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지 말고 사색하세요, 인천시립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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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하지 말고 사색하세요, 인천시립박물관에서
  • 이상구 객원기자
  • 승인 2023.07.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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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박물관 탐방]
(3) 인천시립박물관을 가다
인천시립박물관. 대한민국 최초의 공립박물관 1946년 인천 송학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1990년 옥련동으로 이전했다,
인천시립박물관. 대한민국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1946년 인천 송학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1990년 이곳 옥련동으로 이전했다.

 

대한민국 최초라는 꼬리표

인천시립박물관앞에는 으레 따라 오는 수식어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립시설'이란 말이다. 19464월에 중구 송학동에서 개관했다. 개화기 시절 인천조계지의 내로라하는 각국 외교관 등이 사교하고 정보도 교환하던 제물포구락부 건물을 개조해 박물관을 들였다. 19905월 옥련동 청량산 입구에 새 청사를 지어 이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게 유서가 깊고 의미도 남다른 시설이지만 평가를 해보라 하면 얼른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박물관의 질적 수준은 일단 보유한 유물로 가른다. 수도 그렇지만 일단 그것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가치가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인천시립박물관의 질적 수준은 다소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국보나 보물이 한 점도 없다. 시 지정 유형문화재는 8점인데, 그 중엔 중국(··명나라) 종() 3점과 러시아 바라야크 함의 깃발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외래 유물이 인천박물관의 대표 콘텐츠라니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그래도 인천시립박물관은 인천에 소재한 29개의 등록 박물관 중 명실상부한 맏형이다. 실제 그 산하에 송암미술관, 검단선사박물관, 한국이민사박물관, 인천도시역사관 등 4개 아우 박물관을 두었다. 대한민국과 인천의 현대 박물관 사()를 선구적으로 개척해 왔다. 2022년 기준으로 한 해 11만 명이 찾는 명소다. 절대 외면할 수 없다. 인천 박물관 대 탐방 3번째 방문지로 정한 이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길을 나섰다.

 

구월족과 문학족의 격전지 인천?

 

다각면원구. 강화도 창후리에서 발굴된 구석기 유물이다. 흔한 돌맹이에서 선조의 손길을 찾아낸 고고학자의 눈썰미가 경이롭다.
다각면원구. 강화도 창후리에서 발굴된 구석기 유물. 흔해 보이는 돌맹이에서 선조의 손길을 찾아낸 고고학자의 눈썰미가 경이롭다.

 

1층 전시장 입구엔 큼지막한 흉상이 있다. 박물관의 초대 관장인 석남 이경성 선생 상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와세다 대학에서 법률과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인천박물관 설립 업무를 지휘했고 관장으로 임명되어 1954년까지 약 8년 간 재임했다. 어수선한 해방정국에다 박물관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했던 시절, 사상 최초로 공립 박물관을 만들었으니 그 노고야 미루어 짐작이 간다. 게다가 유물 한 점 훼손 없이 6.25 한국전쟁까지 치렀다. 인천의 큰 은인이다.

1역사실은 선사에서 고려시대가 테마다. 전시실 초입에서 의문의 돌덩이 하나와 마주친다. 강화도 창후리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의 다각면원구. 완벽한 공 모양은 아니나 그에 근접하게 깎아 만든 무기 혹은 생활도구다. 고인돌이 많아 청동기 시대를 기원으로 알지만 요 주먹만 한 돌멩이는 강화의 역사가 그 보다 훨씬 깊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흔해 보이는 돌덩이에서 선조들의 손길을 찾아낸 어느 고고학자의 날카로운 눈썰미가 새삼 경탄스럽다.

지금의 구월, 수산동 일대에서는 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유물이 골고루 발견됐다. 바닷가를 제외한 인천 내륙에선 가장 유서 깊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미추홀구에 속하는 문학동, 수봉산 등에서는 청동기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대부분이 칼과 화살촉 등의 무기다.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구월족에서 갈라져 나가 새로운 세력을 형성한 문학족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격전을 벌이지는 않았을까 상상하게 만든다.

 

인천의 선사시대 유적지. 지금의 구월동 지역에선 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 유물이 겹쳐 발견된다. 지금의 미추홀구인 문학동 수봉산 등에선 청동기 유물리 다수 발견됐다.
인천의 선사시대 유적지. 지금의 구월동 지역에선 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 유물이 겹쳐 발견된다. 미추홀구인 문학동 수봉산 등에선 청동기 유물이 다수 발견됐다.

 

