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무더위 속 노동자, 그리고 '책임'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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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무더위 속 노동자, 그리고 '책임'에 관한 단상
  • 김은복
  • 승인 2023.08.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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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김은복 / 노무사(민주노총인천본부노동법률상담소)
사진 = 연합뉴스
쿠팡 노동자들이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매 시간 10분에서 15분 이상의 휴게시간을 제공하라는 노동부의 가이드를 지킬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사진 = 연합뉴스)

 

2023년 8월 2일 수요일 오전 10시, 이 글을 시작한다. 아침이지만 벌써 섭씨 31도, 체감온도 34도이다. 방금 전 행정안전부로부터 폭염경보 문자를 받았다. 어제도 그제도 받았던 문자이다. 실로 폭염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 때 즈음이면 노동자들의 폭염 속 노동과정이 자주 보도된다. 특수고용직인 마트 배송 노동자는 시간이 돈이라며 업무공간인 차량에 에어컨이 고장 났지만 이를 고칠 시간도 없다고 한다(23.8.1. KBS).

환경미화, 택배, 건설 등 옥외에서 폭염에 노출된 채로 일 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공사 현장에서 직접 측정한 온도가 섭씨 41도를 넘는데도 노동자는 시간 안에 일을 마치려면 쉴 수 없다는 인터뷰도 전해졌다(23.8.1. 한국일보).

그리고 쿠팡 노동자들이 연차휴가 등을 사용해서 파업을 벌인다는 소식도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쿠팡의 동탄, 인천 등 각지 6곳 물류센터를 조사한 결과 대구1, 2, 6센터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았고, 고양센터에는 열을 발산하는 장치가 있는 포장라인에만 에어컨을 설치했으며, 인천4센터에서는 전산진열(IB) 공정에 에어컨을 두었으나 전력문제로 거의 가동하지 않았다고 한다(23.7.21. 한국일보).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고용노동부 가이드(체감온도를 기준으로 매 시간 10분에서 15분 이상의 휴게시간을 제공하라는 가이드)라도 지키라는 요구를 내 걸어 파업을 단행한 것이다. 이에 노조의 파업 결과 쿠팡이 투입한 일용직 노동자가 2백 여명이라는 주장(즉 파업에 동참한 인원이 2백 여명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파업 참가인원이 고작 3명에 불과해서 경영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고 비아냥거리는 보도 또한 발견된다. 이러한 보도에는 쿠팡이 법정 휴게시간을 준수하며 에어컨을 설치한 휴게시설을 마련했고 냉방시설을 갖춘 상태라면서 노조 주장이 억측이라는 쿠팡 측 주장을 비호하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2023년 무더위 속, 순살아파트 관련 보도도 많다. 기둥에 직접 슬라브를 얹는 무량판 공법 시공은 비교적 빠르게 지을 수 있고 공간 활용에도 유리하다고 한다. 하지만 기둥과 슬라브 연결부위에 철근이 제대로 들어가 (보강되어) 있어야, 삼풍백화점이 그랬듯, 순식간에 시루떡처럼 무너져버리는 사고를 예방한다고 한다.

그런데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무너져 내렸던 것처럼, 설계와 달리 철근이 부족한 채로 지어지는 아파트가, 그것도 LH 발주 아파트에서 다수 발견됐다는 것이다. 코로나와 건축자재값 폭등 원인설, LH 출신 전관들이 결부된 이권 카르텔 원인설, 즉 감리자의 책임이 거론된다. 또 다른 편에선 설계업자와 시공사(종합건설사) 간의 책임 공방도 있다. 설계 오류이지 시공사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인 것이다.

이 즈음해서 새롭게 되새김되는 단어가 있다. “책임” 맞다 vs 틀리다, 사실이다 vs 아니다, 이런 공방이 가려버린 그것, 책임! 말이다. 그러한 공방은 책임질 사람의 범위와 내용을 실로 좁힌다. 최소화시키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시는 폭염에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없도록, 다시는 아파트 붕괴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렇게 세상이 변하도록 진짜 책임질 자에게 일침을 가하고 시스템을 개선해 가는 것이 책임 아니겠는가! 책임의 방향은 “변화”이어야 한다.

