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고려장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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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고려장으로 가는 길
  • 송자
  • 승인 2023.02.0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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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송자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인문학 아카데미 소통의 글쓰기반

퇴임을 하고 일에서 손을 떼니 이제는 머리 아픈 일이 줄어들 것만 같았습니다.

‘헐, 이게 뭐야.’

전자기기의 발전은 어느새 나의 일상을 불편하게 합니다. 아니 어느 경우에는 괴롭힌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디지털 환경의 갑작스런 변화는 내가 마치 낯선 나라에라도 와있는 느낌입니다.

‘나이 먹은 사람에 대한 배려는 손톱만큼도 없는 거야.’

무인단말기(키오스크)의 영화관 입장권이나 열차, 고속버스의 승차권 구매, 온라인 쇼핑몰 결제시스템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며칠 전에는 무인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려고 기기조작을 하는데 집 앞 점포의 기기와 달라 시행착오를 반복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되돌아 나오려는데 젊은이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무인기로 다가가자 슬며시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그의 기기 조작을 보며 습득하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커피를 뽑고는 말했습니다.

“도와 드릴까요?”

“내가 해보고 싶은데 옆에서 봐주시겠습니까?”

그의 손동작을 보았지만 놓친 게 있었나 봅니다. 한 차례 착오를 거친 끝에 커피를 한 잔 뽑았습니다.

내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버스 승차권 예매입니다. 자주 사용하는 일이 아니니 남의 도움을 받았지만 막상 다음에 해보려면 버벅거리기 마련입니다.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현찰이나 현금카드에 익숙한 나에게 무인단말기(키오스크)는 분명 괴물 같은 존재입니다. 한때 노년층이 잘 가지 않는 햄버거 가게 등에 키오스크가 집중돼 별반 신경 쓰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고속도로휴게소는 물론 소규모 점포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설치되니 주문대 앞에 다가가기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분 나쁜 일이 있습니다. 돈과 관련된 일입니다. 바로 은행입니다. 예·적금 업무가 있는데 대면 창구와 인터넷이나 모바일 창구와의 금리 차이가 있습니다. 대면과 비대면의 환경입니다. 비대면·모바일 창구는 금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배우면 되겠지만 돈과 관련되어 있다 보니 조작을 잘못하기라도 하면 전부를 잃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금리가 낮아도 어쩔 수 없이 은행을 찾아갑니다.

한 번은 기분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키오스크를 이야기 했더니 창구 아가씨가 내 스마트 폰에 접속하여 모바일로 예금을 해주었습니다. 고맙다고 말했더니 시골에 계신 자기 할아버지와 모습이 흡사하다며 만기가 되면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나와는 달리 급변하는 정보통신 사회에 생존하기 위해 '디지털 노마드' (Digital Nomad: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자유롭게 정보통신 세계를 누리는 디지털 리더)로 일상을 즐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지갑을 몸에 지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마트 폰에 신용카드와 신분증까지 심어뒀기 때문입니다. 모바일신분증을 저장해두는 절차가 쉽지는 않았지만 핸드폰과 씨름한 결과입니다. '흔들기'를 통해 처리된 개인정보가 선명하게 드러날 때마다 남다른 희열과 우월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키오스크 주문이나 NFC(무선통신) 결제는 이미 식은 죽 먹기라고 자랑합니다.

이분이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닙니다. 이태 전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자 매장 직원이 다가왔습니다.

“어르신! 도와드리겠습니다.”

자신이 ‘디지털 문맹자’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굴욕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디지털 고려장을 당한 거야?”

불쾌한 마음이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후 생활 속 디지털 정복에 나섰다고 합니다.

나도 몇 가지는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도서 대출카드를 스마트 폰에 저장했습니다. 부족하지만 하나하나 배워 활용하는 기쁨도 있습니다. 익숙해지면 편리하고 투명한 세계를 지향하는 게 디지털입니다. 약간의 두려움을 극복하면 시니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었을 때의 패기로 도전을 해야겠습니다.

<디지털 고려장>은 김동식의 소설 「회색인간」 중 한 편의 글입니다. 길이가 짧으니 굳이 내용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읽고 조용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디지털 문명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습니다. 현대판 고려장에서 벗어나려면 몸과 마음의 건강 유지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배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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