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대학 등록금도 싸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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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대학 등록금도 싸지 않아"
  • 최종규
  • 승인 2011.09.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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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도서관 책읽기


ㄱ. 대학 등록금 책읽기

 대학 등록금이 워낙 비싼 나머지, 집에서 대는 돈으로는 아무래도 벅차니까 따로 일자리를 찾아서 푼돈이라도 버는 대학생이 많다고들 한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뿐 아니라 지난날에도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애쓴 대학생은 많았다. 예나 이제나 비싸다는 대학 등록금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대학생도 많다. 누군가한테는 벅찬 짐일 테지만, 누군가한테는 아무것 아닌 돈이다. 그런데 대학 등록금만 비쌀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넣거나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나 학습지를 받는 돈은 안 비쌀까. 아이들은 대학교 문턱에 들어서기 앞서인 예닐곱 살이든 초등학생 때이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이든, 벌써부터 해마다 천만 원씩 배움값을 내지 않느냐 싶다. 학원과 학습지에 들이는 돈은 진작부터 대단히 크다고 느낀다.

 아이가 태어나서 널리 사랑받거나 두루 믿음받는다고는 느끼지 못한다.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보육시설에 맡겨지면서 영어를 배우고 뭐를 배우며 또 뭔가를 배운다. 고운 목숨을 선물받았다고 느낄 겨를이 없다.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나이에 걸맞게 삶을 배우며 죽음을 깨달아 목숨을 아끼는 매무새를 착하고 참다이 건사해야 할 테지만,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교 앎조각에 목을 매단다. 초등학교부터 성적과 등수와 영어와 교과목과 학습지와 독후감과 글짓기로 옭아매는데, 요사이에는 여기에 한자까지 끼워넣을 판이다.

 옳게 따진다면, 대학 등록금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천만 원이다. 지난날에 백만 원 돈이었다 한다면, 지난날 백만 원은 오늘날 천만 원하고 같은 값어치이다. 조금도 값싸지 않던 지난날 등록금이고, 조금도 더 비싸지 않은 오늘날 등록금이다. 지난날에는 이 비싼 배움값을 대면서까지 구태여 대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내 삶길을 열거나 내 일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이제는 보육시설에 첫발을 내디딘 때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찾거나 죽음을 깨닫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예닐곱 살이 아닌 대여섯 살이나 서너 살부터 머리에 앎조각만 자꾸자꾸 집어넣는다. 스스로 삶을 일구지 못한다. 착한 삶도 참다운 말도 고운 몸가짐도 익히지 못한다. 그저 대학교에 가야 뭔가를 이루거나 거머쥐거나 누릴 수 있는 듯 여긴다.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고 느끼니 ‘반값 등록금’을 이루자고 하지만, 반값 등록금이래서 값싸지 않다. 오백만 원이면 괜찮은가? 아니다. 천만 원이 힘든 사람은 오백만 원도 힘들 뿐 아니라 백만 원도 빠듯하다. 대학교에서 배울 만한 이야기가 많다면 천만 원이 아닌 이천만 원이나 삼천만 원을 내고도 다녀야 맞다. 대학교를 다니며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꿈과 삶과 빛과 슬기를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배움값을 놓고 따질 일이 없다.

 대학생이 되고자 여러 일을 해서 배움값을 버는 일은 나쁘지 않다. 다만, 대학생이 되지 않고 씩씩한 여느 일꾼이 되어 일을 해서 일삯을 벌어들인 다음, 이 일삯으로 젊은 넋을 북돋우는 곳에 기쁘며 예쁘게 쓸 수 있으면 훨씬 빛나면서 보람차리라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수험서는 입시교재일 뿐 책이 아니요, 대학교재 또한 그저 교재이지 책이 아니다. 책은 내 삶이다. 책은 내 땀이다. 책은 내 눈물과 웃음이다.


