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에서 비롯된 의외의 동력... 신용진 개인전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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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에서 비롯된 의외의 동력... 신용진 개인전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
  • 채이현 기자
  • 승인 2024.01.3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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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지 못한 것들을 위한 기록"... 내달 11일까지 열려
공간불모지에 붙은 전시 포스터(사진=인천in)

 

인천 연수구 공간불모지(샘말로8번길 11)에서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주체와 객체를 전복시키는 사고, 일상 사물에 깃든 시간의 시각화, 우연적 계기를 통한 예술 본질의 탐구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신용진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 전시는 작년 12월 19일, 작가의 석사학위논문이 본 심사에서 최종 탈락하는 불상사로부터 시작됐다. 구어체로 작성된 논문 형식과 작성 과정에서의 ‘불손한’ 태도가 문제였다. 미술학과에서 유례없던 일이었고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작가는 불쾌함을 잠시 뒤로 하고, ‘유례없는 일’을 특별하게 만들 구상을 했다.

그것은 논문이 아니게 된 논문을 작품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전시 공간에는 약 80여 쪽의 논문이 여러 장씩 겹쳐지며 더 이상 글이 아닌 이미지로 바뀌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시회 포스터가 그 결과물 중 하나인데, 논문에 나오는 모든 글자들이 합쳐진 상태는 더 이상 언어의 영역으로 볼 수 없다. 이미지로 고정된 것이다.

 

프린터에 걸린 용지를 빼 내는 신용진 작가 (사진=인천in)

 

공간의 가운데에는 프린터가 놓여 있다. 장들이 켜켜이 쌓여져 알아볼 수 없는 논문을 토해내듯 뽑아내다 가끔 멈추기도 한다. 능숙하게 프린터를 열고, 걸려서 구겨진 종이를 빼내는 작가의 모습이 전시 주제와 닮았다. 미술학원 강사와 환경 미화원 일을 하며 개인전 데뷔를 준비했던 그에게 코로나라는 역병이 찾아온 것처럼, 그간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담은 논문이 유례없이 탈락한 것처럼, 불행은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만 같다.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작가가 토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예술가, 창작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비결이 이번 전시에 숨어 있다. 예술이라는 범주에서 허용된 일탈이다. 세상과 타협하고 소통하기 위해 크게 한 번 숨을 고르는 때가 누구나에게 필요하다. 그는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 같다.

신용진 작가의 언어를 학습한 AI가 공개될 수 없는 서술의 내용을 읽어주는 지하 공간은 다소 기괴하다. 낯설게 보이는 이 ‘살풀이’가 끝나면 작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형식에 맞는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꼬여 있는 장애물을 걷어내고, 그 다음 한 발을 내딛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 인생이라면,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가 주는 위로는 의외로 강력하다.

실패를 창조로 바꾼 청년의 자신감 넘치는 전시는 내달 11일까지 공간불모지에서 볼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무수한 작업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논문이 아닌 논문 (사진=인천in)
무수한 작업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논문이 아닌 논문 (사진=인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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