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너를 만나 내 세상은 아름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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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너를 만나 내 세상은 아름다웠어!”
  • 윤세민
  • 승인 2023.06.1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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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의 영화산책] (4) 〈남은 인생 10년〉
윤세민 /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시인, 평론가, 예술감독

범죄액션과 SF 장르가 대세인 요즘 극장가에서 잔잔한 멜로(로맨스) 영화 한 편이 작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영화 <남은 인생 10년>이다.

‘멜로(로맨스)’는 감성적이며 대중적인 연애 이야기다. 그런 만큼 영화 소재로는 가장 흔히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아예 ‘멜로/로맨스 영화’가 영화의 한 장르로 굳혀진 지 오래다. 영화 매체의 대중화를 고민하던 이들은 소비문화의 주축이었던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멜로 영화를 내놓아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주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애정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멜로(로맨스)의 대세로 굳어졌다.

<남은 인생 10년> 역시 여성이, 그것도 시한부 인생의 여자 주인공의 애절한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시한부 인생의 애절한 삶과 사랑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해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마츠리’(코마츠 나나)가 퇴원 이후 찾게 된 동창회 자리에서 삶의 의지를 잃은 ‘카즈토’(사카구치 켄타로)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멜로(로맨스) 영화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상반기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최종 관객 253만 명을 기록한 작품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로서 실제로 원작자 코사카 루카는 소설 <남은 인생 10년>을 집필할 때 투병 중이었는데, 출판 편집 기간 사이에 그만 지병으로 작고하고 만다. 극 중에 여자주인공이 자신의 투병 과정과 일상을 적어둔 노트가 등장하는데, 그 노트가 원작자의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실제 노트를 거의 비슷하게 재현해 많은 공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영화의 일부 장면은 원작자의 고향 시즈오카현 미시마시에서 실제로 촬영됐는데, 주연 배우들은 원작자에 대한 경의를 담아 시종 무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일본 아카데미상 6개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감독이다. 후지이 감독은 처음에 ‘시한부 인생’이란 진부한 소재에 엄청난 거부감도 있었지만, 원작의 순수함과 원작자의 투병 과정을 적은 이 노트의 리얼함에 빠져 이 작품에 매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후지이 감독의 작품이 한국에 개봉한 영화는 몇 편 안되지만, 2019년 한국배우 심은경이 출연한 아베 정권 비판 영화로 화제가 된 <신문기자>라는 영화는 한국에도 개봉하여 비록 관객 수는 저조했지만, 평단의 좋은 평가를 얻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여자, 살고싶지 않은 남자의 운명적 사랑

‘폐동맥 고혈압’이라는 백만 명 중 한두 명이 걸리는 희귀병으로 병원에서 수년간 치료를 받던 마츠리는 10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원 후 일상으로 돌아온다. 대학교 동창들도 만나고 중학교 동창회도 다녀온 마츠리는 자신과 같은 도쿄에서 삶을 살고 있는 카즈토를 운명적으로 만나지만, 그는 은둔형 삶을 살고 있다. 가족과 절연하고, 직장에서 잘리고, 사람을 만나길 꺼려하는 남자. 그런 탓에 카즈토는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으나, 마츠리를 만난 후부터 조금씩 바뀌며 바깥세상 음식점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즈토는 마츠리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지만, 그에 따라 시한부의 삶을 사는 마츠리의 고민은 더해져만 간다.

일반적으로 시한부 소재의 영화들은 후반부에 적당히 슬프면서도 담담하게 끝나는 결말이 많다. 그러나 이 영화의 후반부, 마츠리와 부모의 마지막 대화 장면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삶의 끝이 다가왔는데, 사랑하는 남자도 있고 이 세상에 미련이 많이 남은 여주인공이 오열하며 삶에 대한 애착을 진하게 토하는 장면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남은 인생 10년'은 무엇이든 감히 마주하는 용기와 진실된 사랑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는 영화다.
'남은 인생 10년'은 무엇이든 감히 마주하는 용기와 진실된 사랑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는 영화다.

 

<남은 인생 10년>의 매력과 미덕

여주인공 마츠리를 맡은 코마츠 나나는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로,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그 특유의 슬픔이 가득 전해지는 배역을 잘 소화해 냈다. 실제로 코마츠 나나는 이 작품이 자신의 대표작이 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이 영화에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남주인공 카즈토 역의 사카구치 켄타로는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를 시작으로 <그리고 살아간다> <헬 독스> 등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일본 대세 배우로 <남은 인생 10년>의 초반 은둔형에서 조금씩 달라지며 후반부의 전혀 다른 모습까지 적극적으로 배역을 소화해 냈다. 일본을 대표하는 비주얼 배우인 두 사람의 찰떡같은 연기력은 그들의 사랑을 충분히 공감시키며 영화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었다.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감각적인 연출로 관객에게 그림 같은 장면을 선사해 주었다. 주인공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봄, 즐거운 여름, 아름답던 가을, 깊어진 겨울까지 아름다운 사계절 변화를 배경으로 두 주인공의 사랑을 찬란하고도 처연한 영상미로 표현해 주었다. 슬픈 사랑의 이야기만큼이나 애절함을 담은 OST 또한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사실 주인공의 시한부라는 삶을 초반부터 관객들이 알고 보기에 스토리가 어느 정도 예견되고, 중반부까지는 그리 확 잡아 끌만한 내용이 부족하기에 몰입감이 조금 떨어진다는 점은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멜로/로맨스 장르의 진부한 정석을 따르면서도 독특한 접근으로, 아픔과 죽음을 넘어서 사랑이 주는 생명력과 삶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죽음을 앞둔 여자, 살고싶지 않은 남자, 둘이 사랑을 시작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 <남은 인생 10년>은 무엇이든 감히 마주하는 용기와 진실된 사랑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는 영화다. - “고마워, 너를 만나 내 세상은 아름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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