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자락 물들이는 노란 꽃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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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자락 물들이는 노란 꽃물결
  • 정충화
  • 승인 2011.09.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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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화의 식물과 친구하기] 마타리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빛깔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노란색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색깔은 아니지만, 노란색을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빛깔로 꼽는 근거는 많다. 육지에 막 봄소식이 당도할 무렵인 3월부터 제주 일대를 뒤덮는 노란 유채꽃 물결은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이나 다름없다. 매화가 필 때쯤 꽃망울을 터뜨리는 산수유 꽃도 노란빛이다. 3~4월경 전남 구례군 산동면 일대 마을과 인근 골짜기 구릉을 뒤덮는 노란 꽃물결은 사뭇 몽환적이다.

이름이 아름다운 꽃다지도 노란 빛깔을 자랑하는 식물이다. 이른봄 논둑과 밭둑 주변에서 하얀 냉이꽃과 노란 꽃다지 꽃이 빚어내는 빛의 조화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이른 봄 전국 곳곳 야산에서 피는 생강나무 꽃의 노란빛도 환상적이다. 또 하나 봄꽃의 대명사이자 노란 꽃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개나리를 빼놓을 수 없다. 봄볕 아래 샛노란 빛깔이 아지랑이와 어우러진 모습을 보면 몸과 마음이 다 노릇노릇해지는 느낌이다.

봄을 여는 빛이 노란색이라면 가을에 적합한 빛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단풍이 떠올라 붉은색을 꼽는 사람이 많겠지만, 가을에도 노란색은 썩 잘 어울리는 빛깔이다. 가을 산이 붉게 물들 무렵 들판은 온통 황금빛 물결을 이룬다. 전북 김제의 일망무제로 펼쳐진 들녘이 노랗게 채색된 풍경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가을 산자락을 물들이는 산국과 감국의 노란 꽃물결도 장관이다. 청명한 가을날 새파란 하늘빛과 어우러진 노란 꽃빛은 극명한 대비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맘때 가을 산자락을 노랗게 채색하는 또 다른 식물이 있다. 가늘고 긴 줄기 끝에 작은 꽃무리를 얹고 있는 마타리가 그 주인공이다.


마타리는 전국 산야의 양지바른 곳에서 자생하는 숙근성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산지가 우리나라로 알려진 식물로 가느다란 줄기가 1m 내외로 자라며 윗부분에서 잔가지가 갈라진다. 줄기 하단에서 마주나기로 층층이 달리는 잎은 깃꼴 형태로 깊이 갈라져 있으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7월부터 9월 중순경까지 피며 가지와 줄기 끝에 산방상으로 달린다. 노란 꽃을 다닥다닥 매단 줄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가녀린 여인이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마타리와 개화시기나 생육환경이 같고 외형적으로도 아주 비슷하지만, 꽃빛만 흰색인 식물이 있다. 꽃의 형태와 잎, 줄기까지 생김이 흡사한 이 식물의 이름은 뚝갈이다. 뚝갈 역시 마타리과에 속하니 친척뻘쯤은 된다 할 수 있겠으나 엄연히 다른 개체이다. 뚝갈을 흰마타리로 잘못 부르는 사람이 있기에 바로잡아준 적도 두어 번 있다. 마타리의 노란 꽃과 뚝갈의 흰 꽃이 어깨동무하듯 어울려 피어 있는 모습은 이즈음 산에 오르내릴 때 흔히 보는 풍경 중 하나다.
 
비에 갇힌 채 여름을 난 뒤 한동안 늦더위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살갗에 닿는 바람이 갈수록 차갑게 느껴진다. 9월도 중순에 다가들고 있으니 이제 며칠 사이 마타리나 뚝갈의 꽃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산에 오를 때마다 나뭇잎과 풀들이 빛을 잃고 말라가는 것을 보는 일은 무척 쓸쓸하다. 관리를 잘못한 탓에 몸 이곳저곳을 들쑤시는 통증에 시달리며 가뜩이나 마음이 위축되어 있는데 생물학적 계절로도 가을에 접어든 내게 이 가을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고갯마루인 셈이다.

글/사진 : 정충화(시인, 생태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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