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속 두 번 우는 대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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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속 두 번 우는 대졸자들
  • 이혜정
  • 승인 2011.10.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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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졸채용 확대정책'에 고졸로 속여 지원서 내


대졸자인 김모씨는 취업이 하도 안돼 한 기업에 '고졸'로 속여 지원했다고 한다. 

취재 : 이혜정 기자

'청년실업 30만명 시대'에 내세운 고졸채용 정부 정책에 대졸자들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최근 정부가 '학력제한 철폐'를 내세우자 기존에 고졸채용을 하지 않던 공기업과 일반기업 중 상당수가 고졸채용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졸자들은 취업을 위해 학력을 '고졸'로 속이고 지원하기도 한다.

지난 27일 오후 지방대를 졸업(2010년 8월)하고 취업준비 중인 김모(27.연수구 연수동)씨를 만났다. 김씨는 지난달 대기업에 입시지원서를 제출하면서 학력란에 고교졸업까지만 적었다고 한다. 올해 이 기업 채용공고란에 고졸자 할당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그는 그동안 수십장의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채용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수도권 내 대학교를 졸업한 이들에게 경쟁에서 밀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졸업 성적 4.0, 토익점수 850점을 만들어 놓고, 1년 반 어학연수에 6개월 해외봉사를 하는 등 나름 열심히 살았어요. 수십차례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지방대여서 그런지 채용에서 떨어지더라고요. 마침 올해 고졸자 채용이 있길래 마음엔 걸리지만 고졸까지만 적어서 원서를 제출했어요."

김씨는 "그동안 학비와 다양한 스펙쌓기를 위해 투자도 하고 노력도 했지만, 수도권 대학을 나온 이들과 경쟁에서 밀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서 "자존심도 상하지만 취업이 급하다 보니 고졸자 전형에 지원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지원했다"라고 덧붙였다.

주변 대졸자들이 취업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고졸지원자 전형에 제출하려고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다른 수도권 내 대졸 취업준비생인 정모(25)씨. 그는 고졸채용과 관련해 불만을 토한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취업하기 어려운 사회풍토 때문에 대학을 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 학생들이 그동안 돈과 시간을 투자해 배운 게 전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졸자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고졸자 채용으로 인해 취업난에 허덕이는 대졸자들은 더욱 불안해요."

정씨는 "지난해 졸업 이전 토익 800점으로 은행권에 들어가기 위해서 금융3종세트(증권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투자자산운영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것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질까봐 현재 재무위험관리사까지 준비중"이라며 "고졸자 채용 자리를 늘린 게 아니라 대졸자 자리가 줄어든 게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대학 후배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고졸채용에 원서를 넣어 미리 취업을 할까 하는 고민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전문계고등학교 졸업자들은 고졸채용 소식을 반기고 있다.

인천 모 전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한 유모(21)씨의 경우 요즘 취업걱정이 덜하다. 전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취업을 할 수 있는 곳이 기껏해야 중소기업 경리 정도였으나, 최근 정부가 학벌주의 타파 대안으로 '고졸채용 확대정책'을 선포하면서 고졸채용 기업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유씨는 "불과 몇년 전에는 은행권 사람 대부분이 대졸 출신이었는데, 지속적인 취업난으로 우리는 중소기업 경리가 아니면 취업하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면서 "최근 상당수 기업에서 고졸자를 채용해 정말 좋다"라고 말했다.

그는 1년여 동안 다니던 경리직을 그만두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씨에겐 또 다른 걱정이 있다. 요즘 대졸자들이 고졸자 채용으로 지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입사가 쉽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마저 가져가려고 고졸채용에 지원하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라고 그는 지적했다.

유씨는 "그동안 고졸자 취업 문턱은 대졸자들에 비해 매우 높았다"면서 "이제 조금 낮아진 그 문턱을 대졸자들이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에서는 학벌위주 채용을 벗어나 고졸자들을 채용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고졸자 비중확대로 대졸자 채용 비율이 줄어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년간 금융권에서 고졸자를 거의 채용하지 않은 상황에 고졸자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청년들이 취업난을 겪고 있는 실정에 어느 한쪽에 피해가 있다는 게 안타깝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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