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의 강한 힘, 현장에서 발현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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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의 강한 힘, 현장에서 발현하려면
  • 조경재
  • 승인 2024.03.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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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공미술 다시 보기]
(3) 공공미술의 역할과 가능성
- 조경재 / 시각작가

 

2024년, 한국에서 공공미술이 무슨 역할을 하고, 또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가능성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필자가 참여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성격을 가진 프로젝트 중 하나는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울산시의 후원, 경상일보의 주관)이다. 필자는 2021년 15회 미술제에 참여하였다. 미술제는 태화강국가정원에서 이루어진다. 현장 리서치를 하면서 작업을 구상하였는데 첫 번째 기획안은 행정적 이유로 무산되었다.

태화강국가정원은 매우 잘 정돈된 공원이며 생태적 공원이라기보다는 매우 인위적인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그에 반면 대나무 숲 안쪽은 밀도 있는 음의 기운이 가득 찬 장소였다. 그 대나무 숲 속에 길을 만들고 그 안에 조명을 설치하는 것이 첫 번째 기획안이었다.

이 기획안이 거절된 이유는 매우 단순하였다. 숲을 다른 과에서 관리하기 때문이었다. 새의 보금자리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이유보다는 자신들의 관리대상지가 기존의 모습에서 변화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행정상의 문제로 거절되었다. 예술적 가치와 전체 미술제에서 이 작품의 역할, 그리고 다른 해외 프로젝트를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였지만 아무런 설득이 되지는 않았다. 그 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의 판단으로 기획은 사라지는 것이다.

예술가와 기획자가 아무리 좋은 기획과 작품 기획안을 들고 가도 거두절미 거절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당시 기획자는 모든 상황을 조율하고 설득하여야 했다. 작품을 고정하기 위해 땅을 파야 하는 일조차도 반대하여서 설득하여야 했다. 설치미술제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디렉터의 많은 수난과 고통 속에서 설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미술제였다.

공공미술제에서 디렉터의 역할이 그래서 매우 중요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디렉터는 주어진 상황과 환경 속에서 미술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다 보니 매번 비슷비슷한 결과물만 재생산되어진다. 즉 전시의 구조적 변화가 없이 내용만 바뀌는 전시를 하다 보니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은 같이 움직여야하는데 형식은 매번 같고 내용만 변하는 것이다.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숫자만 중요해진다. 규모나 작품 수, 참여 작가 국적, 관객 수 등등 수치로 만들어지는 점수는 공무원에게 성공한 전시로 인지된다.

그러나 태화강설치미술제 디렉터는 그러한 수치가 아니라 더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설득하며 나아갔다. 이러한 노력과 설득은 한국 예술계가 발전하는 토양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디렉터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25부작의 경우 예술가가 직접 모든 부서와 부딪혀 가며 조건을 만들어야 했다면 태화강국제미술제는 디렉터와의 협업으로 공무원에게 작품을 설득하면 되었다.

 

시간 자연 그리고 안_조경재 작_태화강설치미술제_2021
시간 자연 그리고 안_조경재 작_태화강설치미술제_2021

 

반면 서울 도림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이미 조건들이 다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예술가가 투입된 기획이었다. 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프로젝트 설명회에서부터 명확하게 명시되어있는 프로젝트였다. 즉 프로젝트 도중 행정상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사업 초기에 다 방지해 주는 방식이였다.

물론 프로젝트 설명회를 듣기 전 협업작가와의 기획단계에서 다양한 상상과 기획들이 있었으나 설명회를 듣고 제약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획은 단순하게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정적 방향성은 매우 훌륭한 방식이였다.

왜냐하면 공공미술에 필요한 조건들이 초반부터 설정되어있다는 것은 그 조건 속에서 작가는 계획할 수 있기 떄문이다. 초반에 기획된 작업안들이 없어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시스템은 좋은 예시로 생각된다.

