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도시'는 외친다고 이뤄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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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도시'는 외친다고 이뤄지지 않아
  • 최종규
  • 승인 2011.09.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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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정말 책을 읽는 소리가 들리려면…


ㄱ. 책을 읽는 도시

 경상남도 김해는 퍽 예전부터 ‘책읽는 도시’라는 이름을 내세웁니다. 경기도 파주에는 출판마을이 들어서면서 책도시로 거듭나려 애쓴다고 합니다. 이 나라 크고작은 도시에서 저마다 ‘책읽는 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퍽 힘씁니다.

 ‘책읽는 도시’는 시장이나 군수가 “자, 이제부터 우리 시(군)는 책을 읽는 시(군)입니다!” 하고 외친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책을 읽고 두루 책을 사랑한다면, 시장이나 군수가 나서기 앞서 따사롭고 너그러운 책도시나 책마을로 이름을 날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여러 지자체에서 ‘책읽는 도시’를 내세우는 까닭은, 그만큼 책을 안 읽기 때문이요, 책을 읽을 도서관이 없기 때문이며, 책을 살 책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자체마다 ‘책읽는 도시’가 되고 싶으면 두 가지를 먼저 해야 합니다. 첫째, 건물이 우람한 도서관이 아니라, 작은 동이나 면이나 리에 조그맣게 책쉼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아직 살아숨쉬는 새책방과 헌책방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책방 살림 잇도록 돕는 한편, 새로운 새책방과 헌책방이 문을 열도록 여러모로 도와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 책을 읽자고 외친다 한들, 책읽기 모임을 열어 독서토론을 한들, ‘책읽는 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이 재미없거나 책을 들출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재미있게 느낄 만한 삶터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할 만큼 삶이 너그러워야 합니다. 메마른 정치와 서글픈 경제와 비틀린 제도권교육을 그대로 두면서 ‘책읽는 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들 모두 대학입시에 목매달도록 하면서 책을 읽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아슬아슬하게 목숨줄을 잇거나 정리해고로 몸살을 앓는다면 책을 읽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긴 채 돈을 벌러 다니는 어버이가 저녁나절 고단함에 절디전 몸으로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못 읽히는 어버이는 당신 삶을 살찌울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찬찬히 살피거나 읽지 못합니다.

 책만 읽자 해서, 도서관을 큰돈 들여 짓는다 해서, 무슨무슨 걸개천을 길거리에 내걸거나, 이름난 몇몇 글쟁이를 불러서 강연모임을 마련한다 해서, 어느 도시인들 ‘책읽는 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무엇보다 살아가기 좋은 터전입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사람들이 자가용을 버리고 자전거로 시원시원 조용히 오가는 삶터입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아시안게임이니 올림픽이니 하면서 수천 억을 들여 새 경기장 짓는 데에 돈을 바치는 데가 아니라, 새 경기장 지을 자리에 숲을 지키고 돈을 아끼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넋으로 책 하나 가슴에 고이 품자고 하는 데입니다.

 경제성장을 바라면 ‘책읽는 도시’가 안 됩니다. 일류대학을 꿈꾸면 책을 읽지 못합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만 책을 읽고, 책을 읽는 사람이 모여 책마을이 태어납니다.

ㄴ. 책을 읽는 소리

 두 아이는 집에서 옆지기가 돌보기로 하고, 아버지 혼자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섭니다. 옆지기는 둘째를 낳고서 두 달 넘게 아무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나빴습니다. 둘째가 백 날째가 가까운 얼마 앞서부터 옆지기가 집일을 차츰차츰 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멧골자락 조용한 집에서 싱그러운 풀과 나무를 맞아들이면서 맑은 바람과 고운 소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일까요. 빨래기계를 안 쓰고 자가용을 몰지 않으며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우리 집에서는 모든 일을 손으로 합니다. 손으로 비질을 하고 손으로 걸레를 빨아 손으로 방을 훔칩니다. 손으로 둘째 기저귀를 빨고 손으로 기저귀를 널어 손으로 기저귀를 갭니다.

 아버지는 시골집에서 자전거를 몰며 이웃 면내로 갑니다. 이십 분 남짓 달립니다. 시골버스는 한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데,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면내로 가자면 자전거를 몰거나 한참 시골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불러야 합니다. 혼자 바깥마실을 하는 날이라 자전거를 몹니다. 자전거는 시외버스 짐칸에 싣습니다. 오늘은 시외버스 기사님이 차에서 내려 “자전거 안 다쳐요?” 하고 물으며 걱정해 줍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시외버스 기사님 가운데 1/5쯤은 자전거를 짐칸에 싣는 일을 못마땅해 합니다. 3/5은 무덤덤하고 1/5은 이렇게 따사로이 말마디를 건넵니다. “네, 튼튼하지 않으면 이 자전거를 탈 수 없잖아요.” 빙그레 웃습니다.

 시외버스에 올라탑니다. 빈자리에 앉습니다. 아버지가 찾아간 면내에서 탄 시외버스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는데, 다음 면내에서는 푸름이들이 아주 많이 올라탑니다. 널널하게 앉아 책을 읽다가 가방을 모두 무릎에 올려놓고 몸을 웅크립니다. 푸름이들 얼굴이 앳됩니다. 아이들 몇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세 잠이 듭니다. 아이들은 다 함께 서울로 놀러 가는 듯합니다. 내 옆에 앉은 푸름이는 한손에 천 원짜리 여러 장을 꼬깃꼬깃 접어서 꼭 쥔 채 잡니다.

 시골집에서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벌레가 풀숲에서 풀잎을 건드리는 소리하고 벌레가 스르스르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끔찍하거나 모질다 할 만한 막비가 그치지 않기에 빗소리를 참말 지겹다 싶도록 듣습니다. 그렇지만 빗소리는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사대강사업을 한대서 망가지는 자연 터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 여느 사람들 스스로 자가용을 장만하여 자주자주 타면서 온갖 전자제품을 쓰고 쓰레기를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버리니까 자연 터전이 무너지면서 이 여름에 막비가 퍼붓습니다. 막비가 퍼붓는 소리를 들으며 햇살이 언제쯤 비칠는지 꿈을 꿉니다.

 면내로 나와 시외버스를 탈 때부터 오로지 자동차 소리입니다. 서울에 닿은 뒤에도 자동차 소리입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여관에서 묵을 때에는 냉장고와 정수기가 전기를 먹으며 끙끙대는 소리에다가 술이 얹힌 사람들 떠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루를 지새운 이듬날 새벽에 비로소 참새 몇 우짖으며 날아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 이 나라 사람들 1/4이 서울에 몰려서 살아간다는데 서울사람은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벌레소리도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못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소다 오사무라는 일본사람이 쓴 청소년소설 《우리들의 7일 전쟁》(양철북,2011)을 여관 침대에 누워서 읽습니다. “모두 하늘 좀 봐. 별이 참 예쁘다(49쪽).” 아이들은 중학교부터 이루어지는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떨쳐나옵니다. 버려진 건물 옥상에서 한뎃잠을 자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서울에서는 밤하늘 별을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보드라운 살내음 소리가 죽고, 책을 읽는 소리도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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