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각 위로 날아 오른 늦반딧불이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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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각 위로 날아 오른 늦반딧불이의 향연
  • 박정운
  • 승인 2023.10.06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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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물범지킴이의 생태일기]
(20) 백령도 늦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늦반딧불이를 보겠다고 봄부터 별렀다. 그러나 늦반딧불이가 많이 나타나는 시기를 출장과 다른 일정들로 보내면서 놓쳤다. 찬바람 불기 전에 몇 마리의 늦반딧불이라도 보겠다고 지난 며칠 동안 저녁마다 심청각에 올라갔다. 서해 바다를 붉게 물들인 노을 빛이 사그라들고 NLL 근처에 자리잡은 중국어선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 저녁 6시 47분 경, 모기 몇 마리가 달라붙는다. 늦반딧불이가 나타났던 심청각 성곽 아래의 깊은 숲을 내려다 보았다. 숲은 점점 어두워지고 간간히 솔부엉이 소리는 들리는데 늦반딧불이의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모기를 쫓느라 팔을 몇 차례 휘졌는 사이 30여 분의 시간이 흘렀다. 별도 보이고 풀벌레 소리는 정겨웠지만 캄캄한 심청각에 혼자 있으려니 살짝 무섭기도 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깊은 숲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날아 올랐다. 저녁 7시 40분, 늦반딧불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또 한 마리 그리고 또 다른 한 마리까지 세 마리의 늦반딧불이가 날았다. 다음 날 저녁, 그 다음 날 저녁에도 세 마리의 늦반딧불이를 만났다. 숫자가 더 늘어나지는 않았다. 가을비가 내리고 저녁 기온이 내려갔다.

백령도에서 늦반딧불이를 처음 관찰한 것은 지난 해 추석날 밤이었다. 심청각으로 추석 보름달을 보러 올라왔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보름달이 떠오르기 30여분 전, 심청각의 성곽 아래 숲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수두룩 날아 올랐다. 밤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펼쳐진 뜻밖의 풍경에 필자는 물론, 추석 보름달 맞이를 나왔던 주민들, 특히 반딧불이를 처음 본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던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백령도에 올 때부터 어느 곳을 가면 반딧불이를 관찰할 수 있는지 몇몇 주민들에게 물어봤지만 뚜렷한 장소를 얻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심청각에서 늦반딧불이를 만난 것이다.

 

심청각 성곽 위로 날아오른 늦반딧불이(사진: 이상규, 2022년)
심청각 성곽 위로 날아오른 늦반딧불이(사진: 이상규, 2022년)

 

우리나라에는 크게 3종류의 반딧불이가 나타나는데, 애반딧불이(Luciola lateralis), 운문산반딧불이(Luciola unmunsana), 늦반딧불이(Pyrocoelia rufa) 등 3종류가 있다. 이 3종류의 반딧불이 중 늦반딧불이가 가장 큰 종이다. 애반딧불이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에 나타나고 저녁 9시 이후부터 4시간 정도 활동을 하며, 약 1초 간격으로 흰색에 가까운 빛을 깜박깜박 내며 날아다닌다. 반면, 늦반딧불이는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 사이에 해가 지고 난 저녁 7시 30분 이후부터 약 1시간 정도만 짧게 나타난다. 1초 간격으로 빛을 깜박이는 애반딧불이와 달리 늦반딧불이는 노란색 또는 초록색 불빛을 계속 내며 날아다닌다.

반딧불이가 내는 빛은 반딧불이의 배부위에 있는 발광세포에 의해 발생한다. 이 현상은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이 화학적 반응을 통해 화학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전환되는 생물발광 현상이다. 생물의 생화학 시스템에 의해 빛이 나타나는 생물발광은 빛 에너지로의 변환율이 무려 99%나 돼서 열을 거의 내지 않는 차가운 빛이라고 한다. 심해에 사는 생물 중에 약 76% 정도가 생체발광을 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해파리를 비롯해 몇몇 플랑크톤 등도 이러한 빛을 낸다. 육상생물 중에는 반딧불이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늦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는 계곡
늦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는 계곡
늦반딧불이 유충
늦반딧불이 유충

 

