민회관 역 주변으로 나와 보았다. 혹 누가 보면 시민회관 역인데 이름의 주인인 회관은 어디 있느냐 할 것이다. 2000년 사라진 회관(1973~2000)을 두고 지금까지도 기억이 참으로 길구나 싶다. 사실 이곳은 인천시민운동의 성지 같은 곳이다. 너른 땅 주안에 소규모 주택들이 많은 가운데 도시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마중물 역할을 한 번 해보겠다며 총대를 멘 곳이 바로 1구역이다. 옛 주안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를 대규모 의료, 상업, 주택지로 바꾸는 사업인데, 얼마 있으면 준공이라니 착공까진 느려도 건설은 눈 깜짝할 정도로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옆으로는 오래된 경인종합상가가 있다. 얼핏 보아도 오래된 형님뻘 집처럼 커다란 면적에 육중한 점포들, 뒷면 옥상에 2층 공동주택이 네 동이나 올라가 있는 독특함으로 40년 넘는 버팀목이다. 지난 인천의 시대상을 모조리 알려 줄 만도 한 자태이지만 뿔이 났는가 말이 없다. 

 

올해 준공 예정인 포레나인천미추홀 건물과 눈을 의심케 하는 기와집 한 채, 2022ⓒ유광식
올해 준공 예정인 포레나인천미추홀 건물과 눈을 의심케 하는 기와집 한 채, 2022ⓒ유광식
경인종합상가 앞면, 2022ⓒ유광식
경인종합상가 앞면, 2022ⓒ유광식
경인종합상가 측면 골목에서, 2022ⓒ유광식
경인종합상가 측면 골목에서, 2022ⓒ유광식

 

비유가 그렇지만 경인종합상가는 1구역에 지어진 ‘포레나인천미추홀’의 원형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경인종합상가는 70년대 말 세워져 마흔을 넘긴 노후 건물이다. 상당한 규모로 일대 저녁을 붉게 물들였을 포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 지난 시절이겠지만 말이다. 상가 밖을 한 바퀴 돌고 미로 같은 내부를 빙빙 돌아본 뒤, 옥상 공동주택도 살며시 올라가 보았다. 고온 다습의 날씨를 적절히 이용이라도 하듯 곳곳에 빨간 고추가 여름 선탠 중이다. 입추도 지났고 이후로는 온 동네가 붉어지겠구나! 맵겠다 싶은 풍경이다. 상가 뒤편은 주안시장이다. 시장의 기능은 도망이 갔는가 싶다. 과거의 영광만 천막 아래 전시된 느낌이다. 시장의 나이만큼 함께 시간을 보낸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만이 장사하고 계시지만 무더운 날씨에 더해 텁텁한 마음 감출 길 없다. 

 

주안시장을 수 놓은 점포 천막, 2022ⓒ유광식
주안시장을 수 놓은 점포 천막, 2022ⓒ유광식
건강에는 OOO 좋더라~, 2022ⓒ유광식
건강에는 OOO 좋더라~, 2022ⓒ유광식
그 흔한 주안동 패션!, 2022ⓒ유광식
그 흔한 주안동 패션!, 2022ⓒ유광식

 

상가 뒤편 옥상은 공동주택이다. DCBA 4개 동이 있는데, 각자의 문 앞에 화분 정원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있으며 고추를 널기에 참 좋아 보이는 마당 아닌 마당이 존재했다. 상가 건너엔 주안현대아파트가 친구 격으로 우뚝 서 있다. 또한 골목마다 주변 업소들의 영향은 아닐까 싶은 정도로 이・미용실이 많았다. 주안초등학교가 이사하는 바람에 문방구와 교습소의 간판은 조금 어색해진 표정이다. 야트막한 언덕에 알알이 박힌 집들이 문학산을 바라보며 해바라기한다. 주안이 안 그래도 뜨거운데 도시개발 사업으로 복작복작한 모습이었다. 경인종합상가는 도시개발 11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공동주택 4개 동이 있는 경인종합상가 뒷면 옥상, 2022ⓒ유광식
공동주택 4개 동이 있는 경인종합상가 뒷면 옥상, 2022ⓒ유광식
미용 장인들이 모인 골목 사거리 , 2022ⓒ유광식
미용 장인들이 모인 골목 사거리 , 2022ⓒ유광식
주안현대아파트 아케이드(나는 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요?), 2022ⓒ유광식
주안현대아파트 아케이드(나는 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요?), 2022ⓒ유광식

 

한 곳이 중심을 잡으면 주변으로 파생되는 장소가 생기기 마련이다. 상생의 풍경인 셈인데, 지금의 시대는 그 역할을 빌딩 하나가 전부 해결한다. 기존의 평면형 조성이 현재의 수직형 상생으로 변화되었다고나 할까. 각각 장단점이 있고 시민들의 선호가 다르기에 뭐라 할 수 없는 흐름이겠다. 그래도 높이 2m도 안 되는 인간인데, 그 시야를 빈틈없이 메꾸는 주택 박스의 조성은 곱지 않다. 창작이 틈에서 이뤄지듯, 빈틈없는 사람보단 차라리 빈틈 보이는 사람에게 정감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남아 있는 상가 간판을 보며 과거의 주안을 그려볼 수 있어 즐거웠던 건 사실이다. ‘빵이가득한집’에서 부푼 빵을 사고 근처 ‘연정갤러리’에서 열 식히며 잠시 동네를 곱씹어 보았다. 지금 바라본 풍경을 전부는 아니어도 되살리지 못할 시대가 온다면 슬플 것이다.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주변 분위기를 받들고 증언해 주는 경인종합상가와 주안시장을 거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단팥빵 여름의 맛이 아닐까. 

 

골목의 간판 모음(시대의 아쉬움이 물씬 묻어난다), 2022ⓒ유광식
골목의 간판 모음(시대의 아쉬움이 물씬 묻어난다), 2022ⓒ유광식
주안시장의 떡집(방아도 잠자는 저녁 시간), 2022ⓒ김주혜
주안시장의 떡집(방아도 잠자는 저녁 시간), 2022ⓒ김주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