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과 인생의 공통점과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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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과 인생의 공통점과 차이점
  • 최원영
  • 승인 2023.07.31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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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15화

 

 

정치가로 살았던 벗이 있습니다. 그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술기운이 얼큰하게 돌자 친구는 말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시장에 사람 모여들 듯 가득했어. 마치 밀물처럼 말이야. 그런데 내가 이렇게 되고 나니까 사람들이 썰물처럼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이 보여.”

친구가 이 말을 할 때 저는 보았습니다. 그의 눈가가 이미 촉촉이 젖어있는 것을요. 그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도 그 친구였고, 지금 이 자리에서 슬퍼하고 허망해하는 사람도 똑같은 그 친구였습니다. 그가 그 높은 자리에 있었을 때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지금 모두가 그의 곁을 떠난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삶의 이치이니까요. 친구로서 제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가 어서 그 허망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찾아가길 기도해주는 것뿐이어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와 함께 매일 아침 5시경 가까운 산으로 새벽 산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걸음걸이나 그가 던지는 말에서 친구가 절망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치가가 되기 이전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런 말이 없이 그의 손을 꽉 쥐었습니다. 친구도 제 손을 꽉 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껄껄껄 하고 웃었습니다. 우리의 웃음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널리 널리 퍼졌습니다.

 

《물속의 물고기도 목이 마르다》(최운규)라는 책에서 저자는 세계챔피언을 지낸 권투선수 홍수환 씨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링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일련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는 인생이 링보다 더 무서운 곳이란 생각이 든다. 링에서는 두들겨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되면 말려주는 사람이 있지만, 인생에서는 맞고 떨어지면 모두가 아예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링에서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심판이 있고 또 코치가 수건을 던져 선수를 지켜줍니다. 그러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히 고독합니다.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에 따르는 책임 또한 혹독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잘 되면 시기하고, 내가 잘못되면 손가락질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러니 난감합니다. 삶이라는 게.

지나고 보면 꿈만 같습니다. 성공에 기뻐하며 환호했던 일이며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죽음까지 떠올리며 눈물지었던 일 모두가 돌이켜보면 꿈만 같습니다. 이게 삶입니다. 누구나 기뻐하고 환호할 수 있는 일만이 자신에게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실제의 삶은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습니다. 기쁜 일을 마주했다가도 슬픈 일을 맞이하게 되고, 슬픈 일을 당해 괴로워하다가도 어느 날에는 기쁜 일에 함박웃음을 짓곤 하는 게 인생일 테니까요.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이 우리네 삶이라고 인정하면 그때 한 가지 지혜가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로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이 슬픈 일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바로 그 지혜입니다. 이 믿음을 강하게 확신하면 할수록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더더욱 열심히 노력하게 될 겁니다. 이 노력의 끝에 이르면 우리는 분명히 기쁨이 있는 성숙함으로 성장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복싱경기장인 링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지만, 홍수환 씨의 말씀처럼 링 안에서의 삶보다는 우리네 인생이 더더욱 복잡하고 무서운 일들로 가득하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삶의 실체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날 멋진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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