고려의 칠대어향

인천은 고려시대 문종부터 인종까지 일곱 임금의 외가 혹은 처가였다. 고려의 칠대어향(御鄕), 왕족의 고향이라 부르는 이유다. 일국의 왕후나 왕의 어머니인 국모는 아무나 될 수 없다. 집안은 물론 엄정한 자격조건을 두루 갖추어야 하며 무엇보다 재색을 겸비해야 한다. 그런 자리에 다수의 인천 여성들이 간택되었다는 것은 같은 지역의 후세로서 자부심을 가질만한 역사다. 그러나 그 이면의 역사적 사실을 알면 뒷맛까지 개운하지만은 않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지방호족들을 혼인정책으로 어르고 달랬다. 인주 이씨 집안도 그 중 하나였다. 고려 11대 왕 문종은 이자연의 세 딸을 왕비로 간택했다. 이후 다섯 왕의 어머니, 다섯 왕의 아내를 배출하며 가문은 막강한 권세를 누린다. 하지만 권력은 과유불급이다. 딸 셋을 왕비와 국모로 만든 이자겸은 스스로 왕이 되겠다며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이후 인주 이씨 집안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가 전시관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강화에서 제작되어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다는 팔만대장경 중 반야심경 판과 인쇄본도 있다. 물론 복제본이다. 몽고가 쳐들어 왔을 때 고려인들은 수도를 강화로 옮겨가며 항쟁을 벌였다. 당시 많은 유물을 강화에 남겼는데 특별히 이를 강도(江都)문화라 한다. 경서동에서 발굴된 도자기도 눈에 띈다. 이 곳 도자기를 조질청자라 부른다. 안내문에 따르면 고급청자에 비해 태토와 만듦새가 양호하지 못한 자기라고 한다. 왜 그런 것을 만들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진무영 환도. 조선후기 검으로 군데군데 이빨이 빠졌고 손잡이엔 혈흔이 선명히 남아 실제 군사들이 쓴 것으로 추정한다.
진무영 환도. 조선후기 검으로 군데군데 이빨이 빠졌고 손잡이엔 혈흔이 선명히 남아 실제 군사들이 쓴 것으로 추정한다.

 

역사 2실 입구엔 커다란 비석이 서 있고 호방한 글씨로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라 새겨져 있다. ‘바다 입구를 막고 지킬 것이니 다른 나라 배들은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다. 흥성대원군의 호국의지를 담아 강화 덕진진에 세웠던 비다. 그 뒤엔 칼 두 자루가 전시 되어있다. 날은 날카롭게 섰으나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고 손잡이에 혈흔까지 선명해 실제 전장에서 쓰던 군사용 환도가 분명해 뵌다. 검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그 앞에 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검색에서 사색의 시대로

3층엔 기증실이 있다. 시민들이 대가없이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들을 돌아가며 전시하고 있다. 불상, 서화, 글씨, 백자 등 종류 다양하고 수량도 꽤 많아 보인다. 그 중 길쭉한 배 모양의 청자가 눈에 들었다. 박물관 측은 조선시대 궁궐에서 쓰던 청동 배설용기와 비슷해 청자 요강일 것으로 본다. 불현듯 경서동의 조질청자가 겹쳐 떠올랐다. 가장 연대가 짧은 유물도 있다. 축구선수 유상철의 유니폼이다. 생각할수록 그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축구선수 유상철의 유니폼. 인천에서 생을 마감한 불세출의 축구선수가 입었던 유니폼. 가장 연대가 짧은 유물이다.
축구선수 유상철의 유니폼. 인천에서 생을 마감한 불세출의 축구선수가 입었던 유니폼. 가장 연대가 짧은 유물이다.

 

기획전시실에서는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 화평동이란 제목의 전시회(718~1015)가 열리고 있다. 산업화 시절의 화수 화평동을 추억한다. 그 동네에 살았던 노동자들의 일기를 발췌해 관련 물품과 함께 전시하는 형식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곧잘 힘들었던 과거를 추억한다. 때론 더 어렵고 혹독하게 과장하기도 한다. 가난과 고생이 자랑은 아닐진대 수시로 라때(나 때는)’를 곱씹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제’, ‘꼰대라는 비아냥까지 감수해가며 말이다.

박물관을 꼼꼼히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인천박물관은 야외에도 전시장을 두었다. 중국 종들부터 소래선 객차까지 다양하다. 놓치면 후회하니 깜빡 잊고 지나치지 마시길. 객차 옆에 옹기종기 선 문인석 5기의 표정들이 참 재미있다. ()를 수호하라고 세운 능묘석물이라는데, 관모를 쓰고 칼까지 뽑아든 매서운 차림이지만 모두 빙글빙글 웃고 있다. 보는 이마저 미소 짓게 만든다. 박물관 관람 중 가장 유쾌한 순간이었다.

 

문인석 5기. 묘를 수호하라고 세운 능묘석물로 관모에 칼까지 빼 든 모습이지만 정작 표정은 장난스레 웃고 있다. 보는 이마저 미소 짓게 만든다.
문인석 5기. 묘를 수호하라고 세운 능묘석물로 관모에 칼까지 빼 든 모습이지만 정작 표정은 장난스레 웃고 있다. 보는 이마저 미소 짓게 만든다.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올 6월 새로 취임했다. 그는인천박물관을 통해 손가락으로 하는 검색의 시대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사색의 시대를 열겠다라며 예산이나 학예사 부족 등 어려움이 많지만 임기 동안 인천시립막불관을 명실상부한 시민중심의 박물관으로 만들겠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그는 이곳 학예사 출신으로 그동안 대학에서 후진을 가르치다 관장으로 금의환향했다. 그의 포부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런 범상치 않은 이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인천시립박물관 관람안내

 

 

 

찾아오시는 길

주소 :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량로 160번길 26

버스 : 9, 111-2, 9200번 송도유원지 하차

인천지하철 : 1호선 동막역 1번 출구 8, 8A버스 이용

경인전철 : 1호선 주안역 하차 2번 출구 65-1 시내버스

수인선 : 송도역 하차 8, 16번 버스 이용

휴관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 다음 날, 11

관람료

무료

문의사항

032-440-6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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