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책 상상하기 – 위원석 / 딸기책방 대표
대작가의 글쓰기 비결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대하소설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조정래 선생은 언젠가 다른 작가들에게 자신의 창작 비법을 공개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 비법은 소설의 제목과, 첫 문장, 마지막 문장을 정해 놓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정해지면 절반은 쓴 셈이라고 했단다. 물론 이 세 가지를 정해 놓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미 작가의 머릿속에 소설 속 인물과 장소, 사건들로 가득 차 있고 이들의 연계가 얼키설키 이어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제목과 첫 문장, 마지막 문장이 정해져야 비로소 글을 막힘없이 써 내려갈 만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쨌든 대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방법은 독자가 글을 읽는 순서와 작가가 글을 쓰는 순서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욕적으로 집필에 나섰던 작가가, 어느 순간 자기의 원고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방향을 잃으면서 추진력도 잃고, 추진력을 잃으면서 집필 동기마저 잃어가는 경우와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편집자들은 어떻게든 작가를 조력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하게 되는데, 경험상 종종 유용했던 조언은 이런 말이었다.
“머리말부터 써 보시면 어떨까요?”
보통 머리말은 작가가 글을 완성한 이후에 책 출간에 앞서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편집자의 제안에 의아해 하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대체로 작가가 작품의 메시지를 날카롭게 다듬고 독자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는 시간이 되기에 집필 전선을 재정비하고 다시 힘을 내는 계기가 된다.
어렵사리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더 이상 글쓰기를 진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초보 작가가 있다면 같은 방법을 써보길 제안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쓴 책의 표지나 책의 장정, 제목과 홍보 문구처럼 세부적인 것들을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생생하게 상상하기
책을 만든다는 것은 물건을 만드는 일이다. 기본적으로는 책은 글이라는 내용을 담는 그릇 같은 것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내 글과 다른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 수단이다. 아름다운 표지나 장정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표지와 본문, 부속 문안 전체에 글 내용에 알맞은 적절한 연출이 필요하다.
가까운 책방에 들러 여러 가지 책들을 살펴보자. 그 책들 가운데에서 내가 쓴 글이 저런 책 모양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책들을 골라보자. 매력 넘치는 표지와 인상 깊은 제목의 책들도 살펴보자. 책의 뒤표지에는 어떤 문안들이 들어가 있는지, 작가 소개는 어떻게 쓰여 있는지도 눈여겨보자. (이때 참고가 될 책들을 사진 찍는 것은 작가나 출판사, 특히 서점에 실례가 될 수 있는 일이니 지양하시길...)
그리고 내가 만들 책 한 권은 어떤 크기, 어떤 모양, 어떤 느낌의 책일지 하나하나 상상해 보자. 내 책의 제목은 무엇으로 정할지, 뒤표지에는 어떤 문안을 넣을지, 작가 소개는 어떤 느낌으로 쓸지… 내가 만들 책에 관한 사소한 생각들을 짬 날 때마다 메모해 두자. 집필을 마치고 책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면 책의 연출을 위해 결정해야 할 것들이 수십 가지다. 미리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 놓으면 그 과정에서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물론, 한번 떠오른 생각이 끝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책의 모양은 여러 번, 때로 수십 번 뒤바뀌기도 하겠지만, 분명 즐거운 상상이 될 것이다. 이 상상이야말로 독립출판을 준비하면서 만끽할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계획안 써보기
메모가 조금 모였다면 출간에 대한 계획서를 써 보는 것이 이상적이다. 출판 계획서라고 하니 뭔가 대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좌충우돌하며 자유롭게 상상했던 내용을 묶어보는 중간 정리로 이해하면 좋겠다. 아래의 여섯 가지 항목에 각 100자 정도씩 간략하게 적어 보는 것이 좋겠다.
1. 제목
2. 독자
3. 기획 의도
4. 문화적 의미
5. 상품으로서의 가능성
6. 작가 소개
다음 연재에서 여섯 가지 항목에 대해 상세히 안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