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지' 역사 속으로
조계지(租界址)라 하면 특정 지역 외국인 거류지(居留址)를 말한다. 청나라 상하이(上海)의 경우 영국, 독일, 일본, 러시아, 프랑스 등 각국 거류민이 살고 있는 지역에 범죄 또는 법적문제가 발생하면 거류민 각 나라 영사관이 직접 자기 나라 법 규정에 따라 수사해 재판을 진행하였다.
조계지에는 각국 조계지(各國 租界址)와 공동 조계지(公同 租界址)가 있었다. 영국조계지, 독일조계지, 불국조계지, 일본조계지 등 각국 조계지와 여러나라 거류민인 모여사는 공동 조계지가 있었다. 조차기권은 99년이었다.
영국이 아편전쟁에 승리함으로써 홍콩을 조차하였으며, 독일인 선교사 2명이 중국인에게 살해되자 이를 트집잡아 칭따오(靑島)에 상륙했다. 이에 청조(淸朝)는 칭따오와 옌타이(煙臺)를 독일에 넘겨주면서 조차권을 허락하게 된 것이다.
1883년 인천이 개항하자 일본 조계지가 생겼다. 조선이 청나라 속국이었기에 이듬해 1884년 청국 조계지도 생겼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을 사이에 두고 왼쪽이 청국 조계지요, 오른쪽이 일본 조계지다. 청국조계지는 이후 청관(靑館)으로 불여지다 근간에 '차이나 타운'으로 불린다.
이 조계지 제도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함으로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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