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목수의 나무 사랑 "검소하되 누추하지 아니한 조선목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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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목수의 나무 사랑 "검소하되 누추하지 아니한 조선목가구"
  • 김시언
  • 승인 2024.02.1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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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이야기]
(37) 목인공방
목인공방 김수환 소목장
목인공방 김수환 소목장

 

“조선목가구는 나뭇결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가끔 오가는 길에 ‘목인공방’이 있다. 강화군 길상면 강화남로 110. 공방이라는 말이 끌려서 대문 안을 흘낏 훔쳐보면 나무가 마당에 한가득 쌓여 있고 큰 장비가 슬몃 보인다. 나무로 뭘 만드는 곳이구나. 마침 그 공방 대표를 잘 아는 분 소개로 공방을 찾아갔다. 목인공방 김수환 대표(66)는 조선목가구를 좋아하는 소목장으로서 조선목가구와 접목해 현대가구를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김수환 대표는 길상면 길직리에서 태어났다. 지금 목인공방이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태어나기는 강화에서 태어났지만 열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의왕에서 살게 됐다. 도시에 살면서 그는 전기기술사로 건설현장에서 전기 일을 했다. 어느 날 나무공방 간판을 보고 들어가 동호회 공방 활동을 시작했다. 5년 동안 활동했는데 무척 재미있었고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무형문화재 박명배 소목장한테 2년 동안 배웠다. 이렇게 김 대표가 전기 일을 하다가 갑자기 나무 일로 방향을 튼 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목인공방 작업실
목인공방 작업실

 

강화 목수를 한 아버지의 유전자가 있는 듯

사실 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었다. 뭘 만들든 남들보다 잘 만들고 실수도 안 하고. 어려서 뭘 만들면 어른들이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재능이 있었던 까닭의 원천은 김 대표의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길상면 길정지 부근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대목장으로 일했다. 김 대표는 부친을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는 무척 부지런해서 농번기에는 농사짓느라 바빴다. 하지만 농토가 없다 보니, 농한기인 겨울에는 목수로 일했다. 집을 지으러 다니셨다. 제가 아무래도 유전자를 받은 것 같다.”

이러구러 김 대표가 목공 일에 심취한 지도 15년이 지났다. 한 가지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또 다른 일을 함께한다는 것은 여간 재미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목인(木人)공방. 이름에서 나무 사랑이 느껴진다. 김 대표는 공방 이름을 지은 까닭을 설명했다. “나무 작업을 할 때 보통 느티나무 취급을 많이 한다. 느티나무는 큰 그늘을 만든다. 사람들이 그 아래서 쉬고. 이름을 지을 때 느티나무를 보고 생각했다. 도장도 그런 형상으로 만들었다. 나무 그늘에 사람이 쉬는 모습으로.”

김 대표는 무형문화재 박명배 선생 아래서 전통가구를 계속 만들었다. 전통가구를 열심히 만들고 출품도 몇 번 하고. 조선목가구를 만들다 보니 그 아름다운 매력에 흠씬 빠져들었다. 늦게 시작한 일이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몰입해서 일할 수 있었다고. 사실 김 대표는 지금 잠깐 외유 중이다. 작품만 만들어서는 먹고사는 일이 녹록지 않아 다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것. 임대료도 내야 하고, 또 작품 활동을 하면 수입이 나오지 않으니까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주중에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 조만간 일을 그만두고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공방 마당에 쌓인 나무들.
공방 마당에 쌓인 나무들.

 

나무 무늬 자체는 자연이 그린 그림이다

김 대표의 나무 사랑은 넘친다. “나무를 만진다는 건 자연을 다루는 거다. 사람은 오래 살아야 100년이지만 나무는 몇 백 년, 또 1000년 이상을 산다. 겉에서 보면 모르지만 나무를 자르면 그 안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무 무늬들에 나무가 살아온 연륜이 다 들어 있다. 모든 게 들어 있다. 테를 보면 나이도 알 수 있고, 무늬가 꼬불꼬불한 걸 보면 고통스런 시기를 지났구나 생각할 수 있다. 나무를 보면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나무 무늬 자체가 작품이다. 자연 속에 있는 그림이다. 그린 게 아니고 자연스런 그림이다. 인간이 접할 수 있겠나.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답을 구하려는데 그 답이 이런 데 있지 않나 싶다.”

김 대표는 나무로 만드는 건 다 만든다. 한때는 주문을 많이 받아서 밤새도록 만들어서 납품했지만, 이제는 일에 치이고 싶지 않다. 만들고 싶은 작품이 머리 속에 있으니까, 그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 일을 조절하면서 좋아하는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 조선목가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조선목가구는 수백 년 동안 내려온 디자인이라 완벽하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갖다 놔도 어떤 환경에 갖다 놔도 다 어울린다. 작품 자체에 완성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구를 모태로 해서 현대 가구를 접목해서 만들 수 있는 걸 생각한다.”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가구.(목인공방 제공)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가구.(목인공방 제공)

 

조선목가구와 현대가구를 접목시키고 싶어

그는 강화반닫이가 반닫이 중에서도 묵직하다고 했다. “조선반닫이 중에서 가장 비싼 게 강화반닫이다. 고려 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사이즈가 크고 묵직하고 중압감이 있더라. 반닫이는 지방마다 다 있고,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강화반닫이는 특히 무쇠 장석을 써서 무쇠만의 질감을 제대로 표현했다.”

받닫이는 오랜 역사를 통해 귀천(貴賤)을 불문하고 안방에서 광에 이르기까지 가장 요긴하게 사용된 다목적 가구다. 나무의 재질, 금속장식, 형태와 짜임 등에서 지역적인 특징이 강한데, 크게는 평안,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 반닫이로 나뉜다. 또 강화, 밀양, 나주, 고흥, 박천 등 다양한 지방 양식을 보여주는데, 나뭇결이 좋고 넓고 두꺼운 판재에 무쇠로 된 큼직한 장식들이 어울려 단순하고 후박한 맛에서 나오는 건강미를 자랑한다.

또 그는 사방탁자(四方卓子)에 대해서도 극찬했다. “사방탁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디자인이 완벽한 것 중 하나다. 각 층의 넓은 판재를 가는 기둥만으로 연결한 가구로서 책, 도자기, 수석 등의 작은 물품을 장식하는 데 썼다. 3,4층이 일반적이고 1층에 문을 달아 장으로 만든 것도 있다. 간결한 구성과 쾌적한 비례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사랑방 목가구이면서 매우 현대적인 감각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조선목가구를 생각하면 이 글귀가 떠오른다고 한다.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을 좋아한다.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아니하다. 김 대표가 강화에 목인공방을 낸 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서다. 조선목가구를 재현하고, 또 조선목가구와 접목시켜 현대가구를 어떻게 만들지를 늘 고민하고 작업한다. 그가 조상의 혼을 이어받아 어떤 가구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가구.(목인공방 제공)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가구.(목인공방 제공)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상.(목인공방 제공)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상.(목인공방 제공)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가구.(목인공방 제공)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가구.(목인공방 제공)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사방탁자.(목인공방 제공)
김수환 소목장이 만든 사방탁자.(목인공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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