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진(장모루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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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진(장모루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 이창희 시민기자
  • 승인 2015.03.1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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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시민기자의 한국기행] 노을이 아름다운 정서진

정서진은 인천시 서구 오류동 1539의6번지에 있다. 위도 상으로 37도34분08초이다. 경인아라뱃길 인천여객터미널은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하여 정동진의 대칭점으로 정서쪽 육지 끝에 위치한 나루터에서 유래한 곳이다. 이곳이 바로 인천시 서구에서 처음 지정한 정서진(正西津)이다.

지난 신묘년 마지막 날에 맞춰 열린 '제1회 정서진 해넘이 축제'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들면서 해넘이 명소 '정서진'을 예고하고 있다. 그날 분위기는 대성황이었고 축제 열기가 아라뱃길을 녹이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놀이가 정서진의 밤하늘을 수놓으면서 축제는 절정에 달했다.

사실 지난해 3월 정서진을 처음 지정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가 우려했고, 또다른 지자체에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정서진으로 지정하려는 장소가 삭막한 바닷가 허허벌판이었고, 이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정서진 지정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구의 정서진은 정동진의 유래와 부합하는 정확한 위치로 확인되고, 천년의 물길이 열린 경인아라뱃길 경인항의 해양인프라와 만나면서 언론과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한 것이다. 이러한 관심이 제1회 정서진 해넘이 축제로 이어져 2만 명 이상의 인파가 찾아오는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옛날부터 정서진 지역은 '장모루'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구슬원'이라는 숙박시설과 '발아장'이라는 쑥시장이 번창하여 전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유서 깊은 장소이며, '장모루 아름다운 처녀'에 관한 설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 설화는 다음과 같다. 시천동은 고려 때 장로루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남부지방에서 고려의 왕도인 개경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많은 사람이 하루를 묵어가는 장소였다고 한다. 하루는 전라도에 사는 대가집 아들이 천리 길을 걸어 과거를 보러 가던 도중 이곳 장모루촌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로 했다. 장모루여각 주인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젊은 선비는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첫 눈에 반하고 말았다.
 


청년선비는 과거를 이틀 앞두고 개경으로 떠나 과거시험에 응시를 하였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 청년은 되돌아 오는 길에 또다시 장모루여각에 돌아와 여각주인 딸과 사랑에 빠졌다. 여각 주인은 딸과 선비를 아무리 말리려고 했으나 선비는 막무가내로 "딸을 사랑한다"고 하며 "장모루촌에서 살겠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주인은 방을 하나 내줬다.

선비는 장모루촌에 거주하면서 여관의 잔심부름을 하며 딸과 사랑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선비집에서는 수개월이 지나도 과거를 보러 간 한량이 둘째아들이 나타나지 않아 수소문 끝에 아들이 '장모루촌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형을 보냈으나 고집이 센 동생은 형의 설득에도 막무가내였다.

형은 고심 끝에 아름다운 처녀를 설득을 했다. 그래서 처녀는 선비총각과 가락지를 나눠 끼고, 형을 따라 고향으로 내려갔다. 장모루촌 여인은 매일 뒷뜰에 정한수를 떠놓고 낭군의 과거 합격을 빌었다. 선비총각은 보고 싶은 아름다운 여인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3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하여 다음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다.

그러나 대가집에서는 평민출신인 여인과 결혼을 하는 걸 반대하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총각선비는 부모님과 형님께 말씀드리기를 "본인을 위해 3년동안 정성을 다하여 과거시험 합격을 빌어온, 사랑하는 여인을 그냥 내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수개월 동안 아버지와 형님을 설득하여 끝내 장머루촌 아름다운 여인과 혼인을 한 후, 아들 딸을 낳고 살았다는 아름다운 설화가 있다.

그 당시에도 평민출신인 여각주인 딸과 대가집 양반 자식의 결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와 같이 힘들게 사랑의 결실을 거둬 정서진은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서진은 지리적으로 송도와 한양으로 가는 해상교통의 중요한 뱃길이었고, 사람들에게는 한강을 건너 송도나 한양지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육로였다. 그런 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리라 짐작된다. 지금의 정서진도 경인아라뱃길 경인항이 있어 서울과 서해의 길목 역할을 하고 있으니, 장모루와 비교해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정서진이 예전에 번창한 장모루의 명성을 되찾아 발아장은 현대적인 쇼핑센터로, 구슬원은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는 초대형 숙박시설로 탈바꿈하여 인파가 넘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정서진은 이제 첫 걸음을 뗀 단계로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면서, 서해의 일출과 일몰, 그리고 아름다운 섬 세어도와 함께 주변의 다양한 관광자원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경인아라뱃길의 해양 인프라와 인천 앞바다의 섬과 유람선이라는 독특한 관광 콘텐츠가 접목된다면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 본다. 지금 인천은 제2의 부흥기를 꿈꾸며 활기찬 비상의 날개를 펴고 있다.

이제 처음 닻을 올린 정서진 해넘이 축제의 대성황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해도 노을이 아름다운 인천 정서진에서 전국노래자랑, 열린음악회, 자전거, 마라톤, 걷기행사 등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 번쯤 인천 정서진에서 낭만을 즐기는 여유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그리하여 먼 훗날 아름다운 정서진이 "과거 쓰레기매립장었던 드림파크와 함께 세계적인 유명관광지로 변모했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포스코에너지가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인천 정서진의 관광 명소화에 나섰다.

포스코에너지는 지난해 인천 서구 아라뱃길 여객터미널 정서진 광장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송영길 인천시장, 전년성 서구청장, 오창관 포스코에너지 사장을 비롯해 지역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서진 노을종 제막식을 가졌다.

정서진의 상징조형물인 노을종은 가로 21m, 높이 13.5m로 외관은 서해에서 가장 친근한 소재인 조약돌, 내부는 새로운 내일을 알리는 종 모양으로 제작되었으며, 노을을 이용하여 종을 만든 구상은 세계 최초라고 한다.
 


 

낙조가 조형물 내부의 종에 위치하는 매일 저녁 무렵엔 화려한 조명과 희망의 음악을 담은 노을종 멀티미디어쇼가 펼쳐진다.

노을종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직접 이름을 지었으며, ‘노을이 종소리로 번져갈 때’란 주제시도 함께 헌사했다.

이 前 장관은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갖고 있는 노을에는 모순과 대립을 어우르는 긍정의 뜻이 담겨 있으며, 외자로 줄이면 놀, 즉 놀다의 뜻으로 상징물에 놀이가 갖는 장난스러움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노을종과 더불어 포스코에너지는 정서진에 낙조를 감상하는 노을 전망대, 작은 노을종에 소망을 적어 매달 수 있는 노을벽, 바다 소리를 연주하는 피아노, 친환경 전력을 생산하는 노을 태양광 등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엔터테인먼트 시설물들을 함께 조성했다.

포스코에너지 관계자는 “방문객들이 정서진의 낙조를 감상하며 지나간 날들을 치유하고 새로운 내일을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재충전한다는 의미를 담아 노을종 시설물들을 기획, 제작했다”고 말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노을종 옆을 지날 때, 종소리 또는 피아노 소리가 연주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지만, 돼지울음 소리 같은 괴성이 흘러나와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이 점을 하루빨리 종소리 또는 피아노 소리로 변경했으면 한다.

한편 정서진은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 서쪽에 있는 포구라는 뜻으로 지난해 경인 아라뱃길 여객터미널 옆에 조성됐다. 정서진에는 고려 때,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가 여각 주인의 딸과 사랑에 빠졌고, 아름다운 서해의 석양을 바라보며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평생을 해로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시민기자 이창희lee90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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