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한 공공미술, 가치 있는 공공미술
상태바
무난한 공공미술, 가치 있는 공공미술
  • 조경재
  • 승인 2024.02.02 1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 공공미술 다시 보기]
(2) 한국에서 좋은 공공미술 만들기
- 조경재 / 시각작가
개발과 변화가 빠른 인천은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며 그에 따르는 수많은 공공미술 작품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조형물(조각) 설치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설치된 작품은 현재 그 역할을 잃어 사라지거나 방치되고 있는 현상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공공미술의 대안을 소개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있는 공공미술을 찾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에 인천in은 공공미술과 관련한 연구, 작품 활동을 해온 예술가들과 함께 인천을 비롯, 국내 외 공공미술의 현황과 추이, 문제점과 대안들을 살펴봅니다.

 

안토니 곰리, '북방의 천사', 1995-8년, 철, 22x54x 2.2m, 게이츠헤드
안토니 곰리, '북방의 천사', 1995-8년, 철, 22x54x 2.2m, 게이츠헤드

 

한국 공공미술의 형태와 시스템은 시각적 조형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형태로 대표되는 외국의 공공미술로는 영국 북동부 산업도시 게이츠헤드의 북쪽 언덕에 위치한 <북방의 천사(Angel of the North)>(안토니 곰리 Antony Gormley 작)를 들 수 있다. 게이츠헤드는 철강업으로 융성했던 탄광촌으로 <북방의 천사>는 탄광을 상징할 수 있는 200톤이 넘는 철로 제작되었다.

19세기까지 탄광산업으로 부유했던 게이츠헤드는 1970년대 말부터 생산성이 떨어져 광산이 폐쇄됨으로써 지역경제는 침제에 빠지게 되었다. 경제침체 상황 속에서 게이츠헤드는 도시 브랜딩을 목표로 하여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북방의 천사>는 세계 곳곳에서 40만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세계인에게도 사랑을 받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런데 작은 소도시에 <북방의 천사>라는 초대형 쇳덩어리 조각상을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일 먼저 반대한 사람들은 주민들이었다. 지역민들에게는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쇳덩어리에 16억 원의 예산을 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거대하고 높은 쇳덩어리 때문에 TV전파 송수신의 어려움, 비행기 운항의 지장, 그린벨트의 손상 등도 우려됐다. 심지어 고속도로 초입이라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깜짝 놀라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등 신의 분노로 벼락을 맞게 될 것이라는 등 억지 의견도 쏟아져 나왔다.

당시 주민 설문조사 결과 80% 이상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시 당국은 포기하지 않고 주민을 설득했다. 외부 자본을 유치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고, 모든 예산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작가인 안토니 곰리도 주민을 설득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그는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지역 학교의 교장, 미술교사,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와 전문가의 의견수렴을 위한 워크숍 등을 열어 긍정적인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작품 모형과 드로잉 전시 등의 홍보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이러한 시 당국과 작가의 노력은 주민의 마음속에 담겨있던 흉측한 쇳덩어리에 서서히 천사의 날개를 돋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개가 자라나 미래의 희망을 향해 비상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북방의 천사>는 단순히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이라기보다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서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있는 역사적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여건과 방향성을 가지고 공공미술이 진행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점은 게이츠 헤드 사례와는 다르게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설득의 대상자가 주민보다는 공무원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파트 조형물이나 건물 앞에 들어가는 조형물의 경우 그 지역민들을 고려하여 만들어진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공공미술과 야외설치조각전의 경우 1차적 설득 대상자는 공무원이다. 예술프로젝트의 질은 누가 공무원인가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예술가의 역량, 그리고 디렉터의 의지, 그리고 프로젝트의 방향성과는 무관하게 공무원의 판단 하나로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 현재 한국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현실이다.

한국 공무원의 시스템은 매우 분업화 되어 있다. 효율적 방식을 위해 분업화 하는 것이겠지만 공공미술을 진행할 경우 어려운 상황으로 연결된다. 한 조형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3-4개의 담당부서의 허가가 필요하다. 각각의 부서의 결정에 따라 공공미술의 방향성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주어진 각 부서들의 조건을 다 충족시키면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기획의도와는 동떨어진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2021년에 이루어진 서울25부작 공공미술프로젝트 속에서 양천구에 시계탑제작에 선정되어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주관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실제 실행되고 진행되는 것은 양천구 녹지과였다. 녹지과의 조건에 따라 설치장소가 여러 번 바뀌게 되었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위치가 결정되었다. 당연히 장소가 여러 번 바뀌면서 작품 설계도는 매번 수정되어야 했다. 기존의 장소는 양천공원의 중심부를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바뀐 장소는 보행 길의 연결선에 위치하였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덩어리로 된 조형물보다는 다른 환경과 연결되는 방식으로 수정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작가가 직접 전기과와 디지털과도 사업진행에 대한 승낙과 방식을 공유해야만 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공무원들이 해야 하는 기존의 업무에서 매우 벗어나 있는 일이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자신의 업무를 위해서 엄격한 조건을 내세우고 간섭하는 상황이 비일비재 했다.

공공미술이란 작가 혼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주민과 사회 그리고 그 일을 진행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들이 협업할 때 좋은 공공미술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작가에서 매우 짧은 시간에 엄격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게끔 설계되어졌다.

그러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프로젝트는 현장(공원)에서 시계탑을 만드는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노력이 공공미술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빛과 구조, 조경재 작, 서울25부작, 양천구 양천근린공원
빛과 구조, 조경재 작, 서울25부작, 양천구 양천근린공원

 

인천에서도 서울25부작와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동구 수도국산박물관 옥상 쉼터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휴’를 통해 휴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를 상징하는 <생명의 근원>, <희망의 나무>, <꿈의 달>, <삶의 흔적> 등 4개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 <삶의 흔적>은 동구 송현동과 송림동 사이 달동네 산비탈에 존재했던 3000여 가구의 모듬살이를 나무토막집 조형물로 표현한 작품이다. 나무 모형 각각은 3천여 가구 각각을 일일이 표현하고 있다. <희망의 나무>는 송림동의 우거진 숲을 모티브로 하여 스테인글라스 기법으로 이 지역을 상징하는 4가지 색(정렬적 의지의 붉은색, 주민의 순수한 흰색, 송림의 초록색, 인천 앞바다 파란색)으로 표현하였다.

 

수도국산박물관 옥상 쉼터 공공미술 프로젝트 ‘휴’ <삶의 흔적> 
 <희망의 나무>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의 공공미술 사업은 이상적인 공공미술의 형태보다는 사업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좋은 공공미술보다는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는 공공미술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공공미술의 가치는 무엇이고 그 가치는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근본적으로 접근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