 

휘_이_이_잉, 조와박(조경재, 박경진), 도림천 공공미술 프로젝트
휘_이_이_잉, 조와박(조경재, 박경진), 도림천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럼 이러한 맞춤형(행정) 공공미술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공공미술의 해법인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러한 방식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방식이다. 도림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경우 바닥 이외에 모든 벽과 기둥, 천장에 앙카를 박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조형물이 설치되어질 장소를 명확하게 구역화 시키는 방식 등 이러한 조건들은 예술가가 도림천에서의 공간적 특성을 상상하며 이해하고 작품에 반영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공미술은 일반 전시와는 달리 작품이 놓아져야 하는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 놓여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공공미술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다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미술의 다양한 형태 중 대표적인 작가로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퍼포먼스로 <녹색선(Green Line)> 작업이 있다. 이 퍼포먼스는 녹색페인트 통에 구멍을 뚫어 페인트를 들고 작가는 직접 이스라엘과 인접 국가들의 정전 협상이 된 경계선을 걷는 퍼포먼스이다. 뚫린 페인트 통에서 나온 녹색 페인트는 작가가 걷는 장소와 거리에 녹색 선을 만든다.

매우 단순한 걷기는 소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내재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작업인 것이다. 민감한 사회적 갈등 지역에서 행위되는 프란시스 알리스의 퍼포먼스는 공공미술의 새로운 형태일 것이다. 이는 물리적 조각적 형상으로만 인지하는 공공미술의 행정적 문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인 것이다.

 

프란시스 알리스, 녹색선, 퍼포먼스
다양한 형태의 공공미술 - 프란시스 알리스의 <녹색선> 퍼포먼스

 

그러나 필자가 말하는 관점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공공미술 아니라 매우 한정적인 범위(물질성을 드러내는 조형물) 속에서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사회에서 조형물을 만드는 공공미술의 필요성의 부각에 대해 많은 피로도가 쌓여있는 것은 사실이다. 건물 앞에 세워진 조형물들에게서 그 어떤 예술적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공간의 특성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표지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조형물의 형성으로 만들어지는 피로함과 불필요함의 해결 방안으로 다른 형식의 공공미술을 만들어내는 것은 답은 아닐 것이다. 조형적, 시각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공공미술은 매우 클래식한 미술의 형태이다. 이러한 클래식한 형태의 공공미술은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은 물리적 공간에서 형성되는 지속성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좋은 예시로 트라팔가 광장의 <네 번째 좌대>가 있다. 런던시는 공공미술을 장려하고 대중과 현대미술에 대해 논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네 번째 좌대>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였다. 트라팔가 광장에 남쪽 좌대에는 헨리 헤이브록과 찰스 제임스의 동상이, 북동쪽에는 조지 4세의 동상이 세워져있는데, 네 번째 좌대에는 엉뚱한 현대 미술작품들이 올라가 있다. 원래 이 좌대는 1841년 찰스 베리 경이 조지3세 왕의 기마상을 설치하기 위해 디자인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조각상을 완성하지 못해 무려 150년이나 텅 비어 있었다.

단지 좌대를 활용할 목적으로 1998년에 세 명의 작가들에게 임시 전시 공간으로 내준 것이 <네 번째 좌대> 프로그램의 시초가 됐다. 작품이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자 런던시는 영국문화예술위원회와 본격적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 2005년부터 작가를 선정, 후원해 좌대에 전시한다.

지금까지 마크 퀸(Marc Quinn)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 Pregnant), 2005>, 토마스 쉬테(Thomas Schutte)의 <호텔을 위한 모델(Model for a Hotel), 2007>,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원 앤 아더(One and Other), 2009>등이 전시됐다. 마크 퀸의 작업 <임신한 앨리슨 래퍼>의 백색 조각상은 위대한 위인의 형상이 아닌 임신한 장애인의 누드를 형상화 하고 있다. 공공조각의 의미를 새롭게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었다. 안토니 곰리의 <원 앤 아더> 또한 2008년 7월 6일부터 10월14일까지 100일간 미리 선택된 2400명의 사람들이 각자 한 시간씩 좌대를 차지하는 프로젝트로 조각상의 선입견을 변화시킨 작품이다.

 

마크_퀸_앨리슨_래퍼_2005_트라팔가_광장
마크 퀸 <임신한 앨리슨 래퍼> 2005, 트라팔가광장
안토니 곰리 원 앤 아더
안토니 곰리 <원 앤 아더>

 

이렇듯 물질적 성질이 강하게 드러내는 조각적 성향의 공공미술이 어떻게 설계되어지고 보여주는가에 따라 새로운 가치관들이 형성될 수 있다. 평범하고 단순한 역사적 광장을 문화예술의 실험대로 활용해 전통적 미술관의 시선과 관습까지 변화시킬 수 있고 대중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는 예술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과 행정가 그리고 정치인, 시민이 순수예술의 가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다 같이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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