ㄴ. 내 도서관 책읽기

 책을 좋아하면서 살아오던 서른네 살에 개인도서관을 차렸다. 섣부른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으나, 좋아하는 일에는 이르거나 늦거나 할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 좋아하니까 훨씬 일찍 글쓰기를 할 수 있고, 좋아하기에 늦깎이에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좋아하니까 너덧 살 나이에 텃밭을 일굴 수 있으며, 좋아하는 만큼 일흔이나 여든에 시골에 땅을 얻거나 빌어 논밭을 보살필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책이 많다고 느낀 곳은 도서관이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던 2학년 때에 헌책방을 처음 찾아가고 나서는 도서관보다 헌책방이 책이 훨씬 넓고 깊다고 느꼈다. 나라밖 도서관은 모른다. 나라밖 헌책방도 모른다. 나라안 도서관과 헌책방을 다녔을 때에, 나라안 도서관에서는 너무 너덜거리는 흔한 소설책이 지나치게 넓은 자리를 차지해서 못마땅했다. 따지고 보면, 헌책방에서도 ‘팔리는 책’을 더 많이 갖출 수밖에 없으니까, 참고서나 가벼운 소설붙이가 꽤 넓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도서관에 없거나 도서관에 들이지 않는 수많은 책이 들고 나는 헌책방이다. 이 나라 도서관은 ‘도서관 품위’와 ‘도서관 얼굴’과 ‘도서관 크기’와 ‘도서관 책 숫자’ 같은 데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긴다. 정작 ‘새로운 책을 꾸준히 사들여 누구라도 손으로 만지며 읽고 정갈히 갈무리하도록 이끄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한다.

 헌책방에서도 책을 함부로 다루는 책손이 꽤 많다. 헌책방이니까 헌책을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는 줄 아는 교수님이나 지식인이 뜻밖에 참 많다. 그렇지만, 헌책방 헌책은 헌책방 일꾼이 ‘팔릴 만하다 싶은 책’을 ‘헌책방 일꾼 돈을 들여 하나씩 고르고 사서 모아 갖춘 책’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이 나라 도서관이 이 나라 헌책방을 따라갈 수 없겠다고 깨달았다.

 나는 서른넷 나이에 내 이름을 걸고 개인도서관을 열었다. 누구보다 나부터 내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날까지 기쁘게 누리며 즐거이 맞아들일 책으로 가득한 사랑스러운 책터를 일구고 싶기 때문이다. 더 늦기 앞서, 아니 늦는다 생각하기 앞서, 내가 조금이라도 몸에 기운이 있고, 내 주머니에 조금밖에 안 되더라도 책을 사는 데에 들일 돈이 얼마쯤 있을 때에, 씩씩하고 당차게 도서관을 마련해서 내 고맙고 좋은 책벗하고 책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이 도서관은 2007년 4월 15일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처음 열었다. 헌책방거리 한켠에 열었대서 ‘도서관’ 아닌 ‘헌책방’이라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2010년 9월 첫머리에 인천에서 충북 충주 멧골자락으로 도서관을 옮겼다. 이제 2011년에 멧골자락에서 다른 시골자락을 찾아본다. 몸이 아픈 옆지기하고 한창 자랄 첫째를 생각하며 멧골자락으로 들어왔는데, 이 멧골자락으로 사람들이 ‘도서관 책마실’을 나오기 몹시 어려울 뿐더러, 멧골자락답지 않게 자동차가 너무 많이 드나들어 집식구한테 썩 좋지 못한 터전인 줄 나중에서야 알아챘다. 우리 도서관과 우리 집식구는 새로운 자리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새 터와 새 자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저 믿는다. 나 스스로 내가 서른일곱 해 동안 그러모아 알뜰히 아낀 이 책들을 사랑스레 품으면서 살가운 책벗하고 책삶을 나눌 만한 아름다운 시골자락이 한국땅에 아예 없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걱정거리라면, 우리 식구한테는 돈이 거의 없다. 다달이 먹고사는 데에 쓸 돈으로도 허덕이며 지낸다. 그런데 이렇게 지내면서도 책은 참 부지런히 사들인다. 어쩌면, 우리 식구는 자가용을 안 몰고 수많은 기계나 전자제품을 셈틀과 다른 한두 가지를 빼고는 하나도 안 쓰니까 이럭저럭 버티듯 이냥저냥 살림을 꾸린다 할는지 모른다. 살림돈이 빠듯할 때에 몹시 고맙게 푼푼이 보태는 벗바리가 있기도 하다. 벗바리는 어쩌면 살림돈이 바닥을 치며 해롱거릴 때에 용케 알아채어 뒷배를 해 주는지 놀랍기만 하다.

 갈 데는 마땅히 없고, 오라고 부르는 데는 아직 없지만, 방바닥에 큼지막한 길그림 종이를 척 펼친다. 여기도 참 좋은 시골이고 …… 둘레에 좋은 멧자락이 둘러쌌고 …… 금강이 흐르고 …… 가까이에 소양호가 있고 …… 외져서 호젓할 만한 시골이고 …… 뭐, 이런 생각 저런 말을 혼자 주절주절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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