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관객 동원 한국영화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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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 동원 한국영화의 허와 실
  • 윤세민
  • 승인 2015.09.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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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의 영화읽기] (4)윤세민 / 경인여자대학교 영상방송과 교수, 평론가
 
 
최근 한국영화 <암살>과 <베테랑> 두 작품 모두 누적 관객수 1260만명(9월 17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넘어 한국영화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다.
대단한 기록이다. 1000만 관객! 말이 쉽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나라 인구수가 약 5100만 명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구 다섯에 한 명은 봐야만 1000만 관객이 되는 셈이다. 물론, 여기엔 중복 관람수가 포함돼 있겠지만, 대부분 15세 이상 관람 가능 영화 인구로서의 1000만은 아무튼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2003년 영화 <실미도>가 첫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로 2015년 현재 <암살> <베테랑>까지 총 13편의 한국영화가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왔다. 한국영화의 비약적인 발전임에는 틀림없다. 그만큼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가 커진 것은 당연지사지만, 거기엔 순기능뿐만 아니라 말 못할 속사정 내지는 역기능도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1000만 관객 동원 한국영화의 면면

우선 1000만 관객 동원의 한국영화의 면면을 개봉 연도 순으로 간략히 살펴보자.
 
<실미도>(감독: 강우석, 출연: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는 2003년 12월에 개봉해 1108만 명을 동원했다. 북파 특수부대 관련의 실화를 소재로 현대사의 아픔을 정공법으로 다뤘다.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 출연: 장동건, 원빈, 이은주)는 2004년 2월에 개봉해 1174만 명을 동원했다.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잔의 비극을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탄생시켰다.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출연: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이준기)는 2005년 12월에 개봉해 1230만 명을 동원했다. 현실정치를 풍자한 팩션 사극으로 화제를 모았다.
<괴물>(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고아성)은 2006년 7월에 개봉해 1301만 명을 동원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한국적 변용이자 정치적 함의도 내포해 화제를 모았다.
<해운대>(감독: 윤제균, 출연: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는 2009년 7월에 개봉해 1145만 명을 동원했다. 재난을 소재로 사회적 메시지를 걷어낸 순수대중영화로 인기를 모았다.
<도둑들>(감독: 최동훈, 출연: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임달화,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은 2012년 7월에 개봉해 1298만 명을 동원했다. 톱스타 멀티 캐스팅으로 오락영화의 신기원을 이뤘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출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김인권, 장광, 심은경)는 2012년 9월에 개봉해 1231만 명을 동원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사회적 열망을 반영한 사극으로 인기를 모았다.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 출연: 류승룡, 박신혜, 갈소원, 오달수, 박원상, 김정태, 정만식, 김기천)은 2013년 1월에 개봉해 1281만 명을 동원했다. 경기불황과 불신의 시대에 지극한 부성애로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변호인>(감독: 양우석, 출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임시완)은 2013년 12월에 개봉해 1137만 명을 동원했다. 1980년대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을 모델로 하여 화제를 모았다.
<명량>(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은 2014년 7월에 개봉해 1761만 명을 동원해 현재 한국영화사상 역대 1위 관객 동원수를 기록하였다.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화제와 인기를 끌어 모았다.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출연: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은 2014년 12월에 개봉해 1426만 명을 동원해 역대 2위 관객 동원수를 기록하였다.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오직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담아내며 인기를 얻었다.
<암살>(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이경영, 조진웅, 최덕문)은 2015년 7월에 개봉해 9월 17일 현재 1266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일제하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이야기를 오늘에 들려주며 화제와 인기를 모으고 있다.
<베테랑>(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정웅인)은 2015년 8월에 개봉해 9월 17일 현재 126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베테랑 광역수사대 대 유아독존 재벌 3세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로 경제사회적 이슈를 오락영화로 잘 버무리며 화제와 인기를 모으고 있다.
 
 
1000만 동원 한국영화의 허와 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양적, 질적 측면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제작비 규모가 증가하고 자본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이루어진 대작 영화의 제작이 극장 관객 증가의 견인차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라 위에서 보듯, 2003년〈실미도〉 이후 2015년 현재의 <암살> <베테랑>까지 총 13편의 영화가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왔다.
특히,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 영화의 스타일과 한국 역사의 민족주의 정서를 결합해 극장 관객의 폭발적 증가에 기여했다. 또 영화 제작과 상영의 디지털화가 촉진되면서,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스크린 수가 급증했다. 그러면서 한국영화의 국내외 인지도가 높아졌으며, 유명 해외영화제 수상도 이어지게 되었다.
관객들이 영화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뭐래도 '엔터테이닝'의 기능일 것이다. 1000만 동원 영화라면 당연히 그만큼 영화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화제와 매력 또한 넘친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참신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감독의 역량과 배우의 열연이 1000만 동원 영화의 토대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거기에 대형 영화사의 막대한 자본과 권력은 유명배우를 동원한 화려한 캐스팅, 블록버스터 급 화려한 액션과 특수효과 등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면서 1000만 관객 동원의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1000만 관객 동원이란 그 이면에는 대형 배급사에 의한 ‘스크린 독점’과 ‘마케팅 물량 공세’란 속사정과 역기능도 엄연히 존재한다.
한국영화는 2000년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에서 CJ(CJ E&M, CGV), 롯데(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시네마), 오리온(쇼박스, 메가박스-2007년 매각) 등 대기업 계열사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들에 의해 멀티플렉스가 전국에 늘어나면서 하나의 영화를 4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하게 되는 광역 개봉(wide release) 방식이 증가했다.
실례로 지난해 여름 1761만 명의 관객 동원이란 신기원을 이룬 <명량>은 개봉 당일 약 1250개의 스크린을 독점하며 상영되었다(<명량>의 최고 스크린 수는 1587개 기록, 실제는 스크린 수뿐만 아니라 전체 상영관의 좌석 비율도 주요 변수임). 지난해 당시 전국의 스크린 수는 2584개로서 <명량>은 자그마치 50% 가까운 독점률 속에 신기원의 기록을 경신한 셈이다.
거기에 대형 제작사와 대형 배급사의 막강 영향력에 의한 ‘마케팅 물량 공세’ 역시 기록 경신의 일등 공신이 아닐 수 없다.
스크린 과다점유 및 마케팅 물량 공세 현상은 그만큼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같은 소규모 영화의 상영기회를 뺏어가는 셈이 된다. 이는 엄연히 관객의 영화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오늘날 영화의 실제적 발전을 이루어 온 영화의 다양성, 예술성, 실험성 등이 오히려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한편 도리어 영화의 창의력이 약화된다는 지적도 이에 기인함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영화 제작이 결코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서 ‘창의적 콘텐츠의 가능성 확대’는 향후 한국 영화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1000만 관객 동원 한국영화의 양산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순수한 작품성만이 아닌 스크린 독점 및 마케팅 물량 공세에 의한 결과라면, 그 타이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씁쓸한 뒷맛만 남을 것이다.
1000만 관객 동원의 한국영화, 그 기록의 의미는 한국영화의 또 다른 과제가 되고 있다.
 
 
윤세민 / 경인여자대학교 영상방송과 교수(언론학박사). 대학에서 스토리텔링, 시나리오 작법, 커뮤니케이션 등을 강의하며, 시인이자 문화평론가로서 주로 출판, 방송, 영화 등에 대한 평론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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