심청각의 성곽 아래 깊은 숲에서 날아오른 늦반딧불이는 습도가 충분한 장소를 좋아한다고 한다. 칡, 환삼덩굴, 갈대 등 잡목림이 우거지고 그늘진 풀 숲과 산기슭의 깨끗한 개울가 또는 논 등 이런 지역은 늦반딧불이의 주요 먹이인 달팽이류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보통 반딧불이의 유충은 성충이 되기까지 물 속에서 지내며 다슬기나 우렁이 등을 먹는데, 늦반딧불이의 유충은 습기가 많은 계곡 주변의 산기슭이나 강 주변의 제방 등 땅에서 생활하며 달팽이를 주로 먹는다고 한다. 특히 늦반딧불이의 경우 유충 시절의 서식 환경이나 먹이 조건이 좋아 그 해에 성충으로 나타나는 1년형과 월동을 하고 다음 해에 성충으로 나타나는 2년형이 있다고 한다. 성충(어른벌레)이 되어서는 거의 먹지 않거나 물 한 방울 먹는 게 전부라 하니 반딧불이들은 유충(애벌레) 시절의 먹이 환경과 영양상태가 중요한 것 같다.

심청각에서 날아다니는 늦반딧불이 떼를 만난 2022년의 추석은 9월 10일이었다. 그리고 늦반딧불이 세 마리를 관찰한 올해는 9월 17일 ~ 20일 사이였다. 날아다니는 늦반딧불이는 모두 수컷이었다. 늦반딧불이의 암컷은 날개가 퇴화되어 날아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날지 못하는 늦반딧불이 암컷은 위험을 무릅쓰고 약한 불빛을 보내 수컷이 찾아오도록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늦반딧불이의 불빛을 볼 수 있는 기간, 즉 성충의 수명이 15일 정도라고 하니 백령도에서 늦반딧불이가 가장 많이 성충이 되는 시기를 8월 말과 9월 초 사이로 조심스레 추정을 해 본다. 물론, 매해의 기후상태와 서식지의 환경변화의 영향이 크겠지만 말이다.

70년대 중후반과 80년대 초반을 농촌에서 어린 시기를 보낸 필자는 여름 밤이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수백마리의 반딧불이떼를 쫓아다니며 놀았다. 그러나 요즘은 웬만한 농촌에서도 보기 어려운 귀한 곤충이 되었다. 제초제를 많이 사용하면서 하천의 오염과 개발 등으로 반딧불이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유충의 먹이가 되는 우렁이, 다슬기 등이 사라졌다. 이제 수백수천마리의 반딧불이떼를 보려면 서식지를 잘 보전하고 관리하고 있는 전라북도 무주군 남대천,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일대나, 강원도 인제군 아침가리계곡, GOP 등과 같이 환경이 아주 깨끗한 곳에나 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늦반딧불이 서식지 주변에 들어서는 해안도로
늦반딧불이 서식지 주변에 들어서는 해안도로

 

앞으로 백령도의 심청각에서 늦반딧불이를 계속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심청각 성곽 아래의 깊은 숲은 심청각의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고 덤불이 무성한 계곡 같은 이다. 다양한 식물, 이끼, 곰팡이, 버섯 등을 먹고 사는 달팽이를 주 먹이로 하는 늦반딧불이가 살고 있던 이 숲 아래로 해안도로가 건설되고 있다. 여기에 늦반딧불이가 서식했는지 알려지기도 전에 서식지 환경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산과 바다를 이어주던 계곡은 건조해지고 해안도로를 따라 들어설 가로등의 불빛은 늦반딧불이 등과 같은 밤 곤충들, 그 주변에 서식하는 매와 솔부엉이 등의 서식환경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추석날 밤 심청각 성곽 위로 날아 올라 별이 되었던 늦반딧불이의 향연을 잊을 수가 없다. 올해는 간발의 차이로 늦반딧불이가 나타나는 시기를 놓쳐 많이 아쉽다. 해안도로가 완공되는 내년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무 늦지 않게 늦반딧불이의 안부를 물으려 심청각에 올라가야겠다. 이렇게라도 심청각 성곽 아래의 깊은 숲에 살았던 늦반딧불이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싶다.

 

*출처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나무위키

-국립중앙과학원_자연사도감6 딱정벌레

-무주반딧불축제 사이트 https://www.firefl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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