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강하진 화백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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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강하진 화백을 추모하며
  • 이흥우
  • 승인 2023.1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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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이흥우 / 해반문화 명예이사장

강하진 화백께서 오늘 돌아가셨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보를 접했다. 바로 얼마 전인 9월, 선광미술관이 마련한 강하진 초대전에서 선생님을 뵈었었는데, 또 마지막 전시회가 되신 제14회 그룹전인 安展에 당신의 작품을 출품하시곤 댁에서 당신이 아끼던 후배들과 함께 담소하고 식사도 하셨다는데···.

선생님은 오랫동안 후배 동료들 정수모, 김진안, 장명규, 이복행, 김혜선, 김형기, 김보섭, 이혜련, 원도희, 김영애 선생님 등 안전 멤버들과 함께 그룹전을 이끌어 오셨고, 젊어서는 이강소 화백 등과 중앙 실험 미술의 선두주자이기도 하셨다. 전위적인 미술에 앞장서면서도 혹시 이게 가식은 아닌가 하며 자신에게 되묻기도 했지만, 자신으로선 이럴 수밖에 없었다고 지난번 초대전 때도 말씀하셨다.

인천에서 오랫동안 교편도 잡으셨지만, 대구 사나이셨다. 대구에서 인연이 닿은 인천으로 오셔서, 항만에 폐기된 어망 천을 걷어 자신의 그림 세계를 자연율로 표현하셨다. 30여 년 전 처음 아내와 함께 해반갤러리를 운영하던 내가 철없이 패기만 풋풋하던 때, 작은 갤러리 건물 외벽에 네모진 알루미늄 프레임을 만들어서 선생님의 어망천 걸개그림을 화폭으로 사용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와 그때 걸렸던 그림은 지금 없지만, 한번 사용했던 프레임은 아직도 건물 벽에 남아있다. 빛이 안 들어와 건물 안이 컴컴했어도 그때 덩달아 신이 났었다. 선생님의 자연율은 아마 인간의 인위적인 그림 작업조차 자연의 품에서 보고자 했던 소망이 담긴 표현으로 여겨진다.

선생님은 천에 물감을 휘둘러 내리면서도 그림이 뭔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사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아이처럼 물으시다간, 또 잊고 다시 또 묻는, 그런 작가셨다. 장난감 블록을 만들었다가 부수고 다시 만들 듯. 꼭 해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것도 아니셨을 것이다. 그 물음은 의문사이면서, 감탄사가 같이 있었다. 점을 찍고 또 찍어서, 그래서 찍어서 결국 지우게 되는 것은 숱하게 찍는 감탄사이며 느낌표였다. 자신과 세상과 삶을 마주해서 바라보는 생경한 느낌이며, 그리는 행위며, 질문이셨다. 그림이 무엇인지 물어보면서도, 주어진 대상과 삶 자체에 감탄하며, 스스로 그리며 사는 행위셨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아, 나는 관광지를 보러 여행하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여행하려는구나” 하며 돌아와 보니, 선생님은 더 멀리 여행을 떠나셨다. 내가 좋아하는 분이셨는데, 내겐 자산처럼 든든한 분이셨는데, 같이 어디라도 갈걸, 아쉬움과 그리움이 많이 남는다.

웃으시는 주름 잡힌 얼굴이 떠오른다. 행복하게 가세요. 가서 장난처럼 또 점을 찍고 다시 지우고, 또 찍고 지우고, 또 그러실 거지요? 그럼 온갖 점이 한낮 꿈처럼, 한 점으로 돌아가, 아득한 곳에서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그럼 안녕히···.  2023.11.16

 

고 강하진 화백이 지난 9월부터 10월 13일까지 선광미술관에서 연 마지막 개인전 ‘자연율의 세계(The World of Natural Order)’ 표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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