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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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기
  • 최종규
  • 승인 2011.09.27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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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PERU》

-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PERU》(STEIDL,2008)

 페루에는 페루사람이 살아갑니다. 페루사람은 페루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한국에는 한국사람이 살아갑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페루사람보다 한국사람이 낫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보다 페루사람이 나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널따란 아파트에서 자주 씻을 수 있으면 더 낫다 싶은 삶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 두 다리로 오래도록 힘겹게 걸어야 하지 않다면, 까맣고 커다란 자가용 짐칸에 짐을 싣고 다닐 수 있으면, 아니 까맣고 커다란 자가용조차 심부름을 해 주는 누군가 몰아 준다면, 이때에 한결 낫다 싶은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PERU》(STEIDL,2008)를 읽습니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님이 1948년에 빚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책은 참 얇습니다. 페루땅에서 살아가는 페루사람 사진을 고작 서른아홉 장 담습니다.

 서른아홉 장이라 한다면 필름 한 통보다 석 장 많습니다. 설마 필름 두 통만 찍었겠느냐만, 또 1948년이면 요즈음 같은 필름이 아닌 다른 필름이라 할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웬만한 여느 사진책을 돌아본다면, 서른아홉 장 사진으로 빚은 《페루》는 참 얄팍한 녀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책을 가만히 되넘깁니다. 사진 서른아홉 장이면 참말 적은 숫자인가 되뇝니다. 서른아홉 장이 아닌 삼백여든 장을 담아야 비로소 잘 엮은 사진책이라 할 만할는지 곱씹습니다. 서른아홉 장조차 아닌 서너 장으로 페루사람들 삶을 보여주려 했다면 바보짓이라 할 만한가 되뇝니다.

 사진을 보고, 다시 생각하며, 사진을 보다가, 또 생각합니다. 사진잔치를 하는 이들은 으레 ‘사진 한 장만 알림쪽지에 넣’곤 합니다.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 ‘사진책 앞쪽에 사진 한 장만 넣’기 일쑤입니다. 알림쪽지로든 사진책으로든, ‘사진 한 장’으로 사람들한테 느낌과 이야기를 건네지 못한다면, 사진잔치에 내건 다른 사진들이든 사진책에 담긴 다른 사진들이든 부질없다 할 만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진 백 장이나 천 장으로 보여줄 수 없습니다. 사진 백 장이나 사진 천 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시금 사진책을 들춥니다. 사진책 《페루》에 실린 어느 사진이건 책겉에 넣을 만합니다. 애써 어느 사진 하나를 가려서 겉에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페루땅 페루사람 이야기라면 이 사진이든 저 사진이든 잘 어울리는구나, 잘 드러나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찍는다 할 때에는 어느 사진 하나로 ‘한국땅 한국사람’을 보여준다고 내놓을 만할까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땅인가부터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한국사람 또한 어떠한 몸과 마음으로 어떠한 꿈을 키우면서 어떠한 살림을 일구는 겨레인지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4대강사업을 한다며 연장이나 기계를 다루느라 땀흘리는 사람들 모습이랑 자동차나 배를 만드는 공장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다루느라 땀흘리는 사람들 모습이랑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나라밖 노동자가 얼크러진 모습에서 무엇을 한국땅 한국사람 모습이라고 그려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한겨레 어머니와 조선족 어머니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어떤 한국사람 얼굴을 찾아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까만 양복을 입고 까만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랑 까맣게 탄 얼굴과 까맣게 얼룩진 손으로 흙을 일구는 사람 사이에서 어떤 한겨레 빛깔을 느껴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피리를 불고, 양을 몰며, 먼지바람이 이는 흙길 뒤로 높디높은 멧자락이 드넓게 펼쳐진 페루땅 한켠 페루사람들 눈빛과 낯빛을 들여다봅니다. 햇살을 듬뿍 받고, 바람을 가득 마시며, 흙하고 한동아리로 뒹구는 페루사람들 몸뚱아리를 바라봅니다.

 사진에 앞서 사람이란 무엇일까 알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앞서 삶이란 무엇일까 찾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앞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느껴야겠습니다.

 한국 사진쟁이 가운데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담는다든지, ‘고향사람’을 사진으로 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한국사람과 고향사람을 지나 ‘지구별 이웃’이랑 ‘지구별 목숨’을 곰곰이 살피면서 사진으로 싣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리송합니다.

 왜 사진을 찍는가요. 왜 사진에 담는가요. 사진기를 쥐고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사진기를 든 채 어디에 서나요.

 사진을 찍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요. 사진에 담아 무엇을 보여주려 하나요.

 사진기를 든 나하고 사진기를 바라보는 너 사이에는 어떠한 징검돌이나 걸림돌이 있는가요.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는 몫을 맡은 사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니,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이든 춤이든 만화이든 영화이든 연극이든 한결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할 때에 빛이 나면서 맛이 납니다. 살아숨쉬도록 하는 기운을 불어넣는 손길로 빚는 사진이요, 살아숨쉬도록 하는 기운을 샘솟게 돕는 눈길로 일구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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