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 찾기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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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 찾기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 김경수 기자
  • 승인 2023.01.20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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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차기율 시각예술 작가
‘박수근미술상’ 인천 첫 수상…올 6월 초대전 개최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조형예술학부(16호관) 건물에 있는 연구실을 찾아갔을 때 차기율 교수는 온통 작품에 둘러싸여 있었다. 데스크톱이 놓여있는 책상을 제외하면 그 방은 온전히 규모 작은 작업실에 가까웠다.

차 교수가 몹시 바쁜 이유는 자명하다. 올 6월 비중있는 전시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미술관이 전년도 미술상 수상작가를 초대하는 기획전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가을 경사가 날아들었다. 7회를 맞은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된 것이다. 인천작가로는 처음이라는 기록을 썼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낭보였다.

“전화로 선정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당연히 감사한 마음이었죠. 박수근미술상이 남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양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비주류 삶의 박수근이라는 작가가 일본 유학파가 주류였던 시절, 자신을 잃지 않고 작품세계를 일구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동안 곁눈질하기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간 데 대한 보상과도 같았습니다.”

박수근미술상 선정 절차는 이렇다. 5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 위원들이 작가의 작품활동 전 과정을 들여다보는 검증을 통해 1인 3명씩 추천한다. 심사위원회가 15인의 작가를 대상으로 심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어 그 결과를 놓고 운영위원회에서 재차 결정을 한다.

“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연장선상에서 여는 초대전이 6월로 예정돼 있다.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에서 5개월 동안 전시를 폅니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을 시기별로 분류해서 보여주려고 합니다.”

 

고고학적 풍경-불의 만다라  소성된 갯벌, 철
고고학적 풍경-불의 만다라 소성된 갯벌, 철

화가 박수근의 고단했던 삶이 본인과 닮았다고 말한다. 작품으로 평가하기 보다 외형적인 조건을 따지는 세태에 일찍이 벽을 느꼈던 그다.

“예술가는 본인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을 합니다.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죠. 그런데 사회가 자꾸 출신대학을 먼저 보는 겁니다.” 인천대 미술학과 1회 졸업생이라는 이력으로는 날개를 펼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작품세계에 몰입하는 시간을 쌓아갔다.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시간을 썼습니다. 내가 살아온 지역의 풍토, 조상에게서 받은 DNA 기질이 나를 이루는 근본 요소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초적인 땅을 바라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결실이 맺혀지기 시작했다. 2000년 중앙일보 주최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에 올랐다. “당시 지방출신 수상을 미술계가 놀라워했습니다.” 나이는 40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듬해엔 미국 ‘버몬트스튜디오 센터’의 ‘프리만 펠로우쉽’에 한국 대표작가로 선발됐다. “아시아 10개국을 대상으로 나라마다 한명씩 작가를 선발·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었는데 선정된거죠.”

그 다음은 국내 첫 레지던시 스튜디오로 개관한 ‘국립창동미술스튜디오’의 입주작가로 뽑혔다.

“2기 입주작가 모집에서 경쟁률이 150대 1이었습니다. 동기들은 대부분 외국 유학파였죠. 입주 1년동안 몸부림쳤던 시기입니다. 프로모션 기회가 주어진 거잖아요. 열심히 했습니다.”

비로소 세상이 그를, 작품세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가져간 주제는 ‘땅’에 관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땅의 기억’이다. 땅은 시간을 기억하고, 공간을 기억하고 역사를 기억한다. 삶을, 존재를, 시원을 기억한다. 그 기억이 궁금해서 땅을 파헤치는 발굴을 시도한다.

“발굴이라는 행위로 지난 시간 속 작은 파편들을 들여다보면서 그곳에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없어졌는지, 우리가 잃거나 없애버린 것들은 무엇인지, 오늘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 지, 가치에 대한 성찰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프로젝트 타이틀을 ‘도시 시굴-삶의 고고학’이라고 붙였다.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 혼합재료와 영상. 가변설치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 혼합재료와 영상. 가변설치

그 다음으로 넘어간 주제가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다. 현재까지 그가 정박하고 있는 의미론적 지점이기도 하다

방주는 대홍수 이후 살아남은 ‘노아의 방주’를 의미한다. 강목은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는 각종 식물의 대강과 세목을 밝힌 서책 ‘본초강목’에서 따왔다.

“방주는 서양문명을, 강목은 동양사상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 둘의 사이란 서구문명과 동양사상의 경계선을 의미하죠. 즉 순환하는 인류의 사이클에서 그 경계선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작업입니다.”

작가는 순환의 여행이라는 장대한 시간의 축 안에서 동서양의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전에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그동안의 작업과 작품을 총체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다 보여줄 수는 없지만 평면과 설치 작품, 드로잉 작업과 사진, 영상까지 복합적으로 펼쳐보이려고 합니다.” 작가는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다.

 

불의 공제선, 판넬 위 아크릴, 자연목, 철
불의 공제선, 판넬 위 아크릴, 자연목,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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