경비노동자로서 급성심근경색을 진단받고 급하게 시술을 받았다던 상담 사례가 있다. 의사는 5~6층 계단을 순찰하는 업무를 하므로 살고 싶다면 당장 일을 그만 두라 한 모양이다. 이 상황에서 사직 압박을 받던 그에게 필자는 산재신청부터 하도록 권했고 약 3달 뒤 산재는 인정됐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라던 의사는 산재신청서에 첨부된 소견에 “취업 치료 가능”으로 체크해서 서류를 작성했다. 이로 인해 그 경비노동자는 요양 기간 중 받을 수 있는 휴업급여(받던 임금의 70% 수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 의사는 노동 말고는 생계수단이 없던 고령의 경비노동자가 겪을 생계절벽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책임은 관심과 경청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어제는 필자가 있는 상담소로 내방 온 중국동포 출신 여성으로부터 세 시간 가까이 약 8년 세월의 억울함을 들었다. 장애인을 재택 간병하던 중 아무런 예고 없이 해당 장애인이 센터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센터 관계자로부터 저지당하던 중 손가락이 꺾이고 팔이 짓눌리는 상해를 입었다. 이와 같이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는 억울하여 고용노동청에 초과임금 등을 청구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센터 측은 본인이 기록한 것과 다른 내용의 간병기록을 제출했다. 심지어 본인이 하지 않은 서명도 포함됐다. 체불임금 진정사건은 무혐의 종결됐다. 억울하여 상해와 문서위조를 내용으로 고소를 진행했다. 변호사를 선임했다. 통상의 변호사 수임료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었는데, 변호사는 그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상해 가해자와 문서위조 피의자가 다른 사람이었지만 모두 상해 가해자만 피고소인으로 기재했다. 고소는 무혐의 처리됐고 재판에서는 그가 전해준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앞서 제기하였다가 인정받지 못한 체불임금 건은 소멸시효 만료 직전 2020년 2월에 별도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2년 8개월 뒤(2022년 10월)에 변론기일 2회 불출석으로 취하 간주되어 종결됐다. 그 사실을 2023년 7월에야 비로소 알았다. 직접 법원에 찾아가서야 알게 됐다. 주소변경을 하지 않았고 다른 법원문서는 집으로 송달받았다. 하지만 2022년 10월에 잡혔던 2회의 변론기일 통지는 받지 못했다며 억울해 한다.

그는 본인을 해고하고 임금체불 한 센터 대표가 검찰 유력 인사의 친인척 관계에 있다며, 노동청, 경찰, 변호사, 법원이 모두 짜고 외국인 출신인 본인을 무시하고 짓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가져 온 그 많은 서류들을 꼼꼼히 살펴볼 순 없었다. 그러기에 그의 억울한 사정이 사실인지 오해인지 추정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작성한 서류, 그가 받아놓은 공문서, 보관하던 수임계약서 등에는 당사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가 예상한 것보다 턱없이 적은 임금을 주려던 센터(이의제기하지 않는다는 문서에 서명을 강요했고 이를 거부해 결국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일방적인 간병 종료, 누가 봐도 다른 서명, 주먹을 쥘 수조차 없는 손가락과 이를 뒷받침할 사진, 초진기록이 있다.

이 각 시점에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일방적 행태와 무책임에 화가 치밀었다. 2번의 변론기일 불출석 처리를 알리면서도 변론기일 통지가 그에게 송달되었는지 확인시켜주지 않은(또는 송달 확인방법 조차 알려주지 않은) 법원의 태도에 치가 떨렸다. 그런 대한민국이 부끄러웠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거라며 돌려보내고 나 스스로도 부끄러워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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