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의 기획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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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의 기획자가 되자
  • 위원석
  • 승인 2024.02.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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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 따라 하기]
(5) 제목 짓기 – 위원석/딸기책방 대표
제목은 책의 이름이기도 하고, 얼굴이기도 하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등을 보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제목이다.
제목은 책의 이름이기도 하고, 얼굴이기도 하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등을 보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제목이다.

 

절반은 제목 장사

중학교 때, 집 방향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무리지어 등하교를 하곤 했는데, 그중 한 아이의 집이 서점을 했다. 가끔 그 친구네 책방에 들러 잡지나 참고서를 샀다. 부모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실 때면, 책방을 대신 보겠다며 우리끼리 책을 꺼내 들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주택가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책방이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도 많지 않아서, 두세 명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책 읽다가 놀다가…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그날도, 가지런히 꽂힌 책등을 눈으로 훑으며 무슨 책을 뽑아볼 지 서성거리다가 한자로 써진 제목에 손이 닿았다. 한자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아는 글자가 제목으로 박혀 있으니 반갑지 않았을까. 지금 기억으로 그 책 제목은 《空》, ‘공’이었다. 표지를 넘기고 책장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본문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텅텅 비어 있는 공허의 페이지들을 넘기며 이런 것도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이것도 책이냐며 책을 흔들어대자, 책방 친구가 가소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야, 그 책 잘 팔려.”

한참 지나고 나서야 백지로만 묶인 책이 이것 하나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판계에서는 제목 짓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책장사의 절반은 제목 장사’라는 말을 사용한다. 베스트셀러를 분석하면서, 한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요인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좋은 제목’이다. 특히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아도 잘 팔리는 책을 보면 대부분 ‘제목’을 잘 지었다고 평가하고, 유명한 작가가 좋은 글을 책으로 묶어도 기대보다 독자 반응이 미미하면 ‘제목’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뻔하게 이루어지는 책의 흥행과 제목의 연관성에 대한 분석을 보면 그냥 사후적으로, 잘 팔리는 책의 제목은 잘 지은 제목, 안 팔리는 책의 제목은 못 지은 제목이라고 안일하게 평가하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알려지고, 기억되기까지 ‘제목’의 힘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내 이름으로 내가 기억되듯이

제목은 책의 이름이자 책의 얼굴이다. 독자는 우리가 지어준 책의 이름으로 내 책을 기억하고, 그 이름으로 회자한다. 내가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힌 책등 사이에서 ‘공(空)’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꽂힌 것처럼,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자기 눈에 유난히 밝게 띈 제목에 손을 뻗게 된다. 그리고 제목에 이끌려 책을 펼쳤을 때, 책을 다 읽었을 때, 책 제목이 다시 한번 명료하고 묵직하게 머릿속에 남는다면 정말 좋은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제목을 짓기 원한다면 다섯 가지 내용을 유념하길 바란다. 첫째, 원고의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제목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좋다. 멋진 단어나 적합한 문장이 떠오르거나 발견되면 그때그때 메모해 둔다. 언젠가는 요긴하게 쓸 메모다.

둘째, 책 내용을 대표하면서 본문을 표현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는 것이 좋다. 일시적으로 독자의 눈을 현혹하기 위해 본문의 내용과 다르게 과장되거나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다면, 그 책의 독자는 그 책에 관해 불쾌한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독자들이 생긴다는 것은 내 책의 생명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내 책을 읽어줄 주 독자층이 누구인지 확인하여 독자층의 정서에 잘 부합하는 제목을 고민해 보는 것이 좋겠다. 청소년 책에 근엄한 제목을 단다든지, 중년층 이상을 독자층으로 하는 책에서 최근 유행어로 제목을 붙인다면 내 책에 다가오려고 하는 독자를 오히려 밀어내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넷째, 주요 독자 입장에서 내 책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가 무엇일지 검토해 보자. 그리고 그 매력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제목인지 고민해 보자.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주요 독자에 해당하는 몇몇 사람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마지막,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온라인서점의 검색창에 제목 후보를 입력해 보길 바란다. 인터넷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이름이거나,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맥락으로 제목이 이해되거나, 같은 제목의 책의 종류가 너무나 많거나…하는 문제가 뒤늦게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발견되는 것이